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신기루 신형사


01. 신형사




찰칵찰칵 -

“김반장님, 이번에도 역시 그 사건과 같은 수법 같습니다. 시체는 피 묻은 곳 하나 없이 깔끔하게 씻겨져 있고, 깔끔한 옷을 입고 있으며, 시신은 꽃을 손에 쥔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볼에 77 이라고 뾰족한 것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체의 정확한 사인 감식을 해봐야 알겠지만, 너무 많이 찔려 과다출혈로 죽은 것 같습니다.”

내 앞에 있는 키가 큰 감식반이 반장님께 말했다. 그에 반장님은 한 손으론 허리를, 다른 한 손으론 이마를 짚으며 짜증이 난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하셨다.

“하.. 또 그 녀석인가.. 그래서 이번 꽃은 뭐지?”

“이번은 시네라리아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키가 큰 감식반은 반장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여 가보겠다 말했다.

“그래. 가서 다른 증거나 단서 될만한 게 나오면 바로 알려주게.”

반장님은 감식반에게 오른손을 살짝 들어가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하셨다. 키가 큰 감식반은 그 제스처를 보더니 뒤를 돌아 다른 감식반과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소꿉친구이자, 같은 강력계 4팀 김지수가 투정을 하듯 말했다.

“하아.. 이번에도 그럴듯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네요. 반장님.아니 범인은 왜 그렇게 많이 찌르는데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급소라든가 그런 데는 안 찌른대요? 아니아니 그리고 피는 왜 깔끔하게 씻긴대요? 옷은요? 꽃은요? 왜 항상 다른 꽃만 주는지 몰라. 그리고 숫자들도!! 그런 걸 할 시간이 있으면 좀 증거라도 남겨두던가!! 증거는 또 드럽게 없어요, 없기는.”

어지간히 짜증 났나 보네. 하긴 나도 짜증 나고,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건인데, 얘는 오죽하겠어? 나는 그에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맞습니다, 반장님. 피나 옷이나 그런 건 둘째 쳐도 꽃과 숫자는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숫자는 불규칙하게 점점 커지고, 꽃은 항상 다르고요. 분명 처음 사건에 있던 꽃은 메리골드였죠? 두 번째가 튜베로즈, 그 다음이 자운영이고. 그 다음이 아마..”

“치자나무. 다음은 흰 나팔꽃이고, 이번에는 시네라리아? 뭔 듯도 보도 못한 꽃들만 남겨두는거야. 장미라든가, 어? 좀 나라도 알만한 꽃들을 놓고 가던가. 아아 짜증 나."

“니들만 짜증 나냐? 나도 짜증 난다. 나참. 내가 형사 생활 36년 하면서 이런 사건은 또 처음이네. 어쨌든 니들 빨리 가서 피해자 주변인 조사 시작해. 오형사, 윤형사, 임형사는 이미 갔으니까.나도 따로 알아볼 테니.”

““네!””

하.. 또 탐문 이제 슬슬 질린다. 질려.

“가자. 김지수.”

“휴.. 빨리 끝나면 좋겠다!!! 후딱 가서 끝내자. 우리 신기루 신형사.”

나는 신형사라고 불리는 27살 서울경찰청 강력계 4팀 형사, 신기루.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내가 9살 때 강력계 형사셨던 두 분은 흉기를 가지고 도주하던 범인을 체포하던 중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딱히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두 분은 일 때문에 바쁘셨던지라 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컸고, 딱히 남에게 자랑할만한 두 분과의 추억도 없었다. 정말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슬프지 않았냐 물으면 나는 대답을 못 하겠지. 지금의 나도 잘 모르겠으니. 18년이 지나 아저씨가 된 나도 모르겠는데, 9살의 꼬맹이는 퍽이나 알겠다.

하. 어쨌든 두 분이 그렇게 되시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기 시작 했다. 말이 살기 시작했다지 사실 두 분이 그렇게 되시기 전부터 같이 살았다. 아까 말했듯 두 분은 바쁘셨으니까.

두 분이 없어도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리고 커서는 강력계 형사가 되었다.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강력계 형사가 되겠다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은 슬퍼 보였다. 내가 두 분을 그리워해 조금이라고 그분들처럼 되고 싶었다고 생각한 거 같은데, 딱히 나는 그런 생각은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때마침 내 소꿉친구인 김지수, 얘가 같이 형사가 되자고 말했기에 그랬던 것 뿐. 김지수 말을 안 했으면 어떻게 될지 몰랐겠지만.

아, 김지수는 아까 말했듯 내 소꿉친구고,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같은 서울경찰청 강력계 형사이고, 같은 4팀이다. 비슷한 점은 거의 없고, 닮지도 않았다.

나는 강아지상, 얘는 고양이상. 나는 하얀 편이지만 얘는 중간쯤이고. 나는 무쌍에, 얘는 유쌍.

와..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다르네. 성격도 완전히 딴판이지. 나는 차갑고 귀찮은 걸 싫어하지만, 얘는 능글 맞는 귀찮은 성격이니까.

아, 여자친구도 난 없다. 얜 있는데. 국과수에 우리보다 2살 연상인 이루하라는 누나랑 사귀는 중이다. 맨날 루하 누나 자랑만 해대고 듣기 싫다.

뭐. 어쨌든 그런 김지수와 나는 되게 귀찮은 사건을 맡게 됐다. 오형사님, 윤형사님, 임형사, 김반장님도 함께 말이다.

참고로 김반장님, 아내분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회식을 너무 길게 하신다. 집에 들어가면 사랑꾼이시면서. 동전같으신 분이다. 그래도 36년동안 강력계 형사를 하시고 계신다. 배테랑이지. 하지만 그런 배테랑도 짜증 나 하는 사건을 우리가 맡게 됐다.

사건은 무려 연쇄 살인 사건. 그냥 살인도 귀찮은데 말이지. 연쇄다, 연쇄.

이 사건은 3달쯤 전부터 시작됐는데, 그 3달동안 6명이 죽었다. 사건 현장에는 범인의 지문이라던가 머리카락 등 뭐라 할 증거는 전혀 없었다. 6 번의 사건 전부.

증인도, 살인할 때 쓴 칼 등도 전혀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건 6명의 피해자의 공통점 정돈데, 사실 그것도 애매하다.

6명 모두 20대에서 30대 정도였다. 남녀는 구분 없고. 남녀 구분 없이 그냥 날카로운 흉기로 몸 이곳저곳을 찔려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루게 한다. 혹은 가끔 심장마비로 죽기도 하던데, 대부분이 과다출혈이다.

이상한 게 심장이라던가 그런 확실히 죽일 수 있는 급소를 찌르지 않고, 무조건 여러 군데를 찌른다.

마치 아픔에 괴로워하는 걸 보기 위한 것처럼.

그리고 시체들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에 항상 뾰족한 것으로 숫자를 새긴다.

처음엔 16, 다음이 차례로 34, 49, 66, 76 그리고 이번이 77.

불규칙적으로 점수가 오른다. 그리고 또 시체는 항상 피가 깨끗하게 닦여 있다. 거기에 깨끗한 옷까지 입혀 놓고. 그 주변엔 항상 꽃들이 있었다. 꽃들도 항상 달랐다.

처음부터 차례로 메리골드, 튜베로즈, 자운영, 치자나무, 흰 나팔꽃, 시네라리아.

아, 시체는 항상 호텔 침대라던가 꽃밭, 공원이나 놀이터의 정자와 같은 곳에서 누워있는 채로 꽃을 손에 든 채 발견됐다.

하.. 이런 귀찮은 사건 정말 싫다. 증거도 증인도 없으니. 그 주변 cctv도 항상 없거나, 가짜거나, 망가뜨린 것들뿐. 주변 차들 블랙박스에서 입수한 정보들은 보면 살인 현장 주변에 항상 오는 차가 있는데 번호판은 가짜고. 차에 타고 있는 여자도 얼굴과 몸 싹 다 가려서 체격도 확실하지 않다.

알고 있는 건 아마 범인은 여자에 키가 한 170cm 정도 된다는 것.

이걸로 어떻게 범인을 잡냐고.

블랙박스에서 피부색이 조금씩 보이는데 항상 피부색이 다르다. 아마 화장이나 뭐 그런 거겠지. 귀찮네 진짜.

범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피해자 주변인 탐문밖에 없다. 피해자에 대해 물어 보거나,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나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 등을 물어보는데. 진짜 이게 몇 번째냐 진짜. 질린다.

그래도 이게 아무런 소득이 없던 건 아니다. 피해자들의 확실한 공통점이 딱 하나를 알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얼굴의 감정이 잘 안 드러난다는 것.

피해자들 모두 평소 생활할 때 얼굴의 감정이 안 드러난다고 한다. 뭐, 한마디로 하면, 표정이 없는 거지. 나도 그런데. 김지수가 맨날 표정 좀 잘 짓고 다니라는데, 대체 잘 짓는다는 게 뭔지.

어찌 됐든 이번 사건도 피해자 주변인 탐색하러 가야지.

“야, 김지수 빨리 와라.”

“이잉. 같이 가 신기루 신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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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07 10:53 | 조회 : 1,215 목록
작가의 말
Uare

메리골드-만수국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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