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오타쿠

단 한번 고등학교 1학년때 동네 양아치들을 2초만에 때려눕혔던 전설적인 사건을 제외하곤 강석찬은 싸운 적이 없었다.

중학교때부터 녀석은 이미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껄렁거리는 놈들도 석찬이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행동했다.

차원이 다른 클래스, 그게 강석찬이었다.

복싱만 하던 놈이 고1때 인대가 파열되어 전국체육대회 출전이 좌절되고 운동을 포기하게 되자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돈을 뺏고 괴롭히고 술과 담배를 하게 되었다.

어지간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한마디에 움츠러들거나 도망을 가게 되지만 강석찬은 그러지 않았다.

복싱으로 단련된,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찢어진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것 만으로 상대방을 무력화 시키곤 했다.

그 대상은 또래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대학생이건 어른이건 강석찬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슬그머니 꼬리를 감게되고 만다.

더 무서운 건 녀석이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설의 2초 다섯명 넉아웃 사건 이후, 아무도 강석찬이 싸운 걸 본 사람이 없었다.

폭주한 야수가 강석찬의 등뒤에 숨어 있었다. 모두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강석찬이 보자고 한 것이다.

이재민이야 주먹도 섞어봤고 무서울 것 없지만 강석찬은 다르다.

강석찬이 보낸 문자가 마치 등뒤에 서 있는 사신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강석찬이 보낸 문자를 씹었다.

나가지도 않았고 답변도 하지 않았다.

[권오성 5분 지났다.]

[니가 정신줄 놨지? 30분이나 지났다.]

[크크크···크크크]

강석찬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자를 보낸다.

입이 바싹 말랐다.

2시쯤 되어 집밖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나갔다. 아파트단지에 다행히 석찬이 무리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아파트단지 뒤의 쪽문을 이용해 나가 PC방에 도착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와서인지 PC방 사장이 좋아한다.

“이건 전자렌지에 돌리고···라면 끓일 줄 알지? 커피는 저기 거름종이를 갈고···”

PC방 알바가 하는 일은 핸드폰 만지작 거리다가 컴퓨터 켜주는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전문 음식점 뺨치는 조리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PC방 알바일이다.

음료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그래 인간적으로 라면까지는 뭐 할 수 있었는데

볶음밥에서 오므라이스까지 넘어가자 이럴거면 차라리 중국집 주방 알바를 하는게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말고도 같이 일하는 여자 알바생이 없었다면 당장 때려 치웠을 것이다.

라면까지는 같이 도와서 하고 나머지는 여자 알바생이 맡았다. 까르보나라, 새우튀김, 미니 피자등 도저히 PC방에서 판매하리라고 상상도 못한 음식들의 주문이 쏟아진다.

여자 알바생은 예전부터 낯이 많이 익어 있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가끔씩 인상을 쓰며 나를 봤던 여자였다.

“설마 니가 걔라고? 그 돼지 오타쿠? 설마···”

추리닝과 슬리퍼를 신고와서 게임을 하던 사람이 나라고 말했지만 믿어주질 않는다.

대학 3학년 나보다 세살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한다는게 정말 만만치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하루 였다.

바코드, 끼우는 카드, 미는 카드, 마그네틱 선이 나간 카드, 거기다 다양한 포인트까지,

계산을 하는 포스기를 사용하는게 무슨 비행기 조종석에 탄 파일럿 같은 기분이다.

“여긴 그나마 편해 편의점 가면 정말 정신 없다.”

나이가 많다는 게 확인이 되자마자 여자 알바생은 자신의 이름이 지현이라며 멋대로 말을 놓는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라면 끓이고 커피 배달하다 보니 9시가 넘었다.

그제서야 개인룸에 가서 [리버스]를 켜고 접속을 했다.

***

“이놈아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와.”

망할놈의 영감탱이, 와준것만으로도 감사해라!

“네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자 덤벼라!”

노인은 봉을 내게 던지고선 지팡이를 든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고야 만것이다. 합법적으로 노인을 패도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흥분과 설레임으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저놈의 영감탱이 밥해준다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해오고 밥상을 차린 것이 몇번이란 말이냐?

내려가서 먹고 오면 될 걸 목 마르다고 떠오라고 시키는 게으른 영감탱이, 당신은 오늘 죽었다.

“얏”

“탱”

준비동작도 없이 빠르게 찌른 봉이었지만 노인의 가볍게 지팡이로 튕겨낸다.

“느려...”

나는 도토리를 맞아가면서 키웠던 봉 스피드로 노인을 향해 마구잡이로 봉을 휘둘렀다.

노인은 마치 구미호와 독수리를 섞은 것처럼 재주를 넘어 피하고 순식간에 공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피한다.

휘두르면 숙여 피하고 찌르면 몸을 비틀어 피한다.

“헉, 헉···”

내 숨이 가빠져갔지만 노인은 그대로다. 게임 캐릭터가 숨찰리가 없겠지.

“자 이제 나도 공격해 볼까?”

봉의 길이는 2미터였고 지팡이의 길이는 1미터 정도다.

공격을 하려면 봉의 길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절호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노인은 3미터, 그러니까 노인의 자팡이 끝과 내 봉 꽅이 맞닿을 만큼의 거리에 서 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훅 다가왔다.

“딱, 팍, 퍽 턱 팍.”

“아아아!”

간격을 좁혀 들어온 노인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1미터 거리까지 다가와 버리자 봉으로 후려치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기 전에 노인은 다섯대를 치고 거리 밖으로 나가버린다.

“느려 이놈아! 항상 봉끝은 상대 몸통을 겨눠야해! 그래야 못 들어오지.”

맞은 곳을 문지른 다음 봉을 다시 꼬나잡았다.

봉으로 노인의 몸통을 겨누고 노인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빠르게 봉끝을 옮겨갔다.

“하하 그놈 이제 요령을 좀 터득했구나 그러면 이건 어떠냐?”

노인이 갑자기 몸을 흔든다. 영화에서 본 취권처럼 몸을 흔들자 규칙도 없고 움직임도 예측하지 못하는 노인의 움직임을 따라잡는게 쉽지가 않았다.

“눈의 반은 발을 봐야 해 발을.”

몸이 움직이는 것은 궤적이 정해져있다. 발이 놓인 위치에서 1미터 남짓이다.

노인의 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현란한 노인의 발동작 때문이었다.

노인의 말에 시선의 반은 노인의 몸통에 주고 반은 노인의 발을 주시했다.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론 훈련된적이 없어 어느새 발만 보게 되거나 몸만 주시하게 된다.

“딱! 빡”

“아, 아얏”

그 댓가는 여지없이 몽둥이질을 당하는 것으로 되돌아 왔다.

노인의 얇은 지팡이는 회초리처럼 감겨와 내 머리통과 허벅지를 사정없이 때린다.

“정신차려 이놈아. 다리는 안 쓰고 뭐하는 게냐?”

노인은 수염을 날리면서 희죽 웃는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그랬다. 가만히 봉만 들고 서 있으면 멈춰져있는 표적이었다.

봉끝만 피해 파고들면 잡아먹기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앞뒤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이 다가서면 물러나고 노인이 몸을 틀면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되자 노인이 파고드는 게 쉽지 않아졌다.

또다시 몸을 흔들면서 노인이 다가올 때였다.

빠르게 날라오던 도토리를 보았던 내 눈이다.

노인의 움직임을 따라 나도 반대편으로 발을 이동하면서 노인의 상체로 봉끝을 겨눴다.

“턱”

내 봉이 정확히 노인의 목젖밑 숨구멍을 찔렀다.

그러자 노인은 한발 뒤로 물러나더니 인자하게 웃는다.

“이제 나는 오늘부로 끝이다 열심히 훈련해 주어 고맙구나.”

이런 망할놈의 영감탱이, 그동안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인자한 스승님처럼 덕담을 한다.

“감, 감사합니다 사부님.”

나는 이별을 고하는 노인을 향해서 반사적 고개를 숙였다.

노인 때문에 고생했지만 노인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노인은 밝은 빛속에 사라져버리고 로그아웃이 된다.

***

“오성아 오성아! 일어나봐”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엄마의 얼굴이 눈물 범벅이다. 이미 동생 연지도 깨운 상태였다.

“아빠가 사고났대 아빠가···”

“아빠가? 무슨 사고?”

“몰라 나도, 좀 전에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어. 지금 장완병원이래···”

나는 재빨리 옷을 입고 엄마와 동생 연지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앞에 앰블런스와 경찰차가 있었다.

“권영달, 권영달씨 어디있어요?”

다짜고짜 서있는 경찰을 붙잡고 엄마가 묻는다.

“아 대리기사요. 좀 많이 다쳤어요. 들어가보세요.”

경찰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응급실에는 한눈에 봐도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배드가 있었다.

여러 명의 의시가 달라붙어있고 바닥이 피투성이였다.

“응급처리는 끝났으니까 수술 방으로···그리고 최교수 오라고 해”

무서워 달달 떨면서 말도 못 붙이고 있는데 의사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다.

의사들 사이로 보이는 아빠의 얼굴은 몰라볼만큼 퉁퉁 부어 있었다.

아빠는 수술방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수술방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경찰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인적사항이나 연락처들을 묻는다.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게 신호대기중인 차를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받아버렸어요.”

“상대차량 운전자는요?”

“그게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버려서···그런데 곧 잡힐 겁니다. 우리나라가 떵덩이가 워낙 좁아서 도망갈 데도 없어요.”

[삐리딩..]

경찰의 어깨에 걸려있던 무전기에 신호가 온다.

“어 뭐? 도망간 사람이···뭐? 응 알았어.”

무전을 끊더니 우리쪽을 돌아본다.

“뺑소니했던 사람이 자수 했다네요. 같이 서에 가실래요?”

“아니요, 수술경과는 보고 가야죠.”

그래도 가해자는 잡혔다니 다행이었다.

엄마와 연지 그리고 나, 우리는 세시간이 넘는 수술시간동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나만 아니었다면 아빠는 대리운전 같은건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중소기업부장으로 크지않은 월급이지만 알뜰한 엄마의 살림으로 오손도손 잘 살아갈 수 있었다.

이 모든게 못난 나 때문이었다.

“다 너 때문이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연지가 나를 쬐려본다.

“야이 나쁜 새끼야! 너 때문에 아빠가 이렇게 된거 알기라도 하냐?”

“연지야···”

“내가 틀린말 했어요?”

엄마는 연지를 말리려고 했지만 말이 터진 연지는 나를 향해 거침없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지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연지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 찐따 오타쿠 못난이가 오빠인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 정신나간 새끼가 사기치다 걸린 바람에 아빠가 대리운전까지 해야 했잖아.”

“그만해 연지야···오빠는···”

“놔둬요 엄마, 연지 말이 맞아요. 나 때문이예요.”

어릴때 연지는 그저 예뿐 동생이었다. 오빠를 좋아하고 오빠를 따라하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몇년동안 말한마디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오랫만에 들은 소리가 욕지거리였지만 연지말이 맞았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덜컹]

수술실에서 의사가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척추와 골반, 머리, 무릎, 갈비뼈, 복합골절인데요 다행히 급한부분은 조치 했습니다. 몇번 더 수술을 하셔야 하는데 일단 급한대로 지혈하고 철심을 박아놨는데, 부러진 갈비뼈가 1센티만 더 허파에 들어갔으면 정말 큰일 날뻔 했습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선생님 흐흑”

“감사합니다.”

엄마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자 세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친 의사는 탈진하다시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 의사의 말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음성같이 들렸다. 하느님과 의느님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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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3 10:02 | 조회 : 87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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