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슨 쇠문이 열리고 잿빛 후드가 들어선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그에게 신경쓰지 않고 제 할 일에만 열중하는 듯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눈을 굴리고 있다. 그런 시선도 익숙한 듯 무반응으로 넘긴 후드는 카운터로 향했다.

"맥주 두 잔, 사막 악어 고기 한 접시."

능숙하게 주문을 받아적은 직원이 종이를 조리실로 던졌다. 언제나와 같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린 종이는 정확히 요리사의 손에 안착했다.

"주문 접수 완료했습니다."

고개를 살짝 까딱인 그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았다.

"후우-"

아까 전의 그 여자 마법사가 의외로 약해서 의뢰는 금방 끝났다. 4서클이라고는 했지만 승급한지 얼마 안 되었던 듯 마법의 발동 속도가 형편없이 느렸던 덕에
마도구를 사용할 시간이 넉넉해져 더 쉬웠달까. 원래 마법사들은 마력 봉인구 등에 의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석궁이나 단검 등을 사용하던데 그 여자는 그런 것도 없었고. 뭐, 나야 귀찮은 일이 줄었으니 잘 된거지만.

곧이어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트레이에 담아 가지고 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팁을 달라는 듯 눈을 살짝 찌푸리는 것이 보였지만 여기가 고급 음식점도 아니고 뒷골목의 그저 그런 술집일 뿐인데 뭘 바라는 건지. 물론 저기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늙은이들이야 여자라면 환장을 하고 돈을 던져줄 테지만.

음식은 역시나 별로였다. 김이 빠진 맥주와 너무 짜고 질긴 고기. 그래도 음식은 곧 돈이라는 지론에 따라 접시를 깨끗이 비운 벨리알은 주머니에서 붉은 단풍나무 잎을 꺼내 맥주 잔 안에 집어 넣었다.

음식은 먹은 사람이 치우라는 가게의 암묵적인 룰에 따라 트레이에 맥주잔과 접시, 식기 도구를 올린 그가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트레이에 담긴 것들과 주문서를 비교한 직원이 단풍 나무 잎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꽃을 찾아 다니는 나비는."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벨리알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꿀 냄새에 홀려 거미줄에 걸려든다."

직원이 빙긋 웃으며 요리사를 불렀다.

"요리사! 손님이 고기가 덜 익었다고 하신다!"

"어떤 자식이!"

점원에게 이끌려 조리실로 들어간 벨리알은 후드를 벗었다. 잿빛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 창백한 피부가 드러나자 요리사가 픽 웃었다.

"네놈은 무슨 의뢰를 이렇게 후다닥 끝내냐? 제대로 한 거 맞-네 녀석이라면 제대로 했겠지."

아까와 달리 한결 풀어진 분위기에 벨리알은 빙긋 웃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어깨까지 으쓱하며 정말 모르겠다는 듯 답하는 벨리알에 요리사, 니스로크가 한숨을 쉬었다.

"넌 성격을 좀 고칠 필요가 있어. 그렇게 상대 가리지 않고 틱틱대다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게 이 쪽이라고."

"네에, 네에."

퉁명스러웠지만 그 나름의 걱정이 담겨있던 말에 대충 대답하는 벨리알을 보자 순식간에 짜증이 솟구친 니스로크가 국자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며 노성을 질렀다.

"그 따위로 대답할 거면 당장 나가!"

"아, 미안."

"전혀 안 미안한 거 같잖냐!"

"어, 들켰어?"

"이런 @###^@♡^#@*?@*~!"

괴성을 질러대며 얼마 남지 않은-벨리알의 시선에서는-머리를 마구 쥐어 뜯고 있는 니스로크를 무심하게 본 그가 고개를 돌렸다. 푸른 머리칼의 여직원은 언제 나가야 하나를 고민하는 듯 했다.

"다곤, 나가도 돼."

"아, 감사합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본격적으로 미쳐 날뛰는 니스로크에 벨리알은 그녀를 내보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저 양반은 분노조절장애 좀 고쳐야지. 쯧."

"이게 다 네놈 때문이잖냐!"

어느덧 진정한 듯 벌게진 얼굴로 냉수를 들이켜는 니스로크를 보며 벨리알은 실소를 흘렸다.

하긴, 저 양반은 분노조절장애 때문에 사람을 하도 뭉게 놔서 더 이상 청부업자로 일하지 못하는 거니까. 한 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사람이 믹서기에 갈린 몰골이 되자 현상금이 엄청나게 걸려 버려서 제대로 나다니지도 못하는 꼴이라니. 그래도 지금은 사람 대신 사물에 화를 풀어서 다행이네.

초토화된 주방을 쓱 둘러본 벨리알이 냉수를 계속해서 들이켜는 니스로크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의뢰 보상은 언제 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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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때문에 혼란이 생길까봐 덧붙이지만 등장인물들은 전부 인간입니다. (수인이나 드래곤, 정령 등은 등장하지 않아요.)

벨리알-남색의 악마. 가장 음탕함과 동시에 가장 매혹적이다. 소돔에서 숭배를 받았다.
니스로크-식도락의 악마. 인간과 악마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다.
다곤-왕실의 빵을 굽는다. 펠리시테 인들은 그가 농경술을 발명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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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3 11:04 | 조회 : 1,802 목록
작가의 말
ㅇ사람ㅇ

원래는 NL이었지만 BL의 맛을 알게 된 후 여주가 남주가 되어 버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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