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무 태연한데?





역시 우리의 여주, 베아트리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걸음을 옮겨 교복샵을 향했다.

“아, 저기 율리아 영애.”

베아트리체가 눈을 예쁘게 접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우, 여신. 언니 사랑해요..! 모처럼 만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아뇨, 리아라고 부르세요.”

“어머, 그럼 저도 리체라고 불러주세요, 리아.”

“그러죠, 리체!”

하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망할 남주들은 재쳐두고 나랑 결혼하자, 리체..! 내가 황홀한 얼굴을 하며 얼이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들렸다.

“음?”

저 멀리에 말을 탄 기사들과 그 중심에 둘러쌓인 한 남자가 보였다.

어- 잠시만. 내가 왜 이 장면을 잊어버렸을까! 소설에서 리체와 황태자가 처음으로 접점을 이루는 장소가 교복샵을 가던 중이였지!

“리체, 잠시만 날 따라와 주시겠어요?”

저런 머저리한테 우리 리체를 넘길 수는 없지. 나는 곧바로 리체의 손을 끌어당겨 주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따라온 레이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무슨 일이니?”

“왜 그러세요, 리아?”

내가 왜 그러냐고요..? 언니를 지키려고 이러는 거라고요!

내가 매의 눈으로 골목 밖을 살피며 황태자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레이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아트리체 영애, 어찌 이렇게 아름다우신지..”

이런, 젠장. 적은 내부에 있다더니, 이 망나니가!

“나가욧!”

나는 레이던의 팔을 잡아채서 골목 밖으로 끌어냈다.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레이던에게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사이즈 165, 2개! 먼저 주문하고 있어요!”

“아, 응? 응..”

풀이 죽어서는 터덜터덜 걸어가는게 마치 대형견 같았다. 아, 안돼, 안돼. 이상한 생각을 했다. 저런게 귀엽다니, 끔찍한 생각을 했군.

“저기.. 리아..?”

“아, 네!”

리체가 내 옷자락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우리 언니 말이라면야,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제 옷 사이즈를..”

아, 맞다! 원래는 내가 이걸 알면 안되는구나! 소설에만 나오는 부분이니 내가 알면 나는 그냥 스토커가 되는 셈이다.

리체의 눈고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겁 먹은 것처럼 울망거렸다. 어떡하지, 나 원래 이런 게 취향이였나?

“아아, 리체가 저와 키가 비슷하기에.. 사이즈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틀렸나요?”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순수하게 물었다. 그제야 리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 혹시 리체, 말을 놓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고마워!”

아아, 행복하다!

-

“호오, 예쁜 계집애들이군?”

“잘하면 좋은 먹잇감이 되겠어.”

“옷도 나름 귀족같은데.. 팔면 돈이 제법 들어오겠는 걸?”

검은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낮게 웃었다. 해괴하게 낄낄거리던 그가 눈고리를 가늘게 했다. 그리고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맛 좀 볼까?”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같은 마스크들이 튀어나왔다.

-

“리체, 숙여!”

바로 위로 날아온 주먹에 나는 리체의 팔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은 리체의 머리 위로 주먹이 날아갔다.

“큭, 빌어먹을 계집애가!”

한 깡패가 달려들었다. 다리를 앞으로 뻗은 선제 공격. 그렇다면 슬쩍 다리를 걸고 넘어뜨려서, 팔꿈치로 빡!

“조심해, 리아!”

후후, 걱정 마시라! 내가 이래뵈도 원래 세계에서는 나름 태권도 유단자였걸랑?

울 언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몸 한몸 바쳐서 구해내도록 하죠!

리체를 중심에 두고 앞뒤로 날아온 두 사람의 머리를 잡아 서로 부딪히게 한다음,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 구두굽으로 또 다른 한사람의 얼굴을 가격했다.

각각 비명소리를 대며 세 사람이 고꾸라졌다.

“음? 뭐야, 저건.”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또다시 코앞으로 날아온 발을 피했다. 승리했음이 확신되고 있던 바로 그때, 뒤에서 강한 통증이 울렸다.

흐려지는 두 눈으로 겨우 뒤를 돌아보자, 흉악스러운 웃음을 띈 남자가 나무 판대기를 들고 서있었다.

“리..아..!...ㄹ..”

아오, 머리야. 안돼, 리체를 구해야..!

놀라서 나를 부르는 리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이 놓였다.

-

“리아!”

“으윽...”

아직도 얻어맞은 뒤통수가 댕청 울리는 기분이였다. 겨우 주변을 둘러보자 우선적으로 보인게 망할 쇠창살이였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자 상황파악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지금.. 리체와 같이 납치당한 모양이였다.

두손이 밧줄로 뒤에 묶여 있었고, 앞에는 쇠창살이, 뒤에는 돌벽이 있었다. 벽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지만, 그곳에도 창살이 있었다.

아무래도, 보통 깡패 집단은 아닌 듯 한데..

설마 이거 나 때문인가..? 황태자로부터 리체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다가 원작을 거스른건가? 그래서 리체까지..

“리아, 정신차려! 우리 여길 나가야 해.”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리체가 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자.

“리체, 서로 등을 보고 있으면 밧줄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렇네!”

리체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이 상황에서 무서울 법도 한데, 리체는 이를 억누르며 밝게 웃고 있었다. 역시 여주인공, 갑이에요, 언니!

우리는 서로 밧줄을 이리저리 헤집어서 풀었다. 손목이 빨갛게 부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그때, 누군가가 앞에서 나타났다. 쇠창살 너머로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와 리체가 곧바로 두손을 뒤로 하여, 밧줄에 묶여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 하지만 눈으로는 망할 깡패들을 노려보고 있는 채였다.

“눈빛 무서운걸? 후후..”

깡패는 어깨를 으쓱하며 열쇠로 쇠창살 문을 열었다.

“다치기 싫으면 고분고분 따라오는게 좋을거다.”

그는 나와 리체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밖으로 끌어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데로 따라 올라가보니 또다른 골목에 위치한 가택이였다. 아마 우리가 갇혀 있었던 곳은 가택의 지하였던 모양이였다.

“흐흐흐..”

우리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제법 많은 수의 깡패들이 흉물스럽게 웃어댔다. 젠장, 이제 어떡하지..?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였다. 그때.

“검은 그림자들, 그대들은 포위되었다. 순순히 항복하라.”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병사들이 주변을 애워쌌다. 아마 기사단 쪽 소속인 것 같은데..

“오라버니?!”

그 중간에서 광채를 빛내는 검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우리 오라버니 되시겠다. 나참, 빨리도 나타난다, 망아지야!

“감히 내 동생과 그녀의 친구를 납치하다니. 이 죄는 레이어드 가문에서 묻도록 하지.”

레이던이 의외로 간지나는 말을 하며 검을 겨누었다. 이럴때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이란 말이지. 역시 기사단장인가.

나도 리체를 잡아끌고는 깡패의 손을 쳐냈다. 리체도 다시 잡으려는 깡패를 구두굽으로 때려서 넘어뜨리고는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 심장 어택!

그렇게 난장판이 된 싸움장에서 나와 리체는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꽁냥꽁냥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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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2-15 20:39 | 조회 : 1,180 목록
작가의 말
사탕×하젤

하젤 작가입니다! 쓰다보니 분량이 조금 짧아진 느낌인데..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사탕아 수고하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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