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3-2

"그나저나 화장실에 들어왔으니 볼일은 보고 가야 되겠지?"

"응?"

"내가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했는데 두 개 다 선택했으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뒷말은 듣지 않았지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부탁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가 하는 말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루카스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볼일 보면 오늘 있었던 일은 용서해줄게."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지만, 루카스의 몸은 이미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에반을 바라봤지만, 그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그저 웃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망설이는 루카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포개지며 둘을 가로막고 있던 문의 안쪽으로 에반이 들어옴으로써 그 공간은 이제 그 어느 곳보다도 위험한 공간으로 변했다.


"뭐해? 안 벗을 거야?"

"제발…."

"내가 벗겨주길 원하는 거야?"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눈물을 흘리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강압적인 명령에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에반의 눈동자가 광원과 같은 선명한 빛을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루카스는 곧 무언가에 이끌리듯 바지 버클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에반은 웃고 있었고, 노출된 살갗에 닿는 공기는 차가웠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옅은 색의 페니스가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에반의 시선은 그곳에 머물러 떠날 줄을 몰랐고, 곧 그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루카스는 움찔하며 몸을 떨었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에반의 손은 루카스의 페니스에서 앞뒤로 점점 더 속도를 더해가며 움직였다.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은 느낌, 목덜미에 닿는 웃음 섞인 더운 숨결, 민감한 부위에 느껴지는 짜릿한 감촉.

그 모든 것에 정신이 쏠려 루카스는 하마터면 에반의 손에서 발기할 뻔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급히 손을 밀어냈다.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웃음을 흘린 에반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조금 딱딱해진 루카스의 페니스를 가만히 한 손으로 그러쥐었다.

여기에서 소변을 보지 않으면 에반이 자신을 돌려보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루카스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루카스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변기 안을 들여보다가 허리를 매만지는 손길에 놀라 순간적으로 아랫배에 힘을 줬고, 그와 동시에 조그마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맥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기가 힘들어 그는 결국 눈을 감았다.

하지만 하체에 느껴지는 또렷한 감각과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물소리가 그 상황이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루카스는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기도 전에 계속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물줄기가 잦아들고, 루카스는 그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뭐야, 또 울었어?"


젖은 눈가를 매만지는 그 손끝에 매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무도 끔찍한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의 원인이 에반에게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듯 어린아이처럼 매달려 서러운 눈물을 토해냈다.

에반이 그 작은 몸을 끌어안자, 그에 화답하듯 더욱더 몸을 밀착하는 루카스는 이제 더 눈앞의 남성에게 대항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루카스, 이쪽으로 와."


에반은 루카스를 연인처럼 대했다.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했고, 마른 머리칼을 매만지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그리고 루카스는 어느새 그런 그의 태도에 익숙해져,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경청했고,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그의 손길에 반응해 머리를 기울였다.

약 2주일 전에 일어났던 화장실에서의 끔찍했던 사건이 꿈인 것처럼 둘의 사이는 평온했다.


''''''''''''''''''''''''''''''''''''''''''''''''''''''''''''''''네가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나는….''''''''''''''''''''''''''''''''''''''''''''''''''''''''''''''''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며 에반의 품에 안겼던 루카스가 들은 그 희미한 목소리는 그의 뇌리에 박혀 떠날 줄을 몰랐고, 저항보다는 순응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걷히지 않는 불안의 안개는 항상 루카스의 곁에서 그를 괴롭혔다.



"너 에반이란 사귄다며?"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불안의 씨앗이 거대한 식물이 되어 지면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나는…."


한 명의 입술에서 퍼진 그 말은 주위에 있던 이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기에 충분했고, 확실한 답을 하지 않는 루카스의 태도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렵기에 아니라는 한 마디가 목 안쪽에서 막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에반과 나는 그런 사이가…."

"맞아."


루카스의 말을 가로막듯 뒤에서 울려온 큰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한곳으로 모였다.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소란의 중심이 된 곳까지 걸어오는 에반은 놀란 듯 행동을 멈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루카스와 나는 특별한 사이야. 루카스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숨기고 있으니까 소문은 나지 않았으면 하는데, 다들 협조해 줄 거지?"


겁에 질려 몸을 떠는 루카스의 어깨를 끌어안은 에반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루카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에반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걸음걸이가 빨랐고, 약 한 달 전에 입술을 겹쳤던 그 으슥한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루카스는 자신의 앞에 마주한 거대한 그림자에 공포를 느껴 양손을 꼭 움켜쥐었다.

에반은 화가 나 있었고, 루카스는 자신이 그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 루카스. 넌 어째서 번번이 나를 실망하게 하는 거야."


에반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단정하게 정돈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는 언성을 높이거나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그 상황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루카스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왜 우리 사이를 부정한 거야.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다들 네 말만 듣고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닌 거로 알았을 거야."

"그건…."


루카스는 무언가 말하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한들 에반을 설득할 수는 없음은 당연했고, 오히려 그의 화를 돋우게 될 수도 있었기에 입을 다문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하지만 에반은 오히려 그런 그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인지 눈썹을 구겼다.


"루카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좋아."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그래, 그래. 이번에는 네가 잘못한 거 맞지?"

"응."


루카스의 뺨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웃음을 짓는 에반은 순순히 잘못을 시인한 그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보였지만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눈동자에 아직도 원망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네가 잘못한 거니까 내 소원 하나 들어줄래?"


얼핏 다정한 말투로 들리는 목소리는 루카스의 마음에 숨겨져 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남김없이 꺼내면서 점점 큰 압박으로 그를 덮쳤다.

거절은 있을 수 없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사랑해, 루카스."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의 귓가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 에반은 그 날 루카스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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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10 20:24 | 조회 : 1,158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끄으...이번에도 늦었어요ㅠ 정말 죄송합니다. 저번화 댓글 남겨주신 만나서반가워님 감사드리고, 읽어주시고 하트 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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