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꽃이 되고싶어요.

머리가 너무 무겁고 눈꺼풀이 무거워 가까스로 눈을 뜬 은우는 주변을 돌아봤다. 미운 두사람이 떠나고, 자신을 압박하던 의사들도 떠나니 휑한 자신의 병실에 선뜻한 바람이 들어왔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는지 하늘이 새빨갛게 불탔고, 주황색 꽃잎들이 넘실대듯 병실 벽에 수를 놓았다.

이제는 완벽히 생각난 불행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빼곡히 채워, 머리가 터질듯 아파오는 느낌에 은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몸을 움직이려하지 비명을 질러대는 몸때문에 다시 편하게 누운 은우는 곧 어두워질 붉은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이리 된걸까..?’

어릴적 읽었던 시집이 떠올랐다. 꽃에 관하던 그 시집은 은우 자신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으며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 그의 손에는 많은 꽃들이 있지만 그중에 나는 없었다. 나의 손에는 상사화만 남은채, 꽃이 되지못했다.

나도, 꽃이 되고싶어요. ‘

언젠가 읽었던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시, 자신에게 몹쓸짓을 한 해진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었을때다.

지금은 마음 한켠에 남은 작은 불씨처럼 점점 꺼져갔지만 언젠가 생각한적있다. 만약에 그의 꽃이 되면 어떨까하고.

하지만 곧 웃으며 고개를 저었었다. 가족과 같은 꽃도 아니면서 무슨 쓸데없는 생각이냐고.

그때의 나는 가족과 동떨어졌다. 큰형조차 내게 무관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새빨간 장미였지만 나는 들꽃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잡초였을지도 모른다.

은우 자신에게 아버지가 한말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아 한 송이의 동백꽃같다고. 아직까지도 왜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그저 밟힌 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그만 민들레 씨처럼 저 붉은 하늘을 날아가고 싶었다. 누가 불어서가 아닌 자연을 타고 서서히 나 혼자서. 그리고는 깊은 땅에 박혀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나에게 많은 애정을 준 나의 부모 민들레에겐 죄송하지만 이제 독립할 때이다, 저 하늘 높이, 둥실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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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간호사가 은우의 상태를 확인하러 은우의 병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들어오자 바로 보이는 창문이 활짝 열려있어 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라도 추울까 살금살금 병실로 들어와 창문을 닫았다.

여간호사가 침대쪽을 바라보자, 가지런한 이불과 베개만이 침대위에 있었다. 혹시 어두워서 잘못본건가 싶어 급히 불을 켰다.

역사나 보이는 것은 오직 침대뿐, 누워있어야 할 환자가 사라졌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병실 밖으로 나가 비상 호출 벨을 누른 간호사는 급히 은우의 형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별로 가지 않고 끊겼다. 그리고는 약간 잠긴 목소리의 정우가 전화를 바꿨다.

“무슨 일이죠?”

“화..환자 분이 사라졌습니다!!”

급한 간호사의 대답에 정우는 답변도 하지않은채 겉옷만 걸치고 곧바로 병원으로 왔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정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우를 찾고 있다는것과 아직 찾지 못한것을 깨달았다.

정우는 은우의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여기 들어왔을때, 이상했던 점은 없나....?”

창백해진 얼굴의 정우는 침착하듯 심호흡을 하고 물었다. 간호사 또한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 떨며 말했다.

“어..아... 차..창문이 열려있어서..제가 닫았어요.....”

정우의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그리곤 곧바로 창문을 열어 밑으로 몸을 빼고 바라보았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 한치도 보이지 않았다. 정우는 계단으로 급히 내려가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없는데다가 산이 바로 앞이라서 꽃들이 무수히 피어있었다. 그중간에는 빨간 꽃들만 피어있었는데 가까이 가자 그것이 피라는 것은 쉽게 눈치 챌수 있었다.

“........”

“아...아.....”

정우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신음을 흘렸다.

빨간 꽃들 가운데 있는것은 은우였다. 은우는 마치 편안한 침대에 누운듯이 편안한 표정과 미소를 얼굴에 띄고 있었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바로 은우를 비추었다.

달빛을 받은 은우는 정말, 그저 자연을 줄기는 사람으로 밖에 안보였다. 만약 그의 옷과 주변에 있는 피만 없었다면.

은우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고 밝게 보이자, 정우의 눈에서 한방울씩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은우야.. 일어나..”

더욱더 잠긴 목소리의 그는 은우에게 다가가 은우의 손을 잡았다.

이미 서늘해지고 딱딱해진 은우 손은 정우의 손을 마주잡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시체 썩은 냄새도, 주변에 벌레 한마리도 없었지만, 은우에게서는 오로지 향기롭고 달콤한 꽃냄새가 났다.

정우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 터뜨렸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우는 거겠지.

다시는 볼수없는 은우를 꽉 안고서, 깊은 물웅덩이를 만들만큼 그저 뚝뚝 눈물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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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04 15:56 | 조회 : 3,25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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