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의 끈 (1)

사람들이 다가온다. 누구나보아도 험상궃게 생긴 이들이 다가오자 공달은 두려움을 느껴 재빨리 도망쳤다.

하지만 두 다리가 빠지도록 달리고 달려도 쫓아오는 이들과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아 무한의 시간을 그들에게 쫓기었다.

" 억! "

평지에 갑자기 생긴 돌부리에 걸려 공달은 넘어지고 뒤 쫓아오던 사람들은 하나하나 공달의 목에 발을 올린다. 몸을 흔들어 벗어나보려고 하지만 넘어진 순간부터 몸은 움직이지 않는 다. 눈을 치켜들고 자신을 밟은 이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 사월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신이난 듯 웃었다.

" 버러지 같은 것. 네 놈은 여기서 죽는 것이 제국에 이롭겠구나. 하하하하 "

-콰직!

" 으아아악! "

" 마마! 무슨 일이시옵니까! "

공달이 낸 괴성에 밖에 있던 시종들이 다급히 들어왔다. 공달의 몸은 식은땀들로 흠뻑 젖어있었다. 공달은 가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 둘러보니 어제와 같이 밖은 개나리로 만개해있고 날은 화창하였다.

그제야 비로소 방금 전의 일이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시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목욕 준비나 하거라. 별일 아니다. "

" 식은 땀이.. "

" 별일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

자신도 모르게 걱정하는 시종에게 큰 소리를 치자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시종은 크게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자 공달은 아차 싶어 바로 웃음 지으며 말하였다.

" 정말 별일 아니네. "

" 알겠사옵니다 마마. 준비하겠사옵니다. "

시종은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하고는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공달은 손으로 자신의 이마의 땀을 닦고는 땀이 흥건하게 묻은 손을 바라보다 일어서 욕탕으로 향했다.

준비되어있는 욕탕에 몸을 담구자 적당히 뜨거운 물의 온도가 공달의 피부에 다가왔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하아´ 소리를 내며 내쉬었다.

" 어제 무지막지한 장면을 보니. 그런 개꿈을 꾸다니. "

아까의 꿈을 꾼 연유를 푸념하면서 욕탕의 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응시하다보니 그 안에서 사월의 간악한 표정이 보였다. 흠칫 놀란 공달은 어깨를 들썩였다. 물이 조금 흘러나왔다.

공달은 입을 앙 다물고는 손바닥으로 물을 쳐 수증기를 흩뿌려놓고는 그대로 물 속으로 잠수하였다. 그 어떠한 것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 젠장... "

그럼에도 쉽게 진정이되지 않는 지 평소보다 빠르게 나와서는 옷을 입고는 바깥 행차를 할 것이니 준비하라 말하였다.

" 마마 어디로 행차하시려는 것이옵니까? "

" 내 어디든 그냥 걷고 싶어 그러네. "

목욕을 마친 공달이 평소와는 다르게 밖을 나간다고 하자 아까와 같이 시종장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지난 10년간 시종장이 본 공달은 밖에 나가는 위인이 아니다. 늘 집에만 있고 9황자 민세영이나 황궁에서 찾을 때에야 온갖 말로 툴툴대면서 겨우 밖을 나가는, 그런 사람이 오늘 갑자기 나가고 싶다고 하니 23황자의 시종장인 이대산은 극도로 불안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 하오면 소인이 대동하겠습니다! "

" 아? 시종장이 나가면 집안 살림은 누가 맡을 껀데? "

" 그것은.. "

" 제가 하겠사옵니다 마마. "

" 양 부인. 자네가? "

곤란해 하는 시종장을 보다못해 그의 아내이자 황자의 시녀이기도 한 양 부인이 나섰다. 평소에는 대산을 구박만 하고 때리기만 하는 억척맞은 여인네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대산에게 가장 믿음직 하였다. 이 틈을 노려 대산은 공달에게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 이제 따라가도 되지 않사옵니까? "

" 으음... "

공달은 팔짱을 끼고는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산을 바라보았다.

´ 혼자 가고 싶은 데.. 대충 같이 갔다가 떨어지면 되겠지 뭐. ´

" 그래 따라오게나. "

" 바로 채비하겠사옵니다. "

잠깐의 시간이 지나 공달은 시종장 대산과 함께 금성 남쪽에 위치한 시장가에 이르렀다. 태천(太天)시장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이 시장은 그 이름처럼 그 규모가 매우 넓고 각국의 상인들로 들끓어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국제시장이다.

공달이 듣기로 태천시장보다 큰 시장은 백제의 북평시장 뿐이었다고 하는 데, 그 조차 15년전 즈음 한의 공격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하였다니 태천시장을 넘을 시장이란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생각하였다.

그렇게 넓은 시장인 만큼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 역시 매우 많았다. 확실히 악몽으로 망친 기분을 전환시키기에 사람이 많은 곳을 가 물건들을 둘러보는 일 만큼 좋은 방안은 없다고 공달은 스스로 생각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다만 한가지 거슬리다고 느끼는 것은 패물점을 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아 사려고 하면 재질이 별로라며 흥을 깨고, 야방의 노호가 담금질하여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멋진 검을 사려고 들면은 슬쩍 옆으로 와서

" 이런 예리하지 못한 검은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마마. "

라고 말하며 기분전환을 망치는 시종장을 어찌 따돌리지 못한 것이다.

" 이보쇼. 나으리가 사시겠다는 데 왜 옆에서 딴죽질이오? "

노호가 이리 핀잔을 주어도 대산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공달에게 쪼르르 달라붙어 사지 말라고 하니 공달 역시 흥이 떨어져 검을 내려놓고 나갔다. 비단 이 일 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계속 그러자 공달은 처음 가볍게 생각했던 것 보다 시종장의 붙어있는 실력이 만만치 않다고 느끼며 어찌해야 떨어뜨릴 수 있을 지 생각했다. 그때 눈 앞에 엿장수가 보였다.

" 시종장. 자네 저기가서 엿좀 사오게나. "

" 엿 말씀이십니까? "

" 달달~ 한 것이 먹고 싶구나. "

공달은 쇄골을 어루만지며 이미 단 것이 입에 들어와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산은 본능적으로 큰 불안감을 느꼈다. 필시 이것은 황자가 자신을 떨어뜨리려고 꾀를 쓰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자신이 엿을 사러가는 틈에 황자는 사라질 확률이 높다. 아니 확실히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 이보쇼 엿장수 이리로 와보게! "

" 아 예, 갑니다. "

" 쳇.. "

공달을 옆에서 보필한 세월이 10년이 넘어가는 대산은 공달이 꾀를 쓴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엿장수를 불렀다. 이리하면 대산이 공달의 옆을 떠나지 않아도 황자의 명을 따를 수 있는 것이라 공달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호박엿이나 빨아댔다.

" 그만 가면 안되겠나? "

" 돌아가시렵니까? "

공달은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한 팔로 대산의 어깨를 잡았다.

" 아니 자네가 가라고. 혼자 있고 싶은 데 "

" 이제는 꾀 조차 안 쓰시는 것이옵니까? "

" 어차피 속아주지도 않을 것 아닌가 "

공달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그러나 대산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 그렇사옵니다. 소인은 황자마마의 곁을 지켜야 하는... "

" 됬어. 바라지도 않는 다. "

대산의 말을 끊고는 뒤돌아서서 빠른걸음으로 걸어가자 대산이 뒤에서 쫓아가려다 상인 행렬에 막혔다. 그것을 보자마자 공달은 기회라는 생각에 바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작은 규모의 상단이었는 지 행렬은 금새 지나가고 대산 역시 뒤 꽁무니만 겨우 보이는 대산을 쫓아 달렸다. 매일 집에만 박혀있는 대산에 비해 고된 가사일의 총무를 맡고 있는 시종장 이대산이기에 뒤 꽁무니만 겨우 보였던 공달은 서서히 그 모습이 대산의 눈에 확연히 잡혔다. 공달은 뒤를 돌아보며 끈질기다고 생각하며 어떤 방법이 없을 까라고 생각했다.

- 쿵

" 꺄악! "

" 악! "

앞을 보지 않고 달리던 공달은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졌다. 공달은 세게 부딪혔는 지 이마를 어루만지며 아파하는 데, 대산이 기쁜표정으로 가쁜 숨을 내쉬며 공달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 헉..헉.. 도망.. 헉.. 가시면 헉.. 안됩니다. "

" 아.. 하.. 아오 아파.. "

공달은 아픈 것도 아픈 것이고 도망의 절호의 기회를 망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녀석에 대해 짜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넘어진 녀석을 보았는 데, 공달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 아야야.. 괜찮으세요? "

" 아, 예. "

자신보다 살짝 작은 키의 자기의 잘못도 아니면서 공달이 기분나빠할 까봐 눈웃음을 지으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한 소녀가 있었다. 공달은 물론 가식이겠지만 괜찮냐고 물어보며 찡긋대는 눈웃음이 썩 이뻐보였다. 물론 눈 외에도 이곳저곳 모두 다 그랬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일 까 살짝 넋이 나간채로 바라보고만 있는 데 앞에 있는 소녀는 혹시 너무 강하게 부딪혀 머리가 다친 것은 아닌 지 걱정하였다.

" 정말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신거 아니에요? "

" 아니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하하하 "

" 이제보니까 마마! 온몸이 흙투성이에 이마에 멍까지..! 네이년 이 분이 누구 신.. "

시종장 이대산이 한참을 공달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다 멍을 보고 흥분하여 소녀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앞으로 나서자 공달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대산의 목을 한팔로 감싸 자신에게 끌어당겨 입을 막은 후 자신의 고개를 여러번 숙여댔다.

" 미안합니다 하찮은 시종 따위가 무례를.. "

" 아닙니다. 앞을 못본 건 제 탓이니까요. "

" 아뇨아뇨 저는 말 했듯이 괜찮습니다만. "

공달은 헤벌레 웃으며 말하다 생각해보니 부딪힌 것이 자신만이 아닌 당연한 것을 이제야 깨닫고는 놀란표정을 지었다.

" 그보다도 괜찮으십니까? 다치신대라도! "

"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안 다쳤습니다. "

소녀가 웃으며 말하자 공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도 훗날 어찌될 지 모르니 어디에 사는 지는.. "

" 연이 아가씨! 어디계셔요! "

뒤에서 아가씨를 애타게 찾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이자 아가씨로 추정되는 이 소녀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 정말 괜찮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 아니 잠깐! "

공달이 팔을 뻗어 그녀를 잡아보려했으나 그녀는 다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시종으로보이는 여자아이가 가쁜 숨을 쉬어대며 연일 "아가씨!"를 외치며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공달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아쉽다. 정말 아름다운 아이였는 데. "

" 우..웁! "

" 아! 미안하네! 자네를 잊고 있었구만 "

그제서야 팔을 풀고 대산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대산은 시뻘게진 얼굴을 하고는 여러번 콜록대다가 황자를 바라보았다. 공달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안하여 대산의 등을 한번 쳤다.

" 험. 그러니 왜 무례한 짓을 하는 가. "

" 하찮은 시종놈이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마마. "

" 설마 삐진게냐? 시종장. 내가 아까 말한 것은, 그 뭐냐. 일단 내 잘못이니까 사과를 해야하는 데. "

" 예 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

대산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다만 눈만 흘깃 황자를 바라보았다. 공달은 대산이 삐진 것이 자신의 말 실수 때문인 것을 알아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사람들 사이에 서있다가 공달이 먼저 대산에게 말했다.

" 이만, 돌아갈까? "

" ... 예 마마. "

대산과 함께 사가로 돌아가는 길에 공달은 처음에는 위엄있는 주인의 모습으로 사과를 하다가 사가에 다 와갈 때 즈음 되서는 마치 태자의 앞에 있는 듯 애교를 부려가면서 대산에게 미안하다 하니 대산이 그제서야 살짝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려고 헛기침을 해댔다.

" 어..어찌 주인이 시종에게 잘못을 했다고 하시옵니까. 소인 절대 그런 것으로 마음 상하지 않사오니 그만 하시옵소서. "

" 정말? 그래 그럼 화 푼 걸로 알겠네! "

함박 웃음을 지으며 대산의 등을 세게 팍 치고는 문을 열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대산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생각나지 않았던 좀 전의 그 소녀가 생각이 났다.

얼굴이 붉어진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심장의 고동소리 역시 달리기를 할 때 처럼 빠르게 뛰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공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두손을 펴 볼을 짝짝 때렸다.

" 대체 왜 이러는 가? "

" 마마. "

" 악! "

아무도 없는 데 공달은 흠칫 놀라 소리를 질렀다.

" 누구냐! "

" 소인 양자선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목간에 드시는 지 여쭙고자 왔사옵니다. "

양부인인 것을 안 공달은 가슴을 한번 쓸어내렸다.

" 기척 좀 내게나! 무슨 일인가? "

" 혹여 목간에 드시는 지 여쭙고자 왔사옵니다. "

" 음.. 준비하게. "

" 예 마마. "

공달은 한숨을 또 한번 쉬었다. 왜인지 계속 한숨이 나오는 것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이윽고 목욕의 준비가 끝났다고 하자 안으로 들어가 적당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었다.

몸이 뜨거운 것인지 심장이 뜨거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열기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다. 눈을 살짝 뜨고는 욕탕의 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응시하자 수증기의 안에서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흠칫 놀란 공달은 눈을 크게 떴다. 물은 흘러넘치지 않았다. 공달은 입을 앙 다물고는 손바닥으로 물을 쳐 수증기를 흩뿌려놓았다.

그러나 수증기는 다시 뭉쳐 웃음짓는 소녀의 표정으로 나타났다. 공달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잠수하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 속이어야 하는 데 소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리고 웃음 짓는 소녀의 눈을 시작으로 모든 표정이 다 보였다.

서서히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공달은 눈을 떠 그대로 응시하며 손을 뻗었다.

´ 연이 아가씨라니 이름도 아름답지 않은 가 ´

0
이번 화 신고 2019-02-12 00:06 | 조회 : 464 목록
작가의 말
jindal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