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녀의 마을(3)


나는 지금 은비 누나와 함께 마녀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나는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됐다.

1.나는 지금 두 육체를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다.

2. 하지만 마법을 익히려면 인형의 몸일 때만 가능했다. 그 뿐만 아니라 마법을 쓰는데도 원래 몸에는 제한이 걸렸다. 다른 몸의 마법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 몸의 절반 클래스의 위력밖에 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게, 절반의 위력이 아니라 절반 클래스의 위력이었다. 쉽게 말해서 인형의 몸으로 8클래스가 된다고 해도 원래 몸으로는 4클래스의 마법까지밖에 쓸 수 없었는데 이건 그냥, 심각했다. 판타지 소설을 몇 번 안 읽어본 나도 각 클래스별로 기하급수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3. 내 원래 몸은 이 세상에서 자라지 않는다. 단지 ‘카피’를 해 놓은 몸이기 때문에. 이것도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는데 내가 몇 살이 되든지 계속 꼬맹이 모습을 하고 있어야 되거나 아니면 여자 모습을 하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였다!

4. 이 인형에는 은비 누나의 능력 중 하나인 ‘용안’의 일부가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상태창이 뜨도록 할 수 있었다.

5.각 육체가 입고 있는 옷은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 덕분에 다른 몸으로 모습을 바꾸었을 때 옷이 맞지 않아 곤란해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비 누나는 이런 것들을 다 알려준 다음에 마녀 마을에 도착한 후부터는 빡세게, 하루 종일 훈련을 시킬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그때 본 누나의 표정은 지금까지 내가 본 은비 누나의 표정 중에서 가장 마왕 같았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 원래 모습으로 있었다.

앞으로는 (매우 강제성이 다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마법을 익혀야 한다는 이유로)여자로 살아가게 될 텐데 지금이라도 맘껏 원래 모습대로 있어야지. 흑흑.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제 또 궁금한 점 있어?”

사실 아까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하지만 물어봐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고 있었는데 정말 물어봐도 될까?

“괜찮아, 뭐든지 물어봐.”

내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은비 누나가 나에게 말하였다.

“누나, 그 저주들....... 괜찮아요? 창에서 본 대로라면 지금 엄청, 엄청 힘든 거 아니에요?”

은비 누나의 상태 창에서 본 내용대로라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다. 몸은 계속해서 상하고 자아가 점점 상실되며 정신적으로는 죽고 싶어진다니.

아직 어린 내 생각으로는 자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은비 누나가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입을 다물었다. 여동생이 내게 보여줬었던 표정과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은비 누나에게 위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위로가.

“누나.”

“응?”

“나, 누나가 걱정돼요. 그러니까 누나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내가 내뱉어 놓고도 낯간지러웠다. 이러니까 그냥 평범한 초딩 같잖아. 난 무려 대딩인데.

그 말에 누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웃었다. 그 웃음은 너무나도 예쁜 웃음이어서 끝없이, 계속해서 쳐다보고 싶었다.

“그래, 고마워 선우야. 덕분에 힘이 좀 나는 것 같아.”

“누나...”

누나가 좋아하니 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입을 띄었다.

“볼일이 급해서 그런데 해결 좀 하고 올게요!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 뭔가 분위기를 다 깨버린 것 같은데. 그래도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은 가고 싶은 거였다! 은비 누나 앞에서 바지에 실례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근처에 있는 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풋.”


...


“휴...”

좀만 더 참았으면 큰 일 날 뻔 했어. 사실 깨어났을 때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그...은비 누나 몸으로 볼일을 보는 건 좀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목 뒤에서 날카로운 한기가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무언가 위험한 것이 나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넌 누구야? 인간이 왜 여기까지 들어와 있지?”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의 톤으로 봤을 때 내 나이와 비슷한 어린 소녀인 것 같았다.

잠깐만. 나 아직 바지도 안올렸는데?

나는 바지를 올리기 위해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목소리에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뭔 꼼수를 부리는 거야?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그대로 목을 꿰뚫어 버리겠어.”

아.......

“그대로 양손 위로 올리고 내 쪽으로 몸 돌려!”

제발 누가 나 좀 살려 줘요.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일단 양 손을 위로 올렸다. 가만히 있다가 죽기는 싫었으니까. 그리고 몸을 돌리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일단 이 상황을 잘 설명해보는 거야.

고개를 돌리자 우선 내 목을 향하고 있는 날카로운 얼음 창이 눈에 뛰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금발 머리의 소녀가 그 얼음 창을 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주위로도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나를 향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와 더불어 그 소녀의 머리 위에 ‘마녀 란 데 포르(13)’ 으로 시작하는 상태창이 떴으나 그걸 제대로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저...저기, 어...”

하지만 말을 입에서 꺼내려고 했으나 목구멍에서 턱 막히는 듯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지금 내가 소변을 보다가 네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바지를 못 올려서 그런데 바지 좀 올려도 될까?’
라고 말을 해야 되나?

아니야. 그건 아니야. 처음 보는 여자애 앞에서 그런 말을 하라니! 사나이 체면이 있지.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그리고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가 마녀의 마을 근처라고 했고 상태창에도 마녀라고 떴으니까 당연히 마녀일거고. 아까 본 은비 누나의 상태창에는 은비 누나가 마녀를 다스린다고 나와 있었으니 은비 누나의 이름을 대면 되겠네. 좋아, 그럼 깔끔하게 해결이 되겠군.

그렇게 선우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란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귀...귀여워!’

그냥 저녁 반찬거리 할 버섯이나 따려고 숲으로 들어왔었는데 처음 보는 인간이 있었다. 얼마 전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인간 몇이 들어와 난동을 부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마법으로 창을 만들어 그 인간의 목에 같다댔다.

그리고 보니 이 인간은 상당히 어렸다. 기껏해야 내 나이 정도? 이렇게 어린 인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하지만 어리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나는 계속 창을 그 인간의 목에 닿을락 말락 한 상태를 유지 시키면서 몸을 돌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뒤로 돌아 있으면 입으로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도 눈치 채기 힘들고 손을 움직여서 무기를 꺼내려고 할 때도 반응하는데 딜레이가 생기기에.

그런데 그 인간이 돌리라는 몸은 안 돌리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매우 당황했는지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고 눈에는 살짝 눈물까지 머금어져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다 본판도 엄청 귀여웠다!

“저...저기, 어... ”

그 인간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또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콱 다물었다. 얼굴은 더 빨개진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괴롭히고 싶어!’

이상하게도 보고 있으면 계속 괴롭히고 싶게 만드는 그런 외모였다.

괜히 찹쌀떡 같은 볼도 찔러보고 싶었고 머리도 정리해 놓을 때마다 헝클어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여장을 시켜놓고 계속 괴롭혀서 울려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저...저기?”

“추르릅...어?”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르는 인간 앞에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건 정말 위험한 짓이었다.

“감히 귀여운 외모로 나를 홀리려고 하다니!”

“에? 내가 언제?”

“아무튼!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몸을 다 돌리라고! 몸을! 누가 고개만 돌리래? 창으로 찔리고 싶어?”

“잠...잠깐만! 난 은비 누나, 은비 누나랑 같이 왔어!”

“은비 누나? 그건 누군데? 다른 인간이냐?”

‘어? 은비 누나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본 창에는 분명 은비 누나가 마녀들을 다스린다고 나와 있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자신이 속한 무리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을 모른단 말이야?

아, 혹시 이름 때문인가?

만약 서은비라는 이름이 지구에서만 쓰던 이름이었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은비 누나는 마...”

내가 마왕이라는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내 목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얼음창과 날 둘러싸고 있었던 얼음 조각들까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웅? 뭐야?”

당황해 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스스로 없앤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은비 누나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얘야, 너무 그러지는 마렴. 우리 선우의 순결은 지켜 줘야 하지 않겠니?”

“...어?”

내 쪽을 보고 있다가 은비 누나의 출현을 뒤늦게 알게 된 란은 누나를 보자 잠시 멍한 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곧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포르 부족의 마녀 란 데 포르가 마왕님을 뵙습니다.”

뭐지...? 너무 조신한데? 방금까지 나한테 보였던 모습은 어디 갔어?


...



어쩌다 마녀의 마을로 가는 길에 동참하게 된 란은 은비 누나에게 쉴 새 없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목소리 속에는 은비 누나를 향한 동경심도 녹아 있는 것 같았고 호기심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뭐,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대 평소에 은비 누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기라도 했는지 말하는 속도가 무슨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댈 때 나는 속도 같았다.

한 번 조신한 척 했으면 계속 조신하게 있던가. 그냥 인사만 예의 바르게 하고 그 후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 그걸 다 받아주고 있는 은비 누나도 대단했다.

나는 이미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있는지 오래건만. (사실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너무 빠르게 떠들어대서 그 주위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이 느껴졌다.)

“마왕님, 저 이 선우라는 얘 만져 봐도 되요?”

잠깐만.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걸 왜 누나에게 물어보는 건데?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은비 누나가 한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얼마든지! 마음껏 만져. 내가 허락할게.”

누나...? 내 의사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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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6 13:53 | 조회 : 95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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