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훈이 만들어줬던 볶음밥은 차게 식었다. 밥알이 굳었을 정도로 식어버린 볶음밥이었지만 그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다. 한나절 동안 앓듯이 누워있던 우리는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나른해진 몸뚱이를 일으키려고 하니까 뻐근했다. 나도 이정도인데, 이훈은 얼마나 아팠을까. 손이훈은 제대로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가 힘들어하는 걸 보니까 괜히 마음이 시큰하니 아파왔다. 저런 것만 봐도 마음이 불편한데 앞으로 큰 병이라도 앓으면 내가 먼저 몸져 눕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괜찮아?”
“응. 그냥 뻐근하네...”
“미안해.”


귀를 늘어뜨린 강아지처럼 옆에 딱 붙어서 기죽어 있으니까 손이훈도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괜히 그의 품에 더 부비적거리며 안겼더니 못말리겠다며 꼭 안아준다.

단 한순간의 잠자리가 우리를 이만큼 가깝게 만들어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조금씩 딛던 돌다리를 한순간에 껑충 뛰어간 느낌이다.


“너무 애 같애?”
“응.”
“그래서 싫어?”
“.......”


대답을 재촉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망설임이 가득하다.
정말 나를 사랑해도 될까, 우리 정말 이렇게 감정만 생각하며 시작해도 될까.
조심스러운 그 생각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만큼 그의 눈은 투명했다.


“좋아.”


처음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 듣는 거.
그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날들 꿈에도 못 꿨었는데. 나는 순간 심장이 저릿해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좋아해. 재현아.”


그의 입을 타고 나온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진다. 온 방 안이 그의 달콤한 말 한 마디로 가득찬다. 나는 그 신비한 떨림 안에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간질간질하던 심장이 이내 욱신거린다. 나는 찡해오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운지 그는 멋쩍게 웃는다.

다시 덮치고 싶다. 그가 아파하지만 않았어도 당장에 내 것을 그의 안으로 밀어넣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그를 꽉 끌어 안았다. 그는 갑자기 안아버린 내 행동에 어어, 하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몸을 내게 맞춘다. 퍼즐조각이 맞춰진다.


“나도. 나도 진짜 좋아해.”


사랑해.
미친 듯이 사랑해.

나는 그 말이 새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누구보다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지금 내 벅차는 마음을 다 설명하려면 아마 하루를 꼬박 새고도 남을 걸.
나는 최대한 이훈에게 절제된 표현만을 말했다. 그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마음을 용기내서 최대한으로 말한다.

열린 그의 진심은 내게 열 배 정도로 세게 닿았다.
머리 한 군데를 얻어맞은 듯이 나는 멍해져서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것 같다. 멀지 않은 파라다이스가 이 곳이었다. 내겐 그 어떤 곳보다 안락한 게 손이훈의 품안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나날들이 갑자기 내 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현실감각이 없어져서 몇 번이고 그에게 마음을 확인하고 그를 어루만져서 확인했다.


“너 전화오는 거 아니야?”
“나중에 받아도 돼.”


끈질기게 울리는 폰을 놔둘 정도로 나는 아무것에도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아마 왜 안 오냐는 룸메의 전화겠지. 지금 그런 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너만 중요해.”
“뭐야... 느끼하게.”


말로는 투덜대면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나를 받아들였다.

그날 밤은 유독 짧고도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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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1-19 23:26 | 조회 : 1,426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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