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후회하십니까?"
나의 질문에 그는 턱을 괴며 말했다
신중하게 대답할 것처럼.
"아니,딱히..
오히려 무너져내리니까 더 속이 시원해.
위에 있으니까 항상 불안했거든."
약간 그는 경쾌하게,자신의 슬픔을 자랑하듯이 말했다.
...약간 미친 사람같기도 하고..
보통은 자신의 불행을 저리 기쁘게 말하지않는다.
안타깝게 동정이 들도록 말하는데...
역시 루오나 아즈마님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버리시는 분들..
"그렇게 위는 아니었잖습니까."
이 자식은 취미가 분위기 깨기도 아니고..
너가 그렇게 나를 잘 아냐...
"꼭 그리 뼈를 때리는 말을 해야 속이 풀리냐..
누가 항상 내 뒷통수를 칠까봐 무서웠어.
내가 이 자리에서 떨어지면 아무도 날 봐주지 않을까봐.."
사실이었다.
실제로 떨어지고 나니까 충격도 컸었으니까....
항상 불안하기도 했었고

"루오께선..봐주셨잖습니까."
"푸핫! 그놈도 똑같은걸?
내 겉모습만 사랑하였던 것 아닐까?"
"아닙니다."
분명 제가 2년동안 옆에서 그를 봐왔기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날 기사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일부러 그곳으로
불러낸 것이 아니라면..
뭐라는 거야?"
"그건.."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함부로 말하면 그가 상처받을 거니까..
내 태도에 그는 어이없단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랬겠냐.."
아즈마는 바깥 풍경을 창문에 통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볼 것도 없는 곳인데..뭐하러..
오래 전 황족들의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곳.
남은 거라곤...
"이곳도 불바다였고 불바다가 되겠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불바다라니..
전쟁을 말하시는 것일까..
전쟁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루오 진짜 나쁜 새X였구나.."
갑자기 튀어나온 그의 욕지거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씨X,기분이 갑자기 ㅈ같네.
그 XX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너는 알아?
갑자기 기분 잡치게 황폐해진 내 고향을 보여주는 이유를."
"네..?
그럼..설마.."
"그래,내가 말 안 했었나?
나 죽기 싫어서 기사단에 들어간 것이지.
좋아서 간 것 아니야.
적어도 기사는 황족들의 손에 죽지 않을 거니까..
그때 반역 일어나고 개판이었는데..
우리 마을을 관련도 없었어.
그저 평범한 곳이었어.
아니..아름다운 곳이었지..
다들 친절했어.
진짜 천사같은 사람뿐이었어.
나도 첫사랑 따로 있었거든.
뭐~,지금은 죽어버렸지만 말이야."
"남의 부고는 그리 쉽게 말할 게 아닙니다."
나의 따끔한 충고에 그는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곤
자신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근데..제국에서 나온 기사들은 가장 먼저 우리 지역을 휩쓸고 갔어.
그때 겨우 살아남았지.
누군가 날 찌르려했던 것을 형이 받아냈거든."
아즈마님의 형...
아마 그의 첫사랑이었을 수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와 주군과의 관계가 악연이라는 이유를..
내 표정이 돌변한 것을 알고 아즈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는 흥미롭단 듯이 웃으며..
"눈치가 꽤나 빠르구나.
그때 날 죽이려 했던 놈이 루오였다는 것을."
왜..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을까.
그런 악연은 지금까지도 열심히 이어내려왔던 것이다.
그는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 놈이 미워서 죽여버리고 싶었어.
이미 여러 번 시도는 했지만 그 놈한테 암살 시도가 통할까?
당연히 졌지.
이거 흉터도 그 자식이랑 싸우다가 생긴 거야."
그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 걸쳐져있는 옷을 내리며 말했다.
그것은 세로의 긴 흉터였다.
"음..과도같은 무딘 칼이 낸 상처군요."
내 추리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되게 예리한 놈이네.
만약 내가 호위를 두었더라면 널 꼭 발견했어야 했는데."
"저 되게 쓸모없습니다.
요즘은 전쟁도 안 나니까..."
그리고..시체는 싫어합니다..
부모님이 떠올라서..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였다.
그도 잃은 사람인데..
아픈 과거를 꺼내긴 미안하니까
"그래도 영주끼리의 권력다툼은 항상 있잖아.
그거 진압하기도 힘들어."
그의 이야기는 마치 로맨스 소설같아서 거리감도 없다.
어렸을 때의 자신의 형제를 죽인 원수를 기사단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 원망하고 싸우지만 결국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서로간의 오해때문에 그들은 이별을 겪지만
2년 뒤에 그의 연인이 다시 그를 찾아온다.
무슨.....10년 전에나 유행했을 막장 소설의 전개도 아니고......
"솔직히..내 얘기 따분하지?"
그는 독심술사가 적성에 맞을 거다.
"살...살짝은 지루했습니다."
"그래도 사실이잖아."
아즈마의 목소리가 아닌데..?
설마..
"루오 테니르..."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게서 도망쳤던 것도 맞는 말이고."
"지랄하지마.
니가 날 그렇게 몰아갔잖아."
그들의 대화는 견원지간이란 말이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마차 문 막지마.
지금 안 그래도 승차감 ㅈ같아서 뇌가 머리에서 빠져 나올 것 같거든."
그의 가시돋친 말투에 루오는 작은 폭소를 터트리며 그를 안아 올렸다.
아즈마는 그에게 안긴 채 이게 무슨 수작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관리는 이제 포기했구나.
이시타, 이제 가봐도 돼.
며칠동안 눈도 못 붙였잖아."
"아..괜찮..."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루오의 살기일 것이다.
그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싫어하거나 경계자를 살기로 찍어누르는 버릇.
그도 눈치채지 못한 버릇이다.
내가..경계자란 것인가...
누구의.....
의문은 곧바로 해답을 찾았다.
아즈마..
아즈마때문에 날 경계하는 것인가..
"알겠습니다.."
"아즈마,이따 보자."
루오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지금 할 것 아니었나?"
"야외에선 못하지.
지금은 대련이 한창이니까.
그리고 나도 야외는 싫어.
너 발정하는 것을 남들에겐 보여주기 싫거든."
"내가 고양이 암캐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지 마.
특히..너.는."
아즈마는 화가 나는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아즈마의 태도에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동료들이라도 보러갈래?"
흠칫-.
아즈마는 동료라는 말에 몸을 떨었다.
분명 루오는 이것을 즐기는 것이다.
정말 악취미를 가진 사람..
"왜 떠는거야?"
루오의 장난스런 질문에 아즈마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고 그런 거지?"
"난 모르니까 묻는 거야."
거짓말..
아즈마는 고개를 숙이고 두 양팔로 자신의 몸을 안았다.
"이런, 많이 무서웠구나."
루오는 아즈마를 자신의 품 안에 가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에겐 아픔으로 남은 탓이다.
아즈마를 루오는 왜 그리 구속하려는 것일까..
루오가 아즈마에게 손 대는 것이 싫다..
왜 그리 짜증이 나는 것일까..
아즈마는 당당하지만 루오 앞에서 저리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그가 다른 이들과 달리 나와 친하게 지내서..
어쩌면..내가 그를 많이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시타,아즈마 옷 좀 갈아입혀줘."
"네,알겠습니다."
"저기 기사단 탈의실 있으니까."
저 인간은 진짜로 아즈마를 제대로 갖고놀고 있다.
"아즈마,괜찮으십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간신히 내저으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 자식..진짜 싫어..
내가 트라우마 있는 것도 잘 아는 놈이..
피 냄새도 싫어죽겠는데...
그때 강간 트라우마도 있는데..
안 그래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불쌍한 사람.
"옷 갈아입는 것 도와드릴까요?"
"아니..그냥 곁에만 있어줘."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거구나..
"혼자 있기 싫으니까..."
"알겠습니다."
당신의 곁을 지키고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잘할 수 있습니다.

"저기...이거 어떻게 입어?"
안에 있는 그의 부름에 나는 탈의실 안에 들어갔다.
"..죄..죄송합니다."
그가 나신인 채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이 옷.."
루오가 사온 옷이라면..
"아..이거 제가 입혀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아니..그냥 알려주면..."
"이게..굉장히 특이한 옷이라.."
"그럼..부탁해.."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아까는 그림자 때문에 보이지 못하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탈의실에 들어온 환한 햇빛이
그의 몸에 내려앉았서 그의 몸 상태가 잘 보였다.
상처투성이..
내 굳은 표정을 본 그가 뒤늦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건 예전부터.."
"바로 어제 생긴 상처도 보입니다."
"역시..너의 눈은 못 속이겠네..
루오는 약간 폭력적으로 하는 섹스를 좋아해서..
뭐..항상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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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07 21:58 | 조회 : 1,481 목록
작가의 말

나님이 잠수를 시도하였습니다.꼬르륵..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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