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손목밴드

36. 손목밴드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자기 전 틀어뒀던 무드등은 이미 꺼져있어 어두워진 방이라 날 만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눈에 힘주자 그 사람은 나른한 목소리로 날 다시 잠에 든다.

"아직 밤이야. 더 자."

한번도 울리지 않던 알람 소리가 울린다. 알람 소리는 하준씨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던 하준씨는 나보다 일찍 일어났는지 없었다.

옆에서 계속 울리는 하준씨 알람 소리를 끄고 거실로 나가자 어설프게 식재료를 썰고 있는 하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 벌써 일어났어?"
"..알람소리 때문에. 근데 뭐해요?"
"어제 저녁해줬으니까 답례로 아침 해주려고."
"어제 설거지 한 건 뭔데요?"
"그것도 답례. 아, 말리지마. 내가 하고 싶은거니까."
"..감자 썰 때 그렇게 썰면 크게 다친다고요. 칼 이리 줘봐요."

하준씨가 들고 있던 칼을 받아 능숙하게 감자를 썰자 하준씨는 나에게 반했다고 말한다. 난 그의 말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뛴다. 그를 도와 아침을 준비했다. 그렇게 완성된 음식들은 하준씨가 식탁에 옮겼다.

"생각보다 그럴싸하네요."
"미안. 내가 한 건 옮긴 것밖에 없네."
"맛있는 냄새~ 앗, 다들 좋은 아침."

잠옷 차림으로 나타나 식탁에 앉아 자연스럽게 수저를 들곤 어서 먹자는 동생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빠 오늘 영희할머니 감자 심는 거 도와준다 그랬지?"
"응. 도와드리러 가야지. 9시쯤 갈거야."

동생과 내가 나누는 말을 조용히 듣던 하준씨는 수저를 놓고 자신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농사'의 '농'도 모르는 사람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면 편하기 때문에 하준씨와 함께 감자밭에 갔다.

커다란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정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은우는 정중히 인사하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웃으며 은우를 반긴다.

"도시 총각 옆은 누구여?"
"아, 제 아는 사람입니다. 할머니 허리는 괜찮으세요?"
"그려. 다 도시 총각덕이지~ 아, 참! 가는 길에 고춧가루 조깐 가져가. 예쁘게 빻았어."
"감사합니다. 마침 필요했는데."

하준은 옆에서 웃으며 할머니께 살갑게 대하는 은우를 처음 보는 듯 신기하기 쳐다본다.

"할머니 오늘 심어야 하는 감자는 어디에 있어요?"
"감자를 잊어버렸네. 밭에 갖다 놓았어야."

할머니가 가리는 곳엔 상자 두개만 있는 밭이었다. 은우는 하준의 손을 잡고 밭으로 걸어가 상자 위에 있는 새것으로 보이는 목장갑 하나를 건네준다.. 하준은 목장갑을 끼며 말한다.

"근데 감자 어떻게 심어?"

은우는 땅을 살짝 파 감자를 심고 서있는 하준을 올려다본다. 하준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은우 옆에 쭈그려 앉아 감자를 심기 시작한다. 해가 중천에 떠있자 멀리서 할머니가 은우를 부른다.

"도시 총각~ 새참 가져왔어! 이거 와서 먹고 시작혀~!"
"하준씨, 어서 가요."

은우는 하준에 향해 손을 뻗었고 하준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나 나무 그늘아래로 향한다. 할머니는 머리에 얻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두고 하얀 천을 걷으며 말한다.

"옥수수랑 감자랑 고구마여. 식혜도 있으니까 많이들 먹고."
"감사합니다. 할머니."
"... 잘 먹겠습니다."

고구마 껍질을 까자 노란 속살이 나온다. 은우는 자신의 입에 넣으려다 어색하게 껍질을 까는 하준에게 건네주곤 하준의 고구마를 가져온다.

"먹어요. 근데 사람이 고구마 껍질을 못 깔수가 있나?"
"먹을 때마다 까서 나오니까."
"무슨 조직보스가 아니라 순 재벌 도련님같네."

하준은 은우가 까준 고구마를 크게 한입을 먹곤 은우가 차고 있는 손목밴드에 시선이 간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안하면."
"그 손목밴드 왜 차고 있는거야."

은우는 먹고 있던 고구마를 내려놓고 하준을 바라본다.

"그게 왜 궁금한데요?"
"대답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

하준은 식혜를 컵에 담아 은우에게 건넨다.

"식혜 마셔. 고구마만 먹다가 체한다."
"흉할지도 몰라요."
"뭐가."

은우는 식혜 담아 있는 컵을 원샷을 한 후 손목밴드를 벗어 상처를 하준에게 보여준다. 하준은 상처때문에 놀란건지 은우의 손목을 잡는다.

"...이게 뭐야. 자살.."
"자살한적 없어요. 확인해볼려고 만든 흔적이지."
"뭘 확인하려고.."

은우는 일어나 하준을 내려다본다.

"나한테 피 트라우마 있다는거 다 알고 온거 아니에요?"
"...은우야."
"아, 할머니 그거 제가 들게요! 허리 다치셔!"

하준은 할머니에게 가는 은우의 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놓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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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1 14:54 | 조회 : 2,40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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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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