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서로의 거리(2)

그대로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병신이지.

몸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은 그저 한번에 너무 많은 페로몬의 정보를 받아드려서일 뿐이다. 거기다 지독한 악의까지 있으니 과부화가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나는 괜찮았다. 잠시 멀미한 것과 같은 원리였으니 이렇게 환자처럼 누워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었다.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후드를 뒤집어 쓰고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 순간에 시선이 전부 나에게 돌려졌다. 주위에서 소근거리는 소리와 곁눈질하는 시선들을 전부 무시한채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쟤가 알파 킹과 같이 등교했데.”

“그분이 어째서….”

“쟤 특별 장학생이잖아.”

자신의 맛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말들을 전부 귀에 담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고 그저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어디가 마음에 안들었지 몇몇 이제 갓 성인이된 모습의 이들이 다가왔다.

탁!

“너 알파 킹과 무슨 사이야?”

위협이라도 하는 생각인지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며
내려다 보는 눈으로 추궁하고 있었다.

무슨 사이라니. 굳이 따지자면 그냥 타인인데 거기
서 조금 가깝게 말하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랄까.”

내 말에 몇몇 이들이 숨을 들이 켰다.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자존심 상한 얼굴이 아주 마음에 든다. 딱 봐도 우성 오메가처럼 보이는 예쁘장하고 선이 고운 외모의 남자가 베타의 일반인에게 분해하는 꼴이라니. 아주 우스웠다.

책상을 짚은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고작 베타가.”

그 고작 베타에게 자존심 상한 너는 뭐냐.

입밖에 내보내고 싶었지만 아직 선빵을 맞기 전이라서 참았다. 맞고 때려야지 정당방위라도 되니까.

베타라는 말에 또 한번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여기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알파 킹 덕분 아니야?”

“몸이라도 굴린거 아니야? 더러워.”

내 눈에는 그런 더러운 망상을 하는 너희들이 더 더럽다. 20살이나 처먹으면 좀더 멀쩡한 발상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우성 오메가의 친구로 보이는 따까리 1과 2는 마치 소문이라도 퍼트리는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하, 이래서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놈의 망할 놈.

잘가라. 조용하고 평검한 나의 대학 라이프! 너의 희생을 잊지 않을게.

“볼일이 끝났으면 이제 가주지 않을래? 칠판이 안보이는데.”

거리적거려서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말하자 우성 오메가의 남자의 볼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의 페로몬이 피부에 닿자 기분나쁜 따가움이 느껴져서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너,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모르는데. 알고 싶지도 않고.”

또 어딘가의 도련님이겠지. 작은 세상에서 자기가 왕인줄 알고 나내는 철없는 도련님.

“너 해임 제약사의 하나뿐인 외아들인 호종인을 모른단 말이야?”

“…얼마나 외진 곳에서 왔으면.”

따까리 1과 2과 열심이 지껄이고 있었지만 개소리에 대답해줄 생각은 1도 없었다.

“종인아, 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친절한 네가 알려줘. 네가 누군지.”

“맞아. 분수도 모르고 있는 어린 양에게 알려주자고.”

적절한 아부와 요구를 썩어서 말하다니. 저 녀석들 따까리력이 높구나?

“난 해임 제약사의 하나뿐인 외아들이자 알파 킹이신 서은성님의 약혼자야.”

…쿵.

…응? 뭐지? 방금 뭔가 심장에서 뭔가 떨어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들었는데?

“…….”

“이제 알았겠지?”

저 놈은 내가 생각에 빠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자 내가 꼬리를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역겨운 페로몬이 기분좋게 흩날렸다.

…왜지? 기분이 나쁘다.

서은성이 누구와 약혼하던 말던 나는 ‘형’이 맞는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될 문제였는데. 칠판에 날카롭게 손질된 손톱을 긁어서 듣기 싫은 음색을 만들어 내는 듯한 불쾌감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그 손을 부서서라도 그 듣기 싫은 음색을 멈추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쏟구쳤다.

…이게 뭘까?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듣지그래? 우중충하게 후드나 뒤집어 쓰고는 말이야.”

무방비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지한이 거칠게 후드를 내리는 손길에 정신이 들었다.

“…!”

눈처럼 새하햫다 못해 은은한 빛이라도 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백발과 기에 못지 않게 흰피부와 붉은 색을 머금은 적갈색의 눈동자 신비롭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한을 쳐다보던 시선들의 느낌이 달라졌다. 어떤 이는 경악했고 어떤어는 얼굴을 붉히었다.그리고 또 어떤이는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했다.

“아, 알비노?”

누군가가 말하자 지한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거조차 신비롭고 아름다울 뿐이었다.

“염색이야.”

긴 설명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대충 염색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뜨거운 시선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지한은 점점 짜증을 참기 힘들어졌다. 힘을 사용해서 조용히 만들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드르륵! 탁!

교수가 들어왔다.

“왜들 그렇게 몰려있나요? 자리에 앉으세요.”

매우 까탈스러워보이는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깔끔하게 올려 묶어져있는 머리스타일을 가진 여성 교수가 눈쌀을 찌푸리며 내쪽과 호종인의 패거리가 있는 보자 그제서야 그들은 불만스럽게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방갑다. 나는 경제학을 가르치게 될 조연자라고 한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나는 누가 누구의집의 아들이고 재벌이고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뒷돈 먹일 생각은 고히 접어서 버려라.”

싸늘한 선언에 몇몇이들은 찔렸는지 몸을 작게 떨었다. 비리를 저지를 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미리 경고부터 날리는 저 당당함이 매우 짜릿했다. 또 통쾌하기도 했다.

“난 베타이다.”

조연자 교수의 선언에 앉아있는 이들의 얼굴에 나를 제외하고는 경악의 눈빛이 비춰졌다.어떻게 베타 따위가 한국 일류의 대학인 성은에 교수가 될 수 있냐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조차 조연자 교수는 예상했다는 듯 더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곳에 근무하고 계시는 다른 교수들보다 뒤떨어지 않는다. 그것만은 장담하지.”

자신에 찬 눈동자가 천천히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을 훑었다. 이윽고 조연자 교수의 눈이 제일 구석에 있는 나와 마주쳤다. 그러자 한 순간이 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풀리고 눈에서는 호감이 묻어나왔다.

왜?

내가 같은 베타라서 그런가? 하지만 그 눈은 마치 은인이라도 보는 듯한 눈이었다. 거기도 동질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매우. 저 교수가 내 마음과 쏙드는 것과 별개로 무언가 걸리는 듯한 직감.

하지만 딱히 찔리는 것도 걸리는 것도 없었기에 무
시하고 지나갔다.



※※※



첫 수업은 간단했다. 앞으로의 일정과 시간표의 배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조연자 교수는 나갔다. 교수가 나가마자 나에게 다오는 남자가 있었다.

“저 혹시 지금 시간있어?”

준수하게 생긴 알파였다. 얼굴까지 붉힌채 묻는 꼴을 보니 이게 그 작업이라는 건가 싶었다. 처음 겪어보는 작업에 대한 내 감상은 간단했다.

아무느낌도 없다. 딱히 설레지도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냥 무생물을 보는 것과 같은 건조함.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미안한데 알바가 있어서.”

내가 거절하자 눈에 띄게 알파가 당황했다. 거절 당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얼빠진 얼굴이었다. 그게 재밌어서 피식웃었더니 눈을 크게 뜨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리를 피했다.

…이러면 내가 괴롭힌거 같잖아.

일종의 괴롭힘인가? 그런건가?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자 역시 호종인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미간을 좁히고 얼굴을 구기는 모습에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선물해 줄까 고민하다 결국 눈을 피했다.

조용하게 살자.

“야.”

…조용하게.

“너 여우짓좀 한다?”

…이미 글렀는데 더 시끄러워도 괜찮지 않을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마. 너 방금 이진성한테 꼬리흔들었잖
아.”

대놓고 혐오한다는 표정으로 보는 꼴이 참….

내 인내심을 실험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다면 대성
공이다. 나는 지금 매우 빡쳤다.

“좆까.”

“…뭐?”

“좆까라고. 씨발.”

마치 처음 욕을 들어본 것 마냥 호종인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일그러졌다. 나는 그 얼굴을 찬찬히 감상하며 슬며시 팔을 올려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눈깔 삐었어? 누가봐도 방금 그놈이 나한테 작업 걸고 있던 거잖아. 근데 뭐? 내가 작업을 걸어? 미쳤냐? 나도 눈이 있단다. 알파 킹이랑 다니는데 그 놈이 내 눈에 차겠니? 어?”

“…어, 어?”

“시비를 털고 싶으면 좀 지능적으로 털지 그래? 구차하게 이것저것 변명을 붙여가면서 아주 그냥 재밌지? 나도 존나 재밌다. 이 개념을 털어먹은 개자식아.”

“…….”

“왜? 말이없네? 아가리 털어봐. 아까는 잘했잖아. 응?”

차갑게 내려앉아 붉게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호종인을 잡아 먹을 듯이 미미한 안광을 냈다.

“말 안해? 이러면 내가 일방적으로 시비털고 그런 것처럼 보이잖아. 안그래?”

“…….”

이런 욕은 처음이지? 어서와.

“내가 아가리 털라고 했잖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서있던 호종인의 어깨를 슬기머니 쥐었다. 물론 힘은 안주고 살짝 얹은 정도로만. 그것만으로 호종인은 눈에 눈물까지 글렁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건들지 말자. 네가 서은성 선배의 약혼자든 뭐든 내 알빠는 내가 선배랑 같이 노는게 마음에 안들면 너의 피앙세에게 가서 울면서 애원해봐. 그럼 선배가 들어줄지도 모르잖아.”

아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저 표정을 봐서는 말이다. 언제온건지 문에 기댄채로 팔짱끼고 나와 호종인의 대치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관찰중이었다. 누구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은성 선배.”

내 말에 교실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서은성을 향했다. 그러자 그는 자세를 똑바로 고치고서 나를 향해서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걸어와서는 입을 열었다.

“지한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와 조각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서은성의 태도에 나는 인상을 구겼고 호종인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이들 또한 다를 것이 없었다.




[아, 깜박하고 공지 안한게 있어요. 원할하고 빠른 진행을 위해서 분량을 줄입니다. 원래는 기본 5천자였지만 지금은 3천~4천자로 바뀝니다. 그대신 자주 연재할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5
이번 화 신고 2019-08-11 16:40 | 조회 : 1,764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지금까지 이런 수는 없었다. 이것은 자랄수인가 까칠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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