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감자를 조심하라!

모서리가 둥근 창밖은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깜빡이는 별빛을 보려면 두 눈을 가늘게 떠야 할 정도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식당 모듈(기능을 가진 단위, 우주선이나 공동 주택에 사용되는 기법으로 공장에서 제작되어 현장에서 조립한다.) 내부는 문을 중심으로 밝은 회색 바닥에 흰색으로 칠한 벽과 천장이 돋보였다.

한쪽 벽에는 수경재배 허브화분들이, 다른 쪽 벽에는 냉동냉장고와 음수대 및 건조 식량 저장고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 벽에는 두 사람이 식사 중인 8인용 식탁이 고정되어 있었다.

찰스와 쿰바는 식당 칸에서 저녁 식사 중이었다.

시간에 맞춰 화면이 변하는 천장의 홀로그램은 오리온자리와 큰개자리가 떠오르는 중으로 지구 시간으로 겨울에 들어섰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입구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가 가리키는 연방(지구, 달 자치구, 화성 기지 공통 시로 여전히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이 기준이다)시간으론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으로 늦은 저녁이었다.

마지막 남은 칠면조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오렌지 주스 한 모금을 삼키며 찰스가 먼저 일어섰다.


“칠리소스가 조금 더 있으면 더 맛있을 텐데.”


먹는 속도가 일반인보다 배는 느린 쿰바의 저녁인 된장찌개 백반은 아직 반 정도 남아 있었다.


“내일은 매운맛을 먹어.”


두부를 건져 먹으며 쿰바가 대답했다.


“그래야겠네. 커피?”


“응, 고마워.”


찰스는 등받이를 접어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었다. 식당 안의 유일한 식탁인 8인용 테이블에는 8개의 바퀴 달린 의자가 붙어있었고, 쓰지 않는 경우에는 등받이를 접어 테이블 밑에 밀어 넣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 인간에게 쾌적한 환경인 실내온도 22℃, 습도 65%, 디지털 온습도계의 불빛이 밝은 주황색으로 반짝였다.
자연풍모드의 환기시스템으로 간간이 부는 바람은 창밖의 경치만 아니라면 어느 휴양지나 캡슐 호텔로 느낄 정도로 인간 친화적이었다.

자신의 빈 그릇을 식기 세척기에 넣은 찰스는 바로 옆방인 식량 보관실로 가 커피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으뜸이 식욕이렷다.

블랙커피, 밀크커피, 모카커피, 카페오레, 카푸치노, 원두 티백…. 입맛이란 무서운 것이다. 여러 회사의 로고가 선명한 상자 사이에서 찰스는 마침내 원하던 상표를 찾아냈다. 내 것 하나, 쿰바 것 하나.


“언제나 마시던 거지?”


“그래.”


찰스는 일회용 모카 커피믹스를, 쿰바는 원두로 뽑아낸 커피를 즐겨 마신다.
분쇄기에 넣은 원두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급속 냉각시켜 만든 캡슐커피는 커피추출기에 끼우고, 믹스 커피는 컵에 담았다.

두 종류의 커피가 내뿜는 은은한 향이 좋았다.
오늘 커피는 맛있겠구나.

찰스는 창밖을 한 번 내다보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창밖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한 수 없이 많은 돌덩어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리 많은 돌덩이가 다 보이다니 확실히 소행성대였다.

추출기의 원두커피는 이제 뜨거운 물이 추가로 담기고 있었다.

‘매우 느리게 날고 있구나.’

찰스가 정수기에서 뽑아낸 뜨거운 물을 믹스 커피에 막 부을 때였다.

끼기기긱.

밖에서부터 희미하게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응?”


소름이 쭈뼛 돋는 걸 느낀 찰스는 커피를 저으려던 손을 멈췄다. 동시에 쿰바는 반으로 가른 배추김치를 집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였다.

끼이이익, 쿠콰콰쾅.

충격을 느낄 새도 없이 강한 흔들림과 동시에 식당의 왼쪽 벽이 밀려 사라졌다. 그리고 못난이 감자를 닮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 사이로 시커먼 우주공간과 반짝이는 별들이 나타났다.


“으~아…”


쿰바는 외줄기 비명마저 다 끝내지 못한 채 젓가락 끝에 김치를 끼우곤 우주의 일부가 되기 위해 날아갔다. 충돌의 여파로 쓰러졌던 찰스는 식당모듈과 통하는 문이 닫혀 버린 걸 보았다.

맙소사!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얘기야. 우리 부족에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전설이 있어. 그래서 누군가가 죽으면 새로 생겨난 별들을 찾아보곤 하지. 내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친구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도 난 그들이 별이 되었다 생각했어. 미신이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죽으면 별이 될 거라 믿어."



아프리카계인 쿰바는 간혹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나라나 고유문화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 검은 대륙의 오래된 전통과 믿음이 마지막으로 남은 부족 출신이었다.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던 쿰바는 자신의 말대로 별이 되기 위해 사라졌다.

갑자기 왼팔에서 타는 듯이 화끈거리며 견디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다. 엄청난 아픔에 멍청히 입을 벌리고 쓰러졌던 찰스의 감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넘어질 때 커피를 흘리며 데인 모양이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5-08-02 01:39 | 조회 : 2,019 목록
작가의 말
마정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엄창난 공간 낭비이다. -칼 세이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