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나는 대지의 신 데메테르.
혹은 풍요와 농업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계수 칼레이야님의 부름으로 눈을 뜬 대지의 관리자로 얼마 전 태양이 탄생한 이래로 내가 관장하는 대지는 몰라보게 성장 중이었다.

칼레이야님의 말씀으로는 이것이 모두 '하데스'라는 분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칼레이야님이 하시는 이야기로 하데스라는 분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그분은 신이지만 칼레이야님보다 먼저 세상에 존재했던 신으로 그 칼레이야님 조차도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고 하신다.

지금까지 자신 이외에도 많은 신들이 탄생했지만 칼레이야님은 매우 특변하신 분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신들의 부모와 같은 존재. 모든 신은 그분의 열매에서 태어나 그분께 받은 축복으로 그분이 만드신 세계를 가꾸고 살아간다.

예전에 칼레이야님께서 이 세계의 기초를 다진건 하데스라는 분이라고 지나가듯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실수였다는 듯 난색어린 목소리로 하데스에게는 비밀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아무래도 하데스님은 남들 앞에 나서길 꺼려 하셔서 비밀로 하고 계시던걸 그만 실수로 흘려버리신거 같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도 그렇고 다른 신들도 하데스님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하다 못해 그분의 외양이나 성별조차도 알지 못한다. 우리의 모습은 하데스님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 하셨으니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란 것 밖에는 알 도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칼레이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하데스님. 별다른 직책도 없고 알려진 것도 거의 없지만 수많은 신들이 하데스님을 만나고 싶어한다.

"언젠가 만나뵐 수 있을…...앗!"

휘이이잉-

갑자기 분 강한 바람으로 인해 머리 장식이 날아갔다. 칼레이야님의 가지로 만든 매우 귀한 물건인데! 나중에 날 잡아서 그 개구쟁이인 바람의 신을 혼내줘야 겠다고 다짐하며 서둘러 바람을 따라 이동했다.

그런데...

탁-

누군가 내 머리장식을 낚아챘다.

온통 검은 로브로 온 몸을 꽁꽁 싸맨 그 남자는(솔직히 남자인지도 잘 모르겠다.) 가볍게 잡아챈 머리장식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서둘러 다가온 나에게 그것을 건네줬다.

"고맙다. 안 그래도 곤란한 참이었는데..."

"......"

매우 과묵한 녀석이었다. 어떤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도움을 줬으니 답례를 해야겠지.

"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란다. 너는 누구니?"

"...네가... 데메테르?"

"? 나를 알고 있니?"

상대는 나를 아는 눈치였다. 누구지? 한 번도 본 적 없는것 같은데. 하지만 두꺼운 로브로 온 몸을 가리고 있으니 그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난 너를 본 기억이 없는데... 내가 누군지 아니?"

내가 본 적 없다 해도 워낙 자신은 유명했으니(데메테르는 칼레이야의 열매에서 태어난 최초의 신이자 자연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신들 중에서는 하데스를 제외하면 칼레이야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신입니다. 수많은 신들 중에서 단 5명 밖에 안되는 상급신이기도 하죠.) 상대가 자신을 알 수도 있었다.

"......난..."

휘이이잉-

또다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속으로 바람의 신을 어떻게 으깨줄지 이를 갈면서 분노를 삭히던 그때, 그 바람 속에서 희미하지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레이야의 가지인가…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거 같기도…"

매우 작을 목소리였지만 뛰어난 신의 신체 능력은 그 소리를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것 보다...

'웃고... 있네...?'

정말 아주 희미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그건 분명 미소였다.

웃을줄도 알구나. 아까부터 계속 고저없는 목소리로 답하길래 묵뚝뚝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가 언뜻보인 눈동자는 예전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보다 더욱 새까만 검은색이었다.

"소중히 다루거라."

머리에 잠시 무언가 닿은 듯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눈앞에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방금 전 설마....

'쓰다...듬은 건가? 나를?'

흡사 예전에 보았던 갓태어난 어린 신을 다루는 손길과 비슷한 그 느낌은 칼레이야님과 대화를 나눌 때와 경우는 다르지만 매우 비슷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다. 한동안은 바빠서 칼레이야님을 찾아 뵙지도 못했으니까.

......방금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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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1-24 23:02 | 조회 : 1,253 목록
작가의 말
훈글

데메테르는 기본적으로 매우 온화한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중, 하급 신들은 그녀를 어머니나 누나처럼 느끼기도 하죠... 헤라도 있지만 그녀는 매우 무서운 여신이라...ㅇㅁㅇ 장난꾸러기 아이에게는 엄한 데메테르! 칼레이야의 열렬한 추종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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