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임신했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 불안감보다는 설렘이 우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라니...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근데 나 얘 못 키워."
그 다음 말을 들었을때는 누군가 나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왠지 다음 말이 예상이 갔기에.
"그래서 얘 지울거야. 그러니까 돈 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지난 2년간 사랑한 사람의 정체가 탄로난 순간, 난 이별을 경험했다. 더 이상 내가 사랑한 그녀는 없었다.
"꼭... 지워야 해?"
"어. 나 23살이야. 네가 내 인생 책임 질거야?"
그저 전남친의 배경을 보고 돈만 탐하는 뱀 한마리가 나의 앞에 간사한 혀를 내밀며 노려볼 뿐이었다.
"애 낳으면 내 몸매 망가지고, 돈도 많이 들고 하는데 네가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니까 애 지우게 돈줘."
"얼마면!"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은 남자친구의 큰소리에 놀란 뱀은 놀란 듯 토키 눈을 뜨고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면 애 낳을 거야..."
"하? 장난해? 안 낳을 거라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그때 네가 피임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일 없거든?"
이 사태에 나의 탓도 있긴하다. 분명히. 하지만 아이의 잘못은 없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 아이를 그냥 보내기엔 나의 죄책감이 너무나도 컸다.
"5억."
"음?"
"5억이면... 애 낳아줄래? 그 돈이면 애 안죽일거냐고!"
"하!"
도도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나를 보고 소름끼치는 웃음을 보였다.
"7억이면 생각해볼게."
그 자리에서 전여자친구와 계약서를 찍게 될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끔찍한 첫 연애의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