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밥을 버렸지.

쩌억.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에 기압 차로 문에 붙은 강화유리창에 금이 갔다.

아니, 밖은 3K (켈빈의 창안에 의한 온도 눈금에서 물의 어느 점을 273.15℃로 하는 절대 온도 눈금. 3K는 약 -273℃이다.)정도의 온도이니 영상 25℃인 내부와의 300℃ 가까운 온도 차이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극심한 온도 차이를 증명하듯 동시에 하얀 성에가 순식간에 끼기 시작했다. 부연 유리 너머 희미하게 식당이었던 곳의 정경이 보였다. 모듈 조각들과 테이블과 의자들이 쿰바를 따라 점점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 문이 약했는지 조금씩 우그러들고 있었다.

끼기기깅. 우지직. 빠바바박. 꾸아아앙.
정신을 차린 찰스는 통증을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켜 중앙 통제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당황하거나 흥분하면 통증을 못 느낀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기분 나쁘게도 뛰는 동안 왼팔이 점점 더 아파 왔다.

삐이잉. 삐이잉.


“적색경보입니다. 제7구역의 외벽에 손상이 생겼습니다. 승무원 여러분은 속히 제7구역을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


인공 지능 영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찰스는 뛰고 또 뛰었다. 적색경보라니! 온갖 욕을 하며 찰스는 자신이 늦지 않길 빌었다.

쿠콰콰쾅. 끼이이잉. 우그더덕.

불길한 소리가 자꾸자꾸 따라오고 있었다. 7구역의 복도에는 비상 차단문이 없었다. 설계자가 무능했거나 귀찮아서 생략했음이 틀림없었다. 혹은 제조 시에 재료비를 빼돌리면서 없앴거나.

귀환하면 따져야지. 설계자의 후손이든 연방정부든. 구시렁거리던 찰스가 7구역과 6구역의 경계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콰콰콰쾅!
지금까지 것보다 더 큰 충격파가 오며 찰스는 넘어졌다.


“욱, 아야야. 멍들겠어. 재수가 없으려니….”


푸쉭. 푸쉭.


“…안돼에엣~.”


절규하는 찰스의 눈앞에서 6구역과 7구역의 문이 동시에 닫히기 시작했다. 각 구역의 문이 동시에 닫히는 것은 한 가지를 뜻한다.


성훈은 예고 없는 흔들림과 적색경보에 놀라 6구역 끝에 있는 휴식모듈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안돼에엣~.”


푸쉭. 푸쉭.
찰스의 비명소리에 7구역의 복도를 바라본 성훈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리고 동시에 폐쇄 된 6구역 문 옆의 비상 창을 깼다.

창안에는 작은 녹색 버튼과 마이크가 하나 있었다. 성훈은 녹색 버튼을 누르면서 옆의 마이크에 대고 소릴 질렀다.


“이런, 젠장맞을. 영, 선장이다. 명령이다. 당장 6-φ, 7-α구역의 문을 열어라.”


“회로의 일부가 날아가 실행된 명령을 되돌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명령에 불복합니다. 제 7구역의 외벽손상이 69%를 넘어 섰습니다. 명령에 불복합니다. …방금 7구역의 외벽손상률이 75%가 넘었습니다. 8구역의 외벽손상률은 30%를 넘어 섰습니다. 명령에 불복합니다. 회복 불능입니다.”


성훈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가운데 2개의 문 너머에 있는 찰스의 얼굴은 납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2개 구역의 문이 동시에 차단, 손상 50%이상, 회복불능.

어느 구역이 회복불능이라 판단될 때에 우주선의 인공지능은 쓸모없는 질량을 줄이고 속도의 증가를 위해, 즉 불필요한 에너지낭비를 막기 위해 그 구역을 포기한다.
한마디로 버리는 것이다.



서기 2350년을 넘으면서 장거리전용의 모든 우주선은 50%가 넘는 손상을 입을 시 그 구역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주 큰 규모의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고치지 못하면서 폐쇄 구역을 유지할 경우,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로 또 다른 참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사건 중 마지막 비극은 2349년에 일어났다. 광물채취용 장거리 우주선이 왜소행성 ‘134340 플루토’ 근처를 떠돌던 오래된 우주선의 쓰레기에 부딪혀 엉망이 되었다.

우주선의 통신장비는 수리 불가능한 상태가 됐고 3주 뒤 자동 귀환 프로그램에 의해 포보스 중간 정거장으로 돌아왔다. 수리공들과 의료진들이 들어가서 본 건 혀를 빼어 물고 하얗게 질식해서 죽은(산소순환장치를 돌릴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6명의 승무원이었다.



더구나 현재 출항중인 휴먼호와 같이 몇 십 년에서 몇 백 년을 비행해야 하는 경우엔 에너지 보존의 이유가 더 커진다.


“프로그램 자체능력에 의해 7구역과 8구역을 포기합니다. 10. 9. 8. 7. 6. 5. 4. 3. 2. 1. 0.”


퓨슉.
잔인하리만치 사무적인 목소리로 영은 본체와 7, 8구역을 분리시켰다.

유리창 너머 찰스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오줌을 싸고 문을 두드리며 멀어져 갔다. 거의 대부분의 식량과 냉동수면으로 잠들어 있는 다른 8명의 승무원들과 함께.

별 이변이 없는 한 찰스는 풍부한 식량 속에서 굶주려 죽을 것이고(식량보관실과 연결된 복도의 파손으로) 8명의 승무원은 영원히 잠들 것이다.

성훈은 멀어져 가는 우주선의 일부분을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투명한 액체가 떨어졌다. 약간의 소금기가 있는 그 액체는 잠시 뒤 공기 중으로 증발 되 사라졌다.

증발된 수분은 공기속의 다른 수증기들과 함께 정화실을 거친 후 재활용을 위해 급수실로 간다. 수분 정화 및 공기순환 장치 역시 오랜 세월 외부의 공급 없이 비행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스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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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0 23:54 | 조회 : 2,125 목록
작가의 말
마정

난 인공지능이 무서워.... 식량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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