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3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사랑은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었더니 사랑해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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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 난 후, 화장실에서 연거푸 세수를 했다. 소매가 젖고, 앞머리가 젖고, 얼굴이 젖고, 마음이 젖는다. 나의 모든 것이 물에 잠긴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물을 잠그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영 형편없네."

인상이 구겨졌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면 12년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만 같은데.
"엄마, 나 지독한 악몽을 꿨어.'''라고 칭얼거리며 오늘은 집에서 놀자고, 추우니까 제발 집에 있자고. 하지만 현실은 악몽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비참하니까. 매번 이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하는 순간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들고야만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수하다가 질식사라든가 뭐 그런거 하려던건 아니지?"
"헛소리 하지말고 하려던거나 해."

휴지를 여러장 뽑아 옷이며, 머리며 아무렇게나 닦아대었다. 생각보다 더 많이 젖어있었다.

"나는 머리에 총쏘고 죽을라고."
"그러던가."
"뭐야. 나 진심이야."
"그래. 나도 진심이야. 그렇게 죽든가 말든가."
"그래도 우리 같은 동기인데..."
"나 바빠서 먼저 가볼게."

더이상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누군가의 고백을 들어준다고 한들 이해도, 동정도, 공감도 그 어는 것 하나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 죽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렇게라도 죽을 수 있어서 부럽다.'고 여기는것.




[회장실]

똑똑-

"들어와"

그의 등뒤로 이미 해가 졌는지 푸르스름한 하늘이 깔려있었다. 아름답고도 찬란한 블루 오션. 동굴의 형태를 띈 깊은 바다 속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뭐야?"

멍하니 서있는 내게 그가 물었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하고싶지 않았다.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 그는 일부러 오늘 나에게 암살을 맡겼고,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왜 이렇게 젖은거야?"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그도 나를 쳐다봤다.

물을 닦았다고 닦았는데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이 내 생각까지 훑고있는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은 한없이 따듯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걱정어린 눈빛이었다. 난 그런 그의 눈에 약했고 그도 알고있을 터였다. 머리카락도, 옷도, 마음도 적셨던 물이 눈에까지 번지고 있었다.

"나를 위한것도 너를 위한것도 아닌, 우리를 위한 사랑을 해야하는 거라며."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목줄도 우리를 위한 사랑이야?"
"난 나의 개새끼를 사랑해. 사랑하기 때문에 잃기 싫은거야."
"그건 우리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너를 위한 사랑이잖아."

그가 나의 말에 한번 웃어보이더니 내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나는 연이어 그에게 물었다.

"이 한쪽 눈도 우리를 위한 사랑이야?"


나의 질문에 그가 되려 질문해왔다.
"그러는 너는."

"나?"
"너는 내 곁에서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
"그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너는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만 보았다. 오래 응시한 탓인지, 아니면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 탓인지 눈 앞 초점이 분명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해봐."
"그런거 할줄 몰라."
"주인이 개새끼를 사랑하는 것보다, 개새끼가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야하는 법이야."

그건 사랑이 아닐터였다. 무조건적인 복종일터였다.
넘어가 있는 내 머리카락을 그가 손으로 털어주었다.


"이렇게 만져주면 꼬리도 흔들고."

그에게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거란걸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산책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후두둑, 결국 눈에까지 차오른 물이 뺨을 타고 넘쳐 흐르고 있었다. 문득, 내가 흘린 눈물의 양이 어느정도 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호수를 이루기에는 아직 멀었겠다는 생각과 함께 죽기전에는 호수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손길에 의해 머리카락 끝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동시에 정신이 붕괴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개새끼에게 어미란, 젖 빨때 이후로는 찾지도 않는 존재인데 너는 어떻게된게 잊지도 않고 잘도 찾네."
"나는 개새끼가 아니라 사람새끼니까."

꾹꾹 눌러담아 내뱉은 목소리가 그에게 꽤나 진중하게 다가왔는지 하던 행동을 멈추고는 표정없는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람새끼더라도 개새끼처럼 키워졌으면 개새끼인거야."

목줄을 쓰다듬어왔다.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낑낑 거리는거 보니까 겨울 바다가 어지간히도 보고싶은가 보네."

목줄을 쓰다듬던 손이 얼굴위로 올라와 눈물을 훔쳐주었다.

"내일 가자 겨울 바다."
"내일 가는 겨울바다는 소용 없다니.."

내 말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나는 12월25일 1년에 단 한번 뿐인 날만을 제외한 모든 날, 너를 데리고 바다에 가줄거야."
"나쁜새끼"
"잊어."
"잊으라고?"
"잊으면 12월25일에도 가주지."

머리 속에서 그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대었다.
..........잊으면 12월25일에도 가주지.
..........잊으면 12월25일에도 가주지.
..........잊으면 12월25일에도 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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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01 22:48 | 조회 : 491 목록
작가의 말
그린소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지지고 볶고 띵가띵가하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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