26화 시작(始作)

「보다 순조로운 이해를 위하여 세계관 설정을 참고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읽으시면서 이해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세계관 설정을 참고하셔서 봐주세요.」

“ ..몸 조심 하십시오. ”

오른이 몸을 반듯하게 숙이며 아빌을 향해 무운을 빌었다.
오른도 직감적으로 그가 단순히 아르테 후작저에 머물러 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만일 저번과 같은 타부와 싸우러 가는 것이라면 부디 그와 제 주군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절실히 빌었다.
백작가의 사용인들 모두 흉흉해진 분위기와 갑작스럽게 떠나는 아빌을 보며 그가 이번에는 여흥을 위해 떠나는 것임이 아님을 넌지시 알아차렸다.

“ ...그래 ”

아빌이 배웅을 받으며 알리카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둘 다 단체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떨어져 봐야 좋을 일이 없으니 결국 아빌은 알리카의 저택에 머물기로 했다.
흔들리는 마차 벽에 살며시 머리를 기댄 아빌이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하얀 바깥을 보던 중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돌리니 바깥처럼 하얀 알리카의 눈과 마주쳤다.

“ ... ”

눈을 마주친 채 짧은 정적이 흐르자 아빌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보통 단체들의 목적은 신이 되려는 건가? ”

“ .. 작게 본다면 그렇지. 단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보통 누마거나 동화율이 낮은 티어들이니까. 신이 되길 바라는 이보다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특별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

“ 호우트는? ”

“ 호우트는 그 자체만으로 인정 받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마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살기 위해 마력을 내보내지. 마력을 받아 호우트가 될 수 있다는 건 그것 자체로 특별하다고 인정하는 거야. 당연히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

“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거군..”

아빌은 눈을 내리깔며 대충 흘겨 읽었던 아빌 보스켓의 일기장을 떠올렸다.
그도 분명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이었을 테니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누마이기 때문이라 착각하고 누마를 자신에게서 떼어내려 했을 것이다. 정작 가장 떼어내야 할 자신의 오만함과 아둔함은 모르고.
그가 아둔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더라면 단체에 들어갈 이유도, 금기를 범할 이유도 없었을 터다.

‘ ...나도 이 몸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겠지. ’

아빌은 내리깔았던 눈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눈에 가득 차는 알리카를 느릿하게, 세세하게 훑어 올라갔다.
지금은 이렇게 가득 찰 만큼 가까이 있지만 애초에 서로가 누군지도 몰랐을 수 있다.
아빌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면서도 아빌의 어리석음이 자신을 숨 쉬도록 만들었다.
결국은 자신도 원래의 아빌과 별 다를 거 없이 오만했다.

덜커덩!

마차가 돌부리에 걸려 크게 흔들렸고 기대고 있던 아빌의 머리도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뇌가 흔들리는 감각이 아찔했고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후 코로 훅 들어오는 향기가 느껴졌다.
아빌의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자 곧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아빌, 괜찮나? ”

어느새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코앞까지 온 알리카가 부딪혔던 제 옆 머리를 조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이를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자 알리카는 미간을 좁히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다시 물어왔다.

“ 많이 아픈가? ”

“ ...아, 괜찮..아 ”

어쩐지 다급함이 묻은 손으로 알리카의 손을 물리니 괜히 뭔가에 찔린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괜찮다는 말에 알리카도 더는 별 말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 오고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유독 머리가 화끈거렸다,
아빌은 목까지 이어지는 열기에 뒷목을 연신 문지르며 진정하려 눈을 질끈 감았다.

“ ..! ”

시야를 차단하자 순간 청각을 통해 잦은 소음이 들렸다.
눈을 번쩍 뜬 아빌이 갑작스럽게 일어서자 알리카는 아빌의 시선을 따라 창문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눈밭만 보일 뿐 그 무엇도 없었다.

“ ...오고 있어. ”

“ ..단체가? ”

“ ...아니, 아닌 것 같아. ”

계속해서 점점 크게 들려오는 소리는 필요 없는 잡음이 많았다.
죽이려고자 한다면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접근하는 것이 죽이기 쉬움에도 저리 움직인다는 것은 기이한 취미를 가진 타부이거나 본능에 충실할 뿐이 둘 중 하나였다.

“ 마물이다! ”

아니나 다를까 마차 밖에서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의 외침이 들렸다.
마차가 멈춰 서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가히 악마의 소리라고 칭할 소음이 들려왔다.
어디에 저런 큰 마물이 숨어 있었는지 거대한 변종 뱀과 상당한 양의 뱀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 뒤에서 공격해! ”

“ 양이 너무 많아!! 뒤를 잡기가 힘들어! ”

“ 물리면 끝이다. 조심해! ”

다급한 목소리가 사방을 소란스럽게 만들었고 창문 너머로 본 뱀들의 양만 해도 상당했다.
다행히 아직 부상자는 없었지만 저 많은 뱀들을 과연 얼마나 더 막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세이브 존까지 아직 거리가 꽤 있어. ”

몇 번이고 다녔던 숲이기에 길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빠른 지름길을 통하여 달린다고 한들 도망가는데 무리였다.

“ 쯧.. 처리하는 게 최선인가.. ”

아빌이 얼굴을 구기며 마차 문을 잡았다.
이 마차 안에서 완전체는 할 수 없으니 나가서 해야만 했다.
물론 알리카와 다니기 위하여 각오했지만 이렇게 그 순간이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도 전부 말라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 아빌 ”

“ ... ”

“ 걱정 마. 내가 함께할 테니까. ”

알리카의 눈이 아빌에게 닿자 믿을 수 없게 쩍쩍 갈라졌던 제 목에 물이 들어온 듯 편안해졌다. 아빌은 차마 열리지 않던 문을 열었고 기사들은 놀라 그곳에 들어가 있으라고 몇 번을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곧 제 바로 앞에 마물이 있음에도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 탓에 몇몇은 물리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말도 안 돼. ”

누마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이 순식간에 거대한 맹수가 되어 있으니 놀라지 않기라고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빌이 변하는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본 알리카도 눈을 크게 뜨며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밤같이 깊고 부드러운 흑색의 털도 밤사이로 떠오른 달 같은 눈동자도 전부 자신이 보고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조금 더 그를 눈에 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 했다.

“ 아빌, 우리는 계약을 하지 못 하니 싸움 중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

“ ... ”

“ 조심해. ”

알리카의 말을 들은 아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땅을 차고 나아간 아빌은 순식간에 뱀들 사이에 섰다.
기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고 아빌은 가장 중심에 있는 변종뱀에게 향했다.
아빌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발에 치인 뱀들은 여기저기서 나뒹굴렀다.
날카로운 발톱에 여린 살들은 힘없이 찢어졌다.

“ 햐아악!! ”

변종뱀이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아빌에게로 빠르게 기어왔고 가장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 아빌임을 모두 알아챈 듯 기사들에게 붙던 뱀들도 몸을 틀어 전부 아빌에게로 향했다.

“ 아빌!! ”

그러나 뱀이 아빌의 몸을 물기 전에 그들의 머리가 짓뭉개지는 것이 더 빨랐다.
아빌을 공격하기 위하여 몸을 돌린 뱀들에 기사들은 그들의 뒤를 잡아냈고 훨씬 수월하게 뱀들을 처리해 나갔다.

콰득

“ 캬아악! ”

아빌에게 목을 물어뜯긴 변종 뱀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아빌의 몸을 옥죄려고 했지만 흑색 털이 닿기도 전에 몸이 붕 떠 눈 밭을 뒹굴었다.
변종 뱀의 목에서 알 수 없는 색의 피가 끈적하게 흘러내렸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뱀이 입을 쩍 벌리며 염산 같은 액체를 토해냈다.
액체가 눈을 녹이고 땅을 녹이며 점점 땅은 깊게 파여갔다.
그 액체로 뱀들 모두가 갑자기 뛰어들기 시작했고 뱀들이 서로 뒤엉키다 깊게 파인 땅 탓에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 !! ”

아빌이 눈을 찌푸리며 빠르게 그쪽으로 향한 순간 모든 뱀들이 한 몸처럼 엉켜 괴이한 모습이 된 커다란 뱀이 땅 위로 뻗어져 나왔다.
땅이 울리는 진동에 기사들은 저마다 놀라거나 주저앉았고 차마 보기 어려울 정도인 뱀의 모습에 허망하게 올려다 봤다.

“ 퀘에에에!! ”

몸 전체가 소리치는 듯한 이상한 소음들에 기사들은 뒷걸음질 쳤고 아빌도 별로 좋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뱀이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접근했고 뱀의 머리가 아빌의 몸통을 강하게 강타했다.

“ 컥! ”

“ 아빌! ”

알리카는 마력을 흘려보내 줄 수 없는 탓에 애가 타면서도 도와줄 수 없는 제 자신에 화가 났다.
아빌이 나무에 제 몸이 부딪히기 직전 몸을 틀어 벗어났고 머리를 강하게 박은 뱀은 더이상 아픔을 못 느끼는 듯 꺼진 머리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쉼없이 다시 달려왔다.
다시 한번 뱀의 머리가 아빌의 몸통에 박치기하려는 순간 아빌이 높게 뛰어올라 뱀의 정수리의 제 발톱을 쑤셔 넣었다.
그 상태로 뱀의 긴 몸을 따라 살을 그어 찢어내자 뱀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축 늘어졌다.
둥근 몸통 안쪽이 훤히 드러나자 좋지 못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올랐다.
아빌이 격한 고통이 느껴졌던 제 복부 탓에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빨간 뱀의 눈이 죽었음에도 계속해서 아빌을 바라보는 듯했다.
소름끼치는 눈동자에 아빌은 몸을 틀어 알리카에게로 향했다.

“ 아빌!... 다쳤어?! ”

“ ...괜찮아. 별로.. 윽! ”

“ !! ”

완전체를 풀어 두 발로 서자 느껴지는 통증에 아빌이 몸을 비틀거렸다.
알리카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을 것이다.
고통도 잠시 몸을 파고드는 알리카의 따스한 마력이 혈관을 타고 전체로 퍼져갔다.
어느새 안긴 모양새가 된 아빌이 눈을 꿈뻑이며 알리카를 불렀고 알리카는 그런 아빌의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으며 꽉 그러 안았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는 이것밖에 없어.. 미안해 아빌. ”

“ ..아냐. 충분해. ”

“ ...함께 하자고 해놓고 너만 무리하게 했어... ”

아빌은 자신을 꽉 끌어안은 알리카를 보다가 그의 품에 파고들어 가만히 기댔다.
알리카는 자신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듯 싶었다.

***

“ 생각보다 강하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뜬 나타가 제 눈에 담겼던 아빌을 떠올렸다.
탐스러운 흑색 털도 아름다운 금안도 강한 힘 모두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생각한 것보다 매력적이야. ”

나타의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게 퍼졌다.
야살스럽게 휜 나타의 눈이 당장이라도 아빌을 먹어치울 만큼 번뜩였다.
나타의 붉은 혀가 모양 좋은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 ...이 아이는 어떻게 울어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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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10 17:59 | 조회 : 1,40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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