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거지의 하루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이라 그런지 모두가 상냥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 기억들이 나에게 돌아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희망 따윈 없다. 제길.





내 이름은 디야발 던힐.
구린내 나는 바깥쪽에서 태어난 꼬맹이로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대충 10년 정도는 산 것 같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바쁜데 나이 같은 것을 셀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 나이를 기억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서 엿들은 소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넣는 것이 더 이롭다.

소식들을 재빨리 들어야 귀족분들이 지나갈 루트를 예측해 얼른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온다고 하는 확정 장소는 보통 우리 같은 하층민이 접근할 수조차 없는 고급가게인 경우가 많고 뻔한 루트는 다른 거지들에게 먼저 선수를 빼앗겨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확률이 높으면서도 나만이 알 수 있는 루트를 최대한 빨리 예측해야 한다.

늦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이것이 희망을 버리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도망쳐 온 쓰레기들의 현재이다.

***


그러고 보니 오늘도 지나가며 들어본 적도 없는 말단 귀족의 따님(물론 이 따님도 귀족이겠지만)이 산책을 나온다고 들었다.

중간 쪽은 놀 거리가 많아서 꽤 자주 귀족들(거의 보호자 동반한 꼬맹이들)이 놀러 오니까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으로 내 밥이 흙먼지가 될지 딱딱한 빵이 될지 갈리는 거니까.

일단 땅바닥에 내가 매일 가지고 다니는 얇지만 단단한 나뭇가지로 간이지도를 그렸다. 이래 봬도 그림 실력은 상당한 편이어서 꽤 그럴듯한 지도가 그려졌다.
아. 이렇게 정교하게 그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즐거워서 디테일을 살려버렸다.

고개를 약간 저어 생각을 떨치곤 다시 집중했다. 흙먼지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 흙이라면 몰라도.


아가씨라면 이쪽도 들리고 저쪽도....됐다. 준비 완료다.
바닥에 그려뒀던 지도를 발로 대충 지우고 내 짐을 챙겼다. 뭐,짐이라고 해도 동냥할 때 쓸 낡아빠진 거적때기밖에 없지만.


***


오늘은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동안 이 머리 쓰는 짓을 안 해도 된다니. 기껏해야 며칠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도 달콤하게만 느껴진다.

그 아가씨는 세상 물정을 몰라서 더 뜯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옆에 있던 늙은이가 막아서는.
표정을 구기며 크게 혀를 찼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은화 한 닢이라니. 바깥쪽에선 2주. 아니 장소에 따라선 3주도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중간쪽은 물가가 비싸서 빵 3개밖에 살 수 없지만.
그렇게 위로하며 은화 한 닢을 소중히 손에 쥐고 거적대기를 옆구리와 팔 사이에 꼈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오늘의 첫끼를 사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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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4 01:57 | 조회 : 1,252 목록
작가의 말
oO((심심하다))

연재가 너무 비정기적이네요..아이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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