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침범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평소와 같은 하루였고 평소와 같은 하늘이었다. 평소와 같이 친구랑 동네를 걸어 다니고 평소와 같이 거리 전광판으로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지켜본다.

2765년 늦봄. 테라의 마지막으로 평화로웠던 날. 아침훈련을 마치고 조회시간, 다른 과목 시간에는 자다가 체육 시간에는 살아나서 늘 자신이 하드캐리를 하고 점심도 초고속으로 먹어치운 뒤 한 그릇 더 먹어치우는 기세를 보여준다. 옆에서는 친한 친구인 유한라. 십년지기 친구인 한라가 꼭 같이 붙어있어 주었다. 하교 시간이 되었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한라랑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집에 들어와 둘이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면서 놀다가 시간이 되면 한라가 집에 돌아가는 저녁때쯤, 엄마가 퇴근해 집에서 돌아오고 밤늦게까지 언니 오는 걸 기다리다가 지쳐 쓰러지던지, 아니면 언니를 만나서 활짝 반겨주고 자러 들어가던지 하는 날이었길 바랬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또 개조인간 뭐시기 하던데, 뭘려나~"


그날은, 하교 시간에 하교를 한 후 근처 떡볶이를 사서 나눠 먹던 중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4월 말인가 싶었지만, 검은색의 춘추복을 입고 움직이기에는 겉옷이 필요 없는 날씨였다. 거기에 춘추복은 넥타이 또한 필요 없으니 얼마나 편한가? 오후의 피곤함에 기지개를 켜던 테라 옆에서 떡볶이를 먹던 한라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박수를 한 번 치며 테라에게 말을 걸었다. 이간 아마, 아침에 아이들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했던 내용 중 하나였을 것이다. 등교 때부터 같은 반 학생 몇 명이 모여 아침 뉴스에 나온 소식들을 말하던 중, 개조인간에 관한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개조인간! 막 뉴스에도 뜨고 그러잖아? 어제는 또 한 명이 탈출한 걸 잡았다네, 그런데 말이야…. 그걸 하는 목적이 뭘까?"


이어지는 한라의 말에 테라는 기다란 어묵만 푹푹 집더니 그걸 소스에 한번 담갔다가 빼내어서 한입에 다 넣어 재빠르게 씹어 넘긴 후 대답하였다.


"그거 다 지금 우리한테 피해 주는 건 없잖아?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아무래도 실험에 사람을 써서 그런 걸까?"

"그러게 말이다,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행위는 불법이었다는데…."


으악! 머리 아파! 복잡해! 라며 한라가 애꿎은 떡만 이쑤시개로 푹푹 찌르고 있었다.


"애들은 뭔데 이런 거에 관심이 있는 거야, 자극적인 소재여서 그런가? 아냐, 혹시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하아……."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흐물흐물 거리는 한라를 보며 옆에서 입을 가리고 풉- 소리를 내는 테라였다. 한라가 테라의 풉- 소리를 듣고서는 마치 볼을 복어마냥 부풀리고 자신보다 커다란 친구의 등을 주먹으로 팡팡 때렸다. 테라는 키득키득 웃으며 앞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가고, 한라는 가방을 휘두르며 그녀를 쫓아갔다.


"그나저나 종례시간에 애들 좀 다급한 모습 보이지 않았어?"

"응, 다들 집에 얼른 가던데?"




어느새 둘은 시내 한복판에 나와 있다. 둘의 집은 가까웠고, 이 시내를 지나쳐야만 나오는 동네에 있었다. 가끔가다가 둘은 시내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돌아가기도 했다. 시내의 모습은 매우 복잡하였다. 곳곳에 안내 A.I.가 돌아다니고 홀로그램 광고도 수두룩하다. 전광판은 마치 실제 사람이 들어가 연기하는 것처럼 선명했고, 배달용 드론도 종종 하늘을 날아다녔다. 광장에서는 로봇 전투나 버스킹 공연이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절마다 있는 큰 이벤트를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시내에 사람들도 별로 없고 분위기도 다운된 느낌이었다. A.I.도 로봇도 기동을 멈춘 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계산대 직원들도 어쩐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랬다는 듯이…. 거리에는 온몸을 검은색 옷과 시스템 장치로 치장한 웨어러블 군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학생들도 평소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것 같았다. 물어보아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가 분주했다. 그 현장의 가운데에 있던 테라와 한라, 두 아이 빼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아이들에게 계산대의 직원이 아이들이 고른 물건을 계산하며 축 처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뉴스 안 보셨어요? 난리에요 아주…."

"네?"


한라랑 테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커다란 빌딩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에 나온 아나운서는 침착하지만 조금 떨리는 투가 섞인 말투로 보도를 이어나갔다.


[ 전 세계에서 실행 중인 개조인간 프로젝트 도중, 몇몇 실험체에 신체 이상 변화를 확인하였고 그것들이 본사에 실험실을 탈출하여 지상으로 나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미 상황을 파악 하였지만 대부분은 본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관리 본사 MPCK에서는 남은 실험체의 변이를 막고자 전 세계 연구원들을 소환하였으며, 현재 군인들은 아직 소환되지 않은 연구원들과 추가로 인턴들과 의사 몇 명을 부름과 동시에 나간 실험체들을 사냥하기 위해 출동한 상태입니다.]


테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의 언니도 연구원이었고, 몇 년 전에 한 번. 야식을 먹었던 밤에 개조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요즘 자신이 관리하던 아이가 잠들어버려서 속상하다고. 그때 당시 테라의 언니는 막 초임 때이기도 했으니. 언니가 정말 사람을 말했던 건지 동물을 말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는 언니가 뭘 담당하든 안부가 우선이었다. 개조인간과 변이생물체. 단 두 단어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라 역시 놀란 표정으로 테라를 바라보았다. 테라는 두 손을 벌벌 떨며 전화기를 들어 단축번호 1번에 언니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휴대전화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어……?"


테라는 몇 번이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지만, 그 너머에는 같은 기계음으로 녹음된 여자의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언니 전화 연결 안 되는 거야??"


한라 역시 테라의 팔을 툭툭 치며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테라를 부르던 목소리는 표정과 어울릴 정도로 머뭇거림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테라는 잠시 그 자리에서 굳어있다가 한라가 주는 충격에 정신이 들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라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본사, 실험 모든 것이 자신이 서 있는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역사교과서에 짧게 한 문단으로만 실린 이 프로젝트에 언급된 것. 그리고 반 아이들이 취직하고싶어하는 회사 1위로 올라갔을 정도로.


"ㅂ…. 본사? 아, 본사가 한국에 있다고 들었어! 아마 거기까지 가면 언니가 있을 거야!"


뜬금없는 소리에 움직이려는 테라의 모습을 보고 놀란 한라는 테라의 한쪽 팔을 잡고 뒤로 질질 끌었다. 물론, 한라가 체력이 더 딸려서 오히려 테라쪽으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런데도 놓치지 않고 잘 잡고 있었다. 한라는 팔을 아예 끌어안은 체 한라가 소리를 질었다.


"혼자만 가게?!?!"

"왜??"

"너 전교 하위권 주제에 어딜 간다고 그래?? 나도 데리고 가!!!"

"앗…."


한라의 팩트. 말은 옮았다. 반박할 수 없다. 테라는 늘 성적이 하위권에 턱걸이로 간신히 대롱대롱 일 뿐이었으니깐. 반대로 한라는 상위권이기도 하고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자신의 성적의 벽에 부딪힌 듯한 테라는 몸을 덜덜 떨며 어떻게든 되겠지 란 투로 중얼거렸다.


"힘으로 다 때려 부수면…?"

"진정해, 상대는 연구소 본사야"


하아- 하고 테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네…. 연구소 본사구나!!! 그렇다면 무조건 힘으로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한라는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는 캘린더를 열어 날짜를 바라보았다. `금요일` 이라고 적힌 캘린더에는 마침 다음 주 월요일이 재량 휴업일이고 화요일이 공휴일 이란 걸 알아차리고서는, 씨익 웃으며 부모님에게 전화했다.


"응, 친구가 이렇게 된 거 같이 놀재. 걱정하지 마. 화요일 저녁까진 집에 올게!!"


한라의 부모님은 딸의 외박을 자주 허락하는 편이었다. 아예 한 달 내내 테라의 집에서 잠을 잔 적도 있을 정도였다. 테라의 어머니도 그런 한라를 잘 보아 줄 정도였고, 테라의 언니는 가끔가다가 야식을 1인분을 더 시켜 먹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둘이 생일도 2월 중으로 같아서 생일파티는 언제나 양쪽 집에서 함께 여는 사이였다.

테라의 어머니 역시, 연구원들이 끌려간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테라에게 몸조심 하라며 당부했다.


"언니 잘 있는지만 확인하고 바로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집에서 옷 갈아입고 갈게. 엄마, 4일만 기다려"


둘의 전화가 끊기자, 테라는 자신보다 조그마한 유정을 등에 업고 길을 건너가는 군인들을 뚫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매를 옆으로 가볍게 밀어내는 것에는 테라가 정말로 큰 힘을 발휘하였다. 과장됐을지도 모르지만, 한쪽 손으로 밀쳐도 옆으로 가볍게 움직여지는 수준이었다.

이 시내에서 집까지 앞으로 15분. 근처 아파트 단지가 보이자 둘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려 달려갔다. 삑, 삑, 삑, 소리가 나는 도어락과 홍채인식작업을 완료하면, 철로 된 문이 옆으로 밀리며 열리는 형식이었다. 두 사람은 교복을 벗어두고, 가방도 던진 뒤, 개인 서랍을 열어 옷가지들을 꺼내보았다. 엉망진창인 옷가지 중에서 한라는 분홍색 후드를 발견해 꺼내보았다.


"에? 뭐야 너 분홍색도 입어?"

"...아니"
"이거 너랑 같이 입으려고 세트로 샀다가 주는 걸 잊어버린 거였어"


아하! 하하! 라는 한라의 웃음소리도 잠시, 테라는 같은 색의 검은 후드를 입기 시작했다. 한라도, 얼른 윗옷을 먼저 갈아입었다. 다행인 것은, 둘 다 교복 바지를 입었다는 것. 교복 바지는 움직임이 좋다는 것. 그들에게 옷을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었다. 테라는 머리를 묶으려 했지만 먼저 중요한 건 자신의 언니의 안부였기에, 그저 언니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분홍빛 리본이 달린 머리끈을 집어 바지에 있는 주머니에 넣었다. 후드에 달린 주머니에 그 둘은 자신의 카드와 돈, 그리고 기타 소지품을 넣어두고 최대한 가벼운 복장을 하였다. 이 상황에서 무게만 더 늘리면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둘은 잔뜩 긴장한 체로 문을 열었다.




어느새 도시는 군인들의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이상 변이체들이 이 장소까지 내려온 것이다. 차 안에서는 비상용 총으로 이상 변이체를 쏘아대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둘은 아파트의 출입문 밖에서 그 난리 통을 바라본다. 여기저기 튀어있는 형형색색의 액체들은 아마 그들의 체액이나 혈액 같은 것인가? 이상 변이체. 그것들의 모습은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변이체라는 말답게 어떠한 동물인지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형태. 그나마 알아낼 수 있는 그것들의 특징은 검은색과 그 외에 검은색과 비슷한 색이라는 것. 행동패턴도, 각각 달랐다. 인간에게 친근하고, 무뚝뚝하고, 악의적이고 그 밖에도 여러 케이스들이 보인다.

뛰어다니는 검은색 이상 변이체를 두 동강 내는 군인의 머리를 날아다니는 다른 이상 변이체가 물고가는 모습,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어 변이체의 기다랗고 날카로운 발톱에 옷이 걸려 변이체의 눈높이까지 올려진 같은 학교 남자 동급생, 차로 그것을 치려다가 단단한 비늘을 세워버려서 되려 찌그러져 버린 운전자까지…. 둘의 눈앞에서 세 사람이 죽어 나간다. 3분 만에, 거기에 근처를 둘러보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다.


"........"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뭘 더 하겠는가? 이 이상 움직여버리면 분명 저것들의 먹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어디서 누군가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 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한쪽 손을 잡은 뒤 출입문에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뭐야 너네 얼른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역으로 이상 변이체들을 군인들 여럿과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비무장 상태의 여성이 제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 변이체는 바닥과 거의 하나가 된 체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 단단한 식물 줄기에 묶인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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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7 23:07 | 조회 : 394 목록
작가의 말
최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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