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늘 그렇듯 오늘도 저승의 아침은 밝아온다.

탁- 탁-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자, 대신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이온이 걸어오는 것이다.

"표정 좀 푸시지.."

"쉿!"

늘 그렇듯, 얼음장마냥 차갑고 냉랭한 표정, 눈빛. 왕실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는다.

이내 대신들의 한탄이 들려온다.

"어릴 때는 그렇게 다정하고 여리시던 분이.. 휴."

"요즘은 아주 소름끼치게 서늘하시단 말이지."

뚜벅- 뚜벅-

대신들은 한탄을 멈추고, 급히 더욱 고개를 숙인다.

일정한 박자의, 쇳덩어리마냥 무거운 발소리. 저승의 왕, 이성이다.

"이 온! 재판 준비도 안 하고 뭐 하느냐? 세자라는 놈이. 1달 뒤면 이승에 내려가 1년간 지낼 것이고, 수행이 끝나면 왕이 될 것인데, 자각이란 것이 없는 것이냐?"

"재판에서 제 의견은 안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말이 대리청ㅈ.."

"닥치거라.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 망자들의 사연을 듣고 질질 짜기나 하잖느냐."

분위기를 냉장고에서 냉동고로 옮긴 것도 아니고, 살얼음판처럼 얼어붙은 왕과 세자의 냉전 때문에 오늘도 애꿎은 대신들만 눈치 보기에 바쁘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매일 아침, 대리청정을 가장한 왕의 주입식 교육-자비, 사정 고려라고는 없는 잔혹하고 냉철한 재판을 위한- 자기 의견은 묵살하는 왕, 이성 때문에 오늘도 세자 이온은 생각한다.

'X같은 재판.. 오늘도 죄다 지옥으로 보내겠지. 근 몇달 간 천국으로 간 자가 있긴 했던가. 빨리 이승에서 수행하는 게 낫겠다.'

그리고 이내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로 웃을 수가 없게 된, 그날의 답답하게도 슬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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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2-13 21:55 | 조회 : 25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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