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노야/노야아사] 졸업식

"노야씨, 졸업하면 뭐할거야?"

"응?"

"그냥, 내년에 졸업할 생각 하니까 궁금해서."

다케시는 졸업모를 쓴 삼학년들을 봤다. 니시노야도 그를 따라 삼학년을 봤다. 아사히. 헤어밴드를 한 모습도 그렇지만 졸업모를 쓴 모습도 멋있구나.

"배구 계속 하고있겠지."

"하긴, 노야씨는 천재 리베로니까."

"당연!"

니시노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신있는 목소리였지만 니시노야는 확신에 서지 못했다. 배구는 계속 하고 있겠지. 하지만 어떤 형태로?

"너는?"

"나는... 글쎄..."

'3학년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운동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아, 가자 노야씨."

다케시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니시노야는 그게 슬펐다. 자신도 확신에 차서 프로 선수를 하고 있을거라고 대답하지 못한게 슬펐다. 자신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봐주고 뽑아줘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그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케시를 따라갔다. 우선은 졸업식부터.

*

"선배님들, 졸업 축하드립니다!"

"좀 더 축하하는 표정으로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히나타는 씩씩하게 말했지만 눈물 범벅인 체로 말했다. 사와무라는 곤란해하는 얼굴로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울컥한건지 히나타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주장이 히나타 울렸대요~"

"아, 아니 내가 울린게 아니잖아!"

사와무라는 놀리는 스가와라를 때리려는 듯 주먹을 쥐었지만 품에 안기는 히나타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히나타를 안았다.

"아사히 선배. 졸업 축하해요."

"아, 고마워 니시노야."

니시노야는 씨익 웃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 히나타는 귀여웠지만 자신은 우는 얼굴로 아사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사히의 눈은 이미 빨개져있다. 그럼에도 울었는 흔적이 없는걸 보면 그도 울음을 참고 있는것이리라.

"나 부실에서 짐 챙기려고 하는데 같이 가줄래?"

*

부실은 어딘가 횅했다. 아사히가 제일 먼저 짐을 챙기러 온거라 모든것이 다 똑같은데 이상하게 그랬다. 횡한 부실에 그들은 말이 없다. 이렇게까지 말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사히가 배구를 그만두려했을때도 이렇게까지 말이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선배는 배구 계속 하실건가요?"

이 침묵을 참을 수 없어서 니시노야는 떠오르는 말을 아무거나 뱉었다. 그리곤 후회했다. 아사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진학 반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3학년이지만 은퇴를 하지 않고 경기를 뛰어도 꽤 좋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고 들었다.

"니시노야처럼 프로 선수는 안되겠지?"

아사히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니시노야는 덩달아 하하, 웃었다. 평소와 같은 유쾌한 웃음은 아니다. 당연하게 자신이 프로 선수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아사히의 말이 좋았지만 배구를 같이 하지 못하겠지란 아사히의 말은 슬프다.

니시노야는 팀이 좋았다. 배구를 하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예전의 굴욕을 깨고 전국 대회까지 간 이 팀이 너무, 좋았다. 든든한 주장. 엄마같은 부주장. 죽이 잘맞는 친구. 티격태격하지만 경기를 할 때는 누구보다 신뢰하는 후배. 이런 팀을 어디가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자신이 프로 선수가 된다고 해도, 카라스노의 팀은 절대 잊을 수 없을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에이스. 한 번 돌아선 적이 있지만 자신의 손으로 끌고 온 에이스. 자기보다 머리 하나정도 큰 키를 가졌지만 소심한 성격의 에이스. 공을 쥐고 있을때 누구보다 멋있는 에이스.

"선배는 또 떠나네요."

니시노야는 시야가 흐려지는걸 느꼈다. 울고싶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아사히는 짐을 챙기던 움직임을 멈췄다. 니시노야는 고개를 숙였다.

"니시노야."

아사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아, 질책을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니시노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 돌아 선 아사히가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건 알고있다. 누구보다도 잘. 그것을 이용해 그를 비난하려던게 아니었다. 또라니, 아사히에겐 가혹한 말이었다.

"니시노야."

니시노야가 대답이 없자 아사히는 다시 그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니시노야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아사히는 짐을 넣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니시노야를 안았다. 그 강하고, 와일드하고, 한없이 멋있은 니시노야가 품 안에 전부 들어왔다. 아사히는 니시노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선배가 왜!"

아사히의 말에 니시노야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분한 표정을 하고있다. 눈물로 가득한 눈을 한 체. 왜 선배가 사과해요. 왜 선배가 잘못했다고 하는거에요. 그 눈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어쩌면 트라우마가 됐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도망친게. 아사히는 뒷말을 삼켰다. 그는 니시노야의 눈물을 닦았다. 니시노야의 뺨은 뜨겁고, 눈물은 차갑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아사히는 작게 속삭였다.
니시노야는 화가났다. 우는 자신에게 화가났다. 말을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났고, 그럼에도 사과를 하는 아사히에게도 화가났다.

또 멀어지는 아사히에게 화가났다.

화가나는 자신이 싫었다. 마지막은 좋게 보내줘야지. 어젯밤 몇 번이나 그렇게 다짐했는데.

"방학 때 놀러올게."

아사히가 없는 배구가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에이스. 나의 에이스. 하나 뿐인, 나의.

"안 오기만 해봐요..."

"걱정마. 이번엔 도망치는게 아니잖아."

아사히는 니시노야를 꼭 끌어안았다. 니시노야도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평소의 멋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상관없다. 아사히는 파고드는 니시노야를 느끼고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순수한 웃음만 있는 웃음이 아니었다. 아사히는 입을 앙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선배."

"응?"

아사히는 자신의 가슴팍이 젖는게 느껴졌다. 대답하는 아사히의 목소리가 떨렸다.

"... 사랑해요."

그들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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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2-06 00:10 | 조회 : 2,278 목록
작가의 말
늦저녁

엄청 오랜만에 왔네요. 이번에도 메이저입니다. 담백하게 수위 없는거 쓰고싶었어요. 아련한거 잘 못쓰지만 좀 쓰라리고 위태로운 느낌의 글 써보고싶었습니다. 실패한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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