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길가에서의 달콤함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랜만에 아무런 일이 없는 날이였다. 가게 알바는 어젯 밤 불태웠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때보다 더 붐비는건, 사람들의 설렘에 의해서 일 수도 있다. 막상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니, 생각보다 조용한 오전이다.

대학교 강의도 없는 터라, 도희는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나도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느긋한 오전을 만끽했다.

그러다 부엌 쪽에서 나는 허기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도희는 침대에서 일어나 뻗친 머리를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부엌으로 걸어갔다.

"율아, 아침했어?"

"응, 잘잤어?"

목이 훤하게 드러나는 니트를 입은 율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도희를 바라봤다. 아침 햇살에 율의 회색 머리칼은 은색으로 반짝거렸다.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도희의 눈을 바라보던 율은 푸슬, 웃었다. 도희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삐죽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지며 하루를 시작했던 도희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감탄아는 도희를 의도치 않게 발견 하곤 꽤나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있었지.

그런 평소의 도희도 좋지만, 이런 도희의 색다른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니까.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이미 식탁에 차려져 있는 구운 소시지, 스크램블 에그, 셀러드와 팬케이크. 모양도, 냄새도 완벽할 정도로 맛있어보였다. 도희는 힘들었겠네,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 그- 크리스마스, 라고 들었으니까."

특별한 날이잖아, 나름. 부끄러운듯 말하는 율이에 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리스마스. 사실 무교인 도희에겐 별로 큰 의미는 없는 날이였다. 그냥, 친구나 여자친구 -물론 여자친구 예전 때 이지만- 가 귀찮게 약속을 잡아대던 그런 날.

어느새 식탁 앞에 앉아 율이 만든 셀러드를 오물거리며 도희는 생각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만나자는 모임은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별로 내키지 않아도 몇 모임 정도는 어울려 주러 갔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싫었단 말이지.

그게 무슨 이유 때문이였을까, 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율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음-? 저 눈빛은, 뭔가... 바라는 그런 눈빛인데.

"왜, 율아?"

"그... 음-"

율은 뒷목을 글적이다 부끄러운듯 말을 꺼냈다.

"오늘, 크리스마스라니까, 밖에... 나가면 안될까, 해서. 둘이..."

아무래도 보통 커플들 끼리 하는 그런 데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말 같았다. 하긴. 그럴만 했다. 지금까지 밖에서의 데이트는 한번도 해본적 없으니까. 거기다 커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알고있다는 듯한 표정에, 도희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 그래. 약속도 없으니까."

도희의 말 한마디에 율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포크로 소시지를 집어 먹으며 순전히 좋아라 하는 율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도희는 이런 율을 보려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약속을 잡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리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 인파가 몰린다 해도, 크리스마스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번화가는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다른 날과는 다르게 코트까지 챙겨 있고 신경 쓴 율이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는건 기분탓인 걸까, 싶었다. 평소엔 가디건이나 니트 위주의 부드러운 스타일로 옷을 입던 율이였기에, 코트를 입은 율이 색다르게 보였다.

그런 율을 바라보는 도희도 나름 신경 쓴 듯한 옷차림이였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검정색 가죽 재킷은 생각보다 훨씬 도희와 어울렸다. 잘생긴 것을 모자라 어딘가 모를 섹시함까지 넘치다 못해 흘러 내리는 도희의 모습에 율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였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에 감탄하며 길을 걷는 도중, 율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 도희에게 속삭였다.

"손, 잡아도 될까."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율에, 도희는 웃으며 율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돼."

웃어보이는 도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율은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추운 크리스마스 날, 서로의 손은 유난히 따뜻했다.

*

"저... 저기요."

아까 먹은 아침에 꽤나 배부른 상태라 점심은 건너 뛰고 여기저기 여러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 도중, 어느 여자 한명이 도희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으로 3번째. 처음은 두 명의 여자들이 같이 놀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고, 두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거절했고.

"저 그쪽, 너무 제 스타일이여서 그런데... 여자친구 없으시면 전화번호 좀..."

도희에게 말을 걸어온 여자는 자신의 외모에 꽤나 자신감이 있어보이는 여자였다. 긴 생머리를 매만지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폰을 도희에게 내미는 여자는 속으로 분명 자신에게 넘어오겠지, 하며 도희에게 매력적인 눈웃음을 보냈다.

도희는 그런 여자를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옆의 율을 힐끔 쳐다봤다. 율은 꽤나 불안한듯 보였다. 도희와 잡고있는 손은 율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고, 여자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불안함에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희는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혹여나 도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죄송한데,"

저 남자친구, 있어서요. 얘가 제 남자친구에요.

여자의 여우같은 눈웃음에 도희는 같이, 여자보다 더 예쁘게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옆의 율과 잡고있는 손을 그대로 들어 여자에게 보여줬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그런 도희의 행동에 여자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말을 더듬으면서 자리를 떴다. 도희는 바로 율에게 시선을 돌렸다. 율의 눈동자는 놀람과 기쁨, 안도가 섞겨있는 듯한 감정이 보이는 듯 했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좋아하는건- 사랑하는건 넌데."

그렇게 놀라면 내가 뭐가 돼.

"...사랑해."

율은 도희의 말에 눈물은 머금고는 도희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으며 속삭였다.

그 둘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저 먼치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두 사람이였다.

"하... 윤도희...?"

그 누군가는, 즐거운 크리스마스 날과는 거리가 멀게 인상을 구기고 있는, 어느 남자,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도희를 싫어하는 도희의 대학의 같은 과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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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20 21:59 | 조회 : 1,282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사실 독수리 타자라 언제 한번 타자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하는데 하다보니 꽤나 빠른 독수리 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시간 짬내서 들어와 짧게나마 봤어용 ㅎㅁㅎ는 제가 없는 동안 하트 남겨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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