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4)

혹시 몰라 미친놈이 사리진 뒤에도 조금 더 기다렸다.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겠어. 내가 더 조심해야지.

“이제 나가볼까.”

조심스럽게 침대 밑으로 발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피에 젖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과도를 품속에 넣은채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시원한 바람이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려트렸고 따사
로운 바람이 부서진 벽에서 흘러 들어왔다.

음침했던 내가 살던 그 산과는 다르게 이곳은 푸르고 활기 넘치고 아름다웠다. 가슴 한켠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이 경치가 아름다워서 슬퍼졌다.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밖을 향해서 걸어나오자 높게 떠있는 태양과 구름이 보였다.

“와.”

지구나 여기나 하늘은 같았다.

“어디로 가야 조용한 곳으로 갈수 있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그저 앞을 향해서 걸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분명 산속을 걷고 있었는데 나는 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와있는 거지.

뒤를 돌아보았다. 보이는 건 벽뿐이었고 앞을 보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옷차림이 마치 중세시대의 사람들이 입을 법한 옷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섬멸자인가 뭔가 하는 미친놈도, 날 독살하려고 한 미친 레지나라는 여자도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던것 같다.

워낙 정신이 없다보니 생각하지 못했지만.

뒤는 막다른 골목이었고 앞으로 갈수밖에 없는 일자길이 었기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골목은 추웠다. 나는 추운것을 싫어했다.

이왕 죽는 거면 양지 바른 곳에서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면 저 세상에 가고 싶었기에 검은 후드를 더 깊게 뒤집어 쓴채로 손을 꽉 줜채로 밝은 곳으로 나아갔다.

상인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여러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모든것이 낮설고 두려워서 도망치듯 빠르게 걸었다.

“그 소식 들었어? 로젠 길드의 길드장인 레지나 로젠이 죽었데.”

그러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에 발걸음이 멈췄다.

“그거 길드장만 아니라 그 길드 전부가 몰살 당했고 하던데. 그 범인이 섬멸자가 아니냐는 말도 돌고 있잖아.”

역시 미친놈이었어. 빨리 더 빨리 멀리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치자.

다시 굳게 다짐하면서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었다.

어떻게 해서 밖으로 나가는 거대한 문을 찾기는 찾았다. 문제는.

“이봐, 꼬마야. 신분증을 보여줘야지 나갈수있어.”

문을 지키는 병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열린 문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키가 2m는 족히 넘어 보였다.

160도 안되는 내가 볼때는 곰처럼 보일지경이었다.

“요즘 섬멸자 때문에 흉흉해서 말이지. 어서 집에나 들어가라. 꼬마야.”

그놈의 섬멸자 미친 새끼. 하, 내가 이렇게 보여도 26의 청년이라는 사실은 안믿어 주겠지.

내가 계속 서있자 병사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손을 뻗으려고 할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아! 대장님.”

“상황을 설명해주십시오.”

병사는 대장이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곤란해 하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뭔가 불길했다. 슬쩍 대장이라는 남자를 올려다 봤다.

[최후의 신의 축복의 효과가 상대방을 꿰뚫습니다.]

[상대방의 모든 방벽을 무시합니다.]

[이름: 제이딘 버드 나이:26살

직업:신도(희귀),경비대장(일반),소드 엑스퍼트(희귀).

능력치:체력[60],근력[80],민첩[40],지력[60],정신력[60],마력[20].

속성:정의(正義),추구(追求)

칭호:직업 정신이 투철한 정의로운 경비대장(희귀),정의에 고뇌하는 자(희귀)

스킬:검기(劍氣)(A)

패시브 스킬: 악인징벌(惡人懲罰)(S),정신 방벽(A)

*대상은 현재 당신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상이 현재 당신을 경계합니다.]

그 미친놈의 프로필을 본 뒤라 그런지 저 수치들이 높은지 낮은지 모르겠다. 중요한건 지금 저 남자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지? 튈까?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건장한 남자에게서 도망칠 자신이 없다.

“이상하군요. 나는 매일 이 마을을 순찰하지만 저런 아이는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얌마! 나 너랑 동갑이거든?

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을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때 시스템 창이 울렸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이 상황을 지켜봅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자신의 신도를 잠시보다 당신을 바라봅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의 선과 악을 가늠 할려고 합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모든 정보를 보호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황해합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메세지 창이 뜬 뒤부터 경비대장의 표정이 구겨지더니 이내 허리에 찬 대검의 손잡이를 당장이라도 뽑을듯이 자세를 잡았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에게 호기심을 느낍니다.]

…뭘 느껴? 미친.

저 놈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엮이고 싶지 않았다. 관심은 사절이다.

일촉측발의 상황이었다.

경비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경비대장은 날 죽일듯이 노려보다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뗄 줄을 몰랐다.

…어떻게 튀지?

방황하고 있던 그때였다.

[거대한 흐름이 당신을 인도합니다!]

그때였다. 메세지 창이 뜨더니 내 발끝의 바로 앞에 싱그러운 연두빛을 내는 길이 생긴것은.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경악합니다!]

내 눈에만 이 연두색의 길이 보이는 것인지 저 정의 어쩌고 하는 놈을 제외하면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 연두색의 길을 믿고 갈지 말지 결정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긴박하기만 했다.

일단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외쳤다.

“잘있어라! 이 짭새 녀석아!”

연두색길에 발을 대는 순간 어디론가 몸이 날라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연두빛으로 변했다.

“이, 이게 무슨!”

갑자기 사리진 소년을 보고서는 경비병은 놀람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 었고 경비대장, 제이딘은 자신을 향해서 외쳤던 짭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황당해하였다.




※※※




이곳은 어디 나는 누구?

오늘만 해도 공간 이동을 2번이나 했다. 이 세계는 도대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폭소합니다!]

저 놈은 왜 웃고 난리야.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
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세지? 무슨 말을 보낸거지?

[메세지가 열립니다.]

[풋, 너 재밌다. 거대한 흐름중 하나가 부른것도 그렇고 무뚝뚝한 제이딘에게 그렇게 소리지르는 것도 그렇고. 근데 짭새가 무슨 뜻이야?]

…거대한 흐름? 그건 또 뭐야.

내가 말하면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했다.

“별 힘도 없고 머리 나쁘고 욕심과 권력만 있는 놈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놈들을 짭새라고 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재취있는 당신의 말을 좋아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메모장에 메모해 둡니다.]

그걸 왜 메모해두는 거야. 이 놈도 제정신은 아닌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서있는 곳은 허허 벌판이었고 눈앞에는 숲이 있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

[숲에 들어가지마.그 숲은 성역이야. 들어가면 죽을 거야.]

들어가면 죽는 숲이라. 이 숲이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여기서 푹 자고 있었으니까. 위험하기는 커녕 잠자기 좋은 곳이었다.

“죽기 위해서 들어가는 거야.”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황해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가지 말라고 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을 만류합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시스템 창에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시끄러워.”

…나는 이제 좀 쉬고 싶어. 이제 끝내게 해줘. 이미 내 세상은 끝났어.

망설임은 없었다. 숲속으로 발을 드려놓자 시끄럽던 시스템 창도 이상한 놈의 메세지도 모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완벽한 고요함이었다.

발바닥에 피가 나는지 따가웠다.

[스킬 ‘무통증’이 발동 중입니다.]

그러다 시스템 창이 하나 뜨더니 이내 고통이 사라
졌다.

무통증이라니 나와 더럽게 잘 맞는 스킬이었다. 이걸 쓰면 죽을 때도 안 아프게 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내 눈 앞에 맑고 투명한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주위의 풀들은 싱그러웠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이런 곳이면 조용히 썩어 사라질 수 있겠다.

어쩌면 이 ‘무통증’이라는 스킬을 써서 익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호수로 발을 넣자 시원한 물의 촉감이 느껴졌다. 호수의 중앙으로 걷자 수심이 점점 깊어졌다. 이윽고 한 발자국 나아가자 내 몸은 수심 깊은 곳으로 가라 앉기 시작했다.

[스킬 ‘무통증’ 이 발동 중입니다.]

고통도 두려움도 없었다. 다만 가라앉으면서도 물을 뚫고 들어와 햇빛을 비추는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깊이 가라 앉고 있는 내가 있는 곳은 점점 빛이 닿지 못해 어두워졌다.

아, 조용하다.

입속에서 공기 방울이 나왔다. 위로 올라가는 공기방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시 뜰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히든 퀘스트가 발생 했습
니다!]

[당신은 일시적으로 수중 호흡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망할. 왜 마음대로 죽는 것도 안되는데!

[히든 퀘스트: 용과의 대화

등급: L 기한: 1시간

가장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성역 녹음의 정원을 다스리는 6번째 녹룡(綠龍)이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호수의 바닥까지 가면 문이 열립니다. 그곳에서 용과의 대화를 마치십시오.

보상:1.용의 기억.]

용이라니 그게 뭔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기다랗게 생기고 수염긴 그 용?

중세 판타지 세계에 별개 다있구나. 나 좀 평검하게 죽게 하면 안되겠냐.

내 몸이 저절로 빛조차 닿지 않은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지만 눈앞이 깜깜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내려 가라앉자 등뒤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았다.

[조건을 달성하여 문이 열립니다!]

“어?”

문이 열리면서 호수의 땅바닥에 있던 내 몸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비명을 참으며 눈을 질끔 감았다.

슈우우웅!

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떠보니 바람이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바닥을 내려온 뒤에 주위를 살펴보니 끝이 보이지 않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어?”

여긴 또 어디야.

-가엾은 아이가 왔구나.

머리속에 직접울리는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내 머리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졌고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허업!”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거대한 녹색의 드래곤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용이라면서 어딜봐도 드래곤이잖아!

위협적일 정도로 거대한 몸.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서양의 전형적인 드래곤이었다.

[당신은 최초로 드래곤의 레어에 발을 들였습니다!]

[최초의 업적의 보상으로 백만 골드가 지급됩니다!]

정신 사납게 뜨고 있는 메세지는 전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저 거대한 드래곤 뿐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가여운 아이야,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단다.

[녹룡이 당신에게 호의를 보입니다.]

시스템도 저렇게 뜨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데.

용이 말이 머리속으로 전해져 왔다.

-가여운 아이야, 너는 죽지 못한다.

“…어째서? 왜, 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버렸다. 나는 어째서 원하는 것을 얻을수 없는 거지? 거창한걸 바란게 아니었다. 그저 너무 지쳐버려서 힘들어서 쉬기를 바랬다.

그저 그거 하나만을 바래왔다.

-오,이런 울지마렴.

바닥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를 보니 녹룡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엾은 아이야. 네가 죽지 못하는 것은 네가 나이를 먹어도 육체의 나이가 같은 것과 연관이 있단다.

평생 숨기고 있던 비밀을 들킨 유현의 몸이 살짝 떨
렸다.

“…어떻게 그걸?”

-용의 눈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없단다.

녹룡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앞발을 뻗어 나를 잡고서는 자신의 옆에 나두고는 거대한 날개를 펼쳐 햇빛과 바람을 차단해 주었다.

-너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시간의 신전으로가서 그곳에 최고 권위자를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 란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을 지켜봐 왔으니 말이다.

정의의 뭐시기 하는 권위자도 있었는데 권위자는 도대체 뭐고 나는 왜 죽지 못하는 걸까. 녹룡은 내 물음을 알아차렸는지 내 물음에 대답했다.

-권위자는 근원으로 부터 선택받아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말한단다. 너희 인간들은 이들을 신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근원? 신?”

무슨 소리지?

-근원(根源). 모든것의 시작점이자 계속해서 만들
어내는 것.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알게될수록 의문이 늘어만
간다.

“하나만 알려줘. 나는 어째서 죽지 못해?”

녹룡이 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땅이 울렸다. 지진으로 인해서 희청거리는 나의 몸을 녹룡의 날개가 받쳐주었다.

-이런. 섬멸자, 그가 나의 정원에서 날뛰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도 참으로 가여운 아이지. 네가 비틀리고 엉킨 선이라면 그는 멈추고 끊어진 선이지. 네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구나.

섬멸자가 왔다니? 비틀리고 엉킨 선이라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늘어만 갔다.

-나의 기억들을 너에게 보여주도록 하겠다. 너는 최
후의 신의 사랑을 받는자. 나의 기억을 볼 자격이 있다.

-자, 어서 가보거라 그가 너를 찾고있다.

녹룡이 날개를 치우자 내 몸이 떠오르더니 하늘에 박혀있는 문으로 높이 올라갔다.

-가엾은 아이야. 다음에 올때는 그도 같이 오려무나.

녹룡이 말하는 그는 섬멸자일 것이다.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머리속을 채우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때문에 두통이 느껴져 그저 몸을 웅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
킵니다.]

천천히 두통이 없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문 속으로 빨려들어 가면서 호수의 밑바닥으로 돌아왔고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잡아 당기는 손길과 함께 정신
이 막대한 지식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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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13 14:39 | 조회 : 1,200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분량을 엄청나게 열심히 늘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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