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한번은 우연, 두 번은 운명(3)

옅고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열려져있는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에 부드럽게 유영하는 것과 같이 흔들렸다. 반대로 흔들없는 눈동자가 유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17살이라. 그것보다 2살 정도는 더 어려보였고 체구도 외소했다. 분명 느껴지는 스텟도 낮았고 약자의 표본같은 어린 아이인데 강했다.

랭커로서의 본능이 유현을 강자라고 판단하고 있었
다.

“설마라고 생각하다 못해서 확신하고 있지만 혹시 너는 차원이동자인가요? 그것도 얼마 안되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유현은 이가 대공이 준 호신용 단검을 케이프속에 안 주머니에서 꺼내들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듯이.

유현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양손을 어깨까지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느릿한 걸음으로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현재 대상은 당신에게 호의적입니다.]

떠오른 메세지를 보며 유현은 안심했다.

“역시.”

“……!”

안심하는 순간 빠르게 단검을 쥐고 있던 손목을 붙잡혔다. 얼마나 강하게 잡았는지 단검을 놓칠 정도였다. 손목을 잡은 손이 손목을 감싸고 남을 정도로 크고 거친 굳은 살이 느껴졌다.

라인은 잡은 손몬을 그대로 올려서 유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드물게 그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탐지 스킬이 있는게 맞나보네
요.”

허를 찌르는 말에 유현은 재수없게도 섬멸자 유성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탐지 스킬을 틀켜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던 그 재수없고 미친놈의 말이 귓가에서 사리지지 않았다.

“제가 너를 죽이는 것을 호의라고 생각하면서 죽일 미친놈이었으면 지금 너는 죽었어요.”

굳은 살이 박인 곱게 뻗은 손가락이 유현의 손목의 흉터를 쓸어내렸다. 굳은 살 너머로 전해져오는 흉터의 촉감에 라인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는 잡았던 손목을 놓고 떨어진 단검을 주워서 친절하게 언제그랬냐는 듯이 웃는 얼굴로 칼을 다시 유현의 손에 주어주고 바로 돌아서서 말했다.

“그럼 계속 가보도록 해요.”

유현은 어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채로 그대로 드러내며 어이없어하며 멀어고 있는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위협. 같지도 않은 위협인데?




※※※



포티리스의 생활은 언제나 똑같았다. 용의 기억이 완전하게 계승된 후로 부터는 모든 것이 쉽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무슨 문제든 어떤 난제를 만나던 기억속 용의 기억이 문자화 된 것들이 나에게 답을 속삭였고 그건 틀린적이 없었다.

-악인아, 여기 지루해!

“그러게.”

하얀 새는 아무리 내가 이제 자유의 몸이라고 말하며 날아가라고 해도 고향이 아니면 싫다는 이유로 아직도 내곁에 남아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 케이프 안쪽에서 잠들어있는 하얀 새의 존재는 솔직히 나조차 잊을 때가 있었다.

-거짓말! 벌써 일주일째 여기 있잖아!

불만스럽게 내가 펴고 읽고 있는 책에 앉아서 날갯짓하는 하얀 새를 바닥에 내려놓고 계속 읽던 부분을 읽었다. 나도 딱히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은 아니었다. 격(格)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읽고 있는 거였다.

절대 친구가 없고 사교성도 없어서 혼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읽는게 아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왜요? 왜 그렇게 봐요.”

측은하게 보는 시선에서 약간의 눈물의 냄새가 났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이해합니다.]

“뭘 이해한다는 말인데요.”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자신도 친구가 한 명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

…무시하자. 친구없는게 뭐 대수라고. 인생은 혼자라고 했어.

유현은 다시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새는 유현의 케이프 속의 안주머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사락-사락-.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도서관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해가 져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기척없이 접근해 온다는 사실을 모른채 유현은 계속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500백 페이지가 넘는 가죽으로 만든 책들이 책상에는 잔뜩 쌓여있었다.

“격이란 무엇인가. 저자 하르망 텔.”

“……!”

뒤에서 지는 그림자와 동시에 귀의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유현이 의자에 앉은 상태로 뒤로 넘어 갈려고 하자 남자는 길고 근육이 잘 잡혀져있는 팔로 서둘러 의자를 받치었다.

“…여기에는 왜 있어.”

어떨결에 품에 안기는 꼴이 된 유현이 미간을 좁히며 라인을 올려다 보았다. 라인은 느긋하게 의자에서 손을 떼고 책이 쌓여있는 곳을 피해 오른쪽 책상에 앉았다. 키가 큰 라인은 아주 쉽게 앉을 수 있었다.

“일주일째 강의란 강의는 다 빼먹은 불량 학생을 잡으러 왔어요. 일단 저도 강사라서요.”

하얀 갑옷이 아닌 가벼운 하얀 와이셔츠에 가벼운 외투만 걸친 모습은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름돋는 놈이 강사라는 사실도.

“그것보다 격(格)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에요? 그거라면 내가 잘 알려줄 수 있는데.”

“…됐어.”

휙 돌리는 고개에 맞춰서 유현의 오른쪽 귀에 달린 작은 은색 체인과 그 끝에달린 흑요석이 흔들렸다. 그 귀걸이를 눈을 갸름하게 뜨고 유심히 보던 라인이 이내 손을 뻗어 유현의 귀가에 가져다 대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놀란 유현의 몸이 순식간에 얼음처럼 굳었지만 라인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귓볼까지 내려와 귀걸리를 만지작 거렸다.

“손 안떼?”

“이 귀거리 특이하네요. 한번도 본적없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요.”

“씹냐.”

“거기다 묘한 기운까지 품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숨기고 있어서 볼 수가 없네요.”

자기가 할 말만 하는 놈에게 대화란걸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것보다 이 귀거리가 특이하다니. 최후의 신이 준거니까 그야 특이하기는 특이하겠다면 묘하게 신경쓰였다.

“여기다 신성력을 주입해봐도 될까요?”

“뭐? 싫어!”

손을 피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날려는 순간 귀거리를 잡고 있던 라인의 손에서 하얀 빛이 폭발하듯이 뿝어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귀거리에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시끄럽게 뜨는 메세지 창들.

[최후의 신의 축복이 신성력을 흡수합니다!]

[최후의 신의 축복의 권능이 일부 해금됩니다!]

[당신의 ‘격’의 미달로 권능 개방이 불가능합니다!]

그놈의 격이 뭔지. 또 격에 막혔다. 힘이 필요한데 격이 없거나 부족해서 모든 것이 막힌 느낌이었다.

“더, 더 넣어봐.”

흥미롭게 보다 이내 떨어질려는 손을 붙잡고 오른쪽 귓가에 다시 갖다 대었다. 그러자 라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곤란해요.”

“어, 신성력 좀 다시 넣기 곤란해?”

“그건 곤란하지 않지만 지금의 너의 행동은 곤란해요.”

“왜?”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거릴 때마다 부드럽고 얇은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손끝을 스쳤다. 그러자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어 라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상의 수호자 용의 용마력과 신앙으로 부터 성질을 바꾼 마력, 즉 신성력과는 서로 상극이었다. 그래서인지 닿으며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마법, 그것도 최상급의. 용과 만났어요?”

“어. 그것보다 신성력 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하얀 빛의 파동을 만들며 내며 귀거리와 유현의 머리카락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마치 녹아 사라지듯이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에서 색이 빠져나가고 칠흑과 똑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드러났다.

“…….”

“뭐야, 왜 그래?”

라인은 답지 않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름 끼치던 미소는 어디에 팔아 먹었는지 입까지 벌린 상태였다.

“나는 밤하늘 보다 검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뜬금없이 갑자기 왜 검은색 타령이야. 여기서 인간은 가질 수 없는 색이 라면서.

…잠깐만 혹시 설마.

머리속의 정보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용의 용마력과 신성력은 상극이라는 것을. 분명했다. 마법이 풀려서 지금 내 머리카락은 검은 색일 것이다.

어느덧 해는 지고 둥근 달이 그 빛을 땅에 내렸다. 창문으로 보이는 검푸른 밤하늘과 둥글고 하얀 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두루고도 지독하게도 잘어울리는 유현을 리언은 홀린듯이 쳐다보며 눈에 담았다.

그것은 처음보는 완벽한 흑발과 흑안이 신기한 것도 있었지만 그저 유현 자체가 매력적이게 느껴져서 였기도 하였다.

“음, 차원이동자인거 아니까. 설명을 필요없지?”

리언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2년.”

…뭐가 2년이라는 거지?

“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여기 지하에는 금서(禁書)들이 보관된 지하 도서관이 있어요. 그곳으로 가보도록 하세요.”

리언은 낡은 황금색 열쇠를 나에게 건내주고는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어떻게 찾을 지는 너에게 달렸어요. 그리고 머리색과 눈색의 제가 신성력으로 원래대로 바꿔났으니 안심해도 좋아요.”

그러고는 미련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뭐지? 괜찮은 건가?

손안에 낡은 황금 열쇠를 만지작 거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 있는 격에 대한 책을 읽어봐도 나오는 것은 오로지 시간과 재능과 운만으로 격을 쌓는 것이 가능하다고만 나오지 제일 중요한 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얻는 지는 서술 되있는 책은 하나도 없었다. 용의 기억으로 찾아봐도 태어날때 부터 녹룡은 아주 거대한 격이 완성된 상태여서 그런 정보는 없었다.

…결국 가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열쇠는 분명 무엇을 열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티리스에 온진 일주일, 그것도 도서관에만 박혀있던 나는 여기 지하가 있는 것도 몰랐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다.




※※※




“안돼, 안 갈거야.”

“왜.”

“거기 잘못 들어갔다 걸리면 난 이가 대공에게 한 번죽고, 단장에게 두번죽고, 마지막으로 리언에게 놀림을 받다가 창피해서 세번죽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젖는 이는 다름 아닌 네이크였다. 그는 아직 포티리스에 재학중 임에도 혁명단 특수부대인 그림자의 일원이기도 한 특수 케이스였다.

“…네이크.”

“되게 불길하게 부르네. 왜?”

“내가 네 방에 쳐들어 왔을 때부터 이미 모든것이 정해져 있었어.”

너는 나의 길잡이가 될 운명이란다. 죽을 때는 같이 걸려서 죽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죽어도 안가!”

“네이크, 내가 아직 내기해서 이긴 보상을 안 받은 거 알지?”

“그, 그건!”

당황해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는 꼴이 애처로워 보일 법도 하건만 유현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명령하는 어조로 말했다.

“당장 지하 도서관으로 날 안내해.”




※※※




[스킬 ‘그림자 이동’ 이 발동합니다.]

떠나기 전에 이가 대공에게서 뜯어, 아니 배워온 스킬로 경비의 눈을 피해서 네이크를 따라 생각보다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스텟이 바닥을 기는 나는 스킬을 사용해서 그 격차를 메울 수 밖에 없었다. 뜯어, 아니 배우느라고 개 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했지만 다행이 나에게는 재능이 있었는지 무려 6시간 만에 ‘그림자 이동’을 획득 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의 경비는 없어.”

야심한 시간 도서관에 몰래 잠입한 나와 네이크는 의심스러운 곳을 여러군데 찾아보았다. 네이크가 알고있는 정보를 토대로 하나하나 착실하게 알아본 결과 우리는 미세한 바람이 세어나오는 책장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장치가 있을 텐데.”

네이크가 구석구석 책장을 만지작 거렸다. 나 또한 책장을 이리저리 만져봤지만 수상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하얀 새의 잠에서 깨어난 것인지 케이프에서 나와서 내 어깨에 앉아 하품을 하였다.

-하음, 웅? 뭐야, 악인아. 왜 여기야?

근처에 네이크가 있었기에 입모양으로 말을 전달해 보려고 하였는데 다행이도 하얀 새는 영리해서 금방 알아들었다.

-음, 그러니까. 숨은 걸 찾으면 되는거지? 나 그런거 특기야!

재밌는 놀이를 반견한 것처럼 하얀 새는 콩보다 작은 좁쌀같은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저 아래에서 파란 책이 매우 수상해! 건드려보자!

아마 단서도 없었기에 하얀 새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무릎을 바닥에 대고 조심스럽게 파란 책을 봤다. 놀랍게도 파란 책의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져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자 책이 꽃여 있던 자리의 뒤에 열쇠의 구멍이 있었다.

“찾았어.”

“뭐, 정말?”

네이크가 바닥에 붙어서 열쇠 구멍을 확인하고는 실망했다.

“에이, 이거 뭐야. 열쇠가 필요하잖아.”

“그럴 걱정없어. 열쇠는 가지고 있거든.”

품속에서 아까 라인에게서 받은 낡은 황금색 열쇠를 꺼내들자 네이크가 그건 또 어디서 났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 너 설마.”

“오해하지마 강사한테서 받은 거야.”

“강사라니 무슨 강사?”

“있어. 알려고 하지 않는게 정신 건강에 좋아. 어차피 곧 알게 될꺼니까.”

이가 대공의 소개로 왔다면 그 놈은 100% 혁명단 이거나 혹은 협력자 정도는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으니까.

네이크는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책들 사이로 열쇠를 쥔 채로 손을 넣어 열쇠를 열쇠 구멍에 맞추어 넣었다. 그리고 돌렸다.

달칵-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에 몸을 빼고 한 발자국 물
러났다.

그러자 책장은 가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옆으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나타난 광경에 나와 네이크는 동시에 서로
를 바라봤다.

“…….”

“…….”

아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린 아이가 모험을 하다 예상치 못 한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비슷했다.

“…이 맛에 모험가들이 모험을 하는 거구나.”

침묵 속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네이크였다.

-들어가 보자!

하얀 새의 재촉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가보았다.

“…상당히 깊어.”

“일단 난 망을 볼 테니까. 어서 갔다 와.”

“그래도 괜찮아?”

“물론이지. 어서 갔다 와라.”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휙휙 졌는 네이크의 저 태도가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갔다 올게.”

4
이번 화 신고 2019-08-14 21:54 | 조회 : 865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이 세계 기준으로도 19살이 성인이랍니다^ㅠ^...그냥 그렇다고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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