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 15



내 방으로 하영이를 끌고 가 시계를 다시 맞추게 한 뒤 내보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뛰어다니느라 긴장한 몸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풀었다.
마무리로 기지개를 키며 전신거울 앞에 서자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알림 표시를 터치하자 거울 화면에 현재 내 신체를 스캔한 정보가 떴다.

사용자 : 유은하
나이 : 15
몸무게 : 67
키 : 175cm
@ <-추가로 정보를 열람하시려면 클릭하세요

간략하게 뜬 정보창을 보자 175cm의 키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 비해 훌쩍 자란 키를 보고 있자니 새삼 기절 사건 이후로 한달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당시 연구소에서 깨어난 나는 한달 가까이 기절해 있었지만, 체내의 특이한 차원에너지 덕분인지 근육에 이상이 없어 별다른 재활훈련 없이 금방 퇴원할 수 있었다.
대신 기절사건의 원인이 된 내 안의 차원에너지에 대한 위험성 때문에 한동안 연구소 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검사를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안의 차원에너지는 그 성질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니 달라졌다 하기보단 진화, 라고 할까.

이전의 체내의 에너지가 붉은빛으로 관측될 때는 기존의 소붕괴 및 대붕괴에서 관측된 뉴프라움(차원에너지 자원)과 유사한 성질을 보였다.
그 성질이 불안정하고 파괴적이어서 마치 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 결과 생체-차원에너지 반응기(내가 누웠던 캡슐의 정싱 명칭이라 한다)에서 가해지는 자극에 내 안의 에너지가 폭주, 약 한달 간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절 후 변화된 금빛의 에너지는 달랐다.
부드럽게 내 신체의 내부를 흘러 다니며 안정적인 양상을 보였다.
또한 에너지를 통한 신체의 강화 효과가 이전과 비교할 바 없이 상향되었다.
기절에서 깨어난 직후 측정한 근력은 일반적인 중학교 남학생보다 조금 더 쌘 정도였다.

하지만 몇 가지 체력테스트를 하며 신체에 자극이 가해지자 에너지의 흐름이 그에 맞추어 가속되며 신체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근력의 탄성과 뼈의 강도가 보통 인간의 1.5배 가까이 증대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급속히 키가 크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현재는 건물 2층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고 오르는 정도는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다행이 현재는 이 이상의 근력의 증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급격히 증가된 근력과 키는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머그잔을 들다가 깨지질 않나, 셔츠의 단추를 몇 번이나 뜯어내고 심하게는 박천호 박사님의 차문 손잡이를 뜯어버리기도 했다.
천호 박사님이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었지 아마.
나중에 들으니 수리비는 연구소에서 날 보호 중 이었기에 날 보호하는데 책정된 예산에서 빼다 썼다고 한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매주 토요일마다 강화된 힘을 다루기 위해 연구소 체력 단련실에서 몇 명의 연구원들과 연구소 전속 트레이너와 함께 연습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삐약삐약

NPP[New Praum Player(차원에너지 자원인 뉴 프라움을 이용해 만든 양자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된 이 시대의 스마트폰)]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자 마동식 트레이너님에게서 온 문자였다.

-은하야. 오늘은 4시다. 지각하지 말고 오거라.^^

문자 뒤에 붙은 웃음이 무섭다.
팔뚝이 내 허리만하고 덩치는 두 배는 넘을 것 같은 트레이너님의 모습을 매치시키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으휴.

…그러고 보니 왜 알림음이 삐약거리지.


***


연구소 체력 단련실에 도착하자 마동식 트레이너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하하하! 왔구나. 3시 58분."
"넵."
"그럼 지체하지 말고 바로 시작하도록 하자."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작게 뱉은 난 팔을 스트레칭하며 트레이너님의 뒤를 따라 갔다.
100평 정도로 상당히 넓은 체력단련실의 중앙으로 날 데려간 그는 내게 이전시간에 연습했던 걸 해 보이라 하셨다.
가벼운 전신 스트레칭으로 유연하게 몸을 풀어 준 뒤 제자리에 바르게 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쓰읍- 후-

숨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눈을 감고 오른발을 바닥에서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뻗는 동시에 왼쪽 팔을 앞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밀듯이 뻗는 동작으로 시작했다.

팔과 발을 바꾸어 다시 한 번.

이 동작을 20번 반복했다.
별 것 아닌 동작처럼 보이지만 이 동작에는 신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묘리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팔과 다리를 동시에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동작으로 천천히 풀어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된다.
20번 반복한 내 온몸에 흐르는 땀을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헥헥거리고 있자, 마동식 트레이너님이 다가오더니 냉수가 담겨있는 텀블러를 건네주셨다.

“힘드냐?”
“…헉…헉. 당연히… 힘듭니다.”
“입이 살아있는거 보니 멀쩡하네. 다시 20회 반복.“

이씨.

“크…읍.”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켜 다시금 동작을 시작했다.

이후로 무진장 굴렀다.


***


“음.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안 선생님.”

안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콜라를 건네주시며 이마에 손을 얹어 보시더니 물었다.

“은하학생 몸이 많이 안 좋은가요? 열은 없는데.”
“아, 네. 괜찮습니다. 운동을 좀 세게 해서 그렇게 보이나 봐요.”
“마동식 트레이너가 좀 빡세긴 하죠.”

안 선생님은 저번에 내가 쓰러졌던 뒤로, 약간 과보호하는 경향이 생기셨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그건가요?”
“아, 네. 맞아요. 연습실로 갈까요?”

안 선생님을 따라 저번에 갔던 돔형 연구소로 들어갔다.
내가 이번에 할 것은 내 체내에 있는 차원에너지의 발현이었다.
차원에너지가 안정된 이후 트레이닝을 받으며 생긴 현상에서 연장되어 하게 된 훈련이다.
내가 트레이닝을 할 때는 항상 몇 명의 연구원이 붙어 내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데, 얼마 전 트레이닝 때 내가 손과 발을 뻗어 무언가를 타격하는 순간 체내의 에너지가 타격부위로 응집되는 현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에 내가 차원에너지를 의지대로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의견이 제시되어 실험을 시작했고, 현재는 내부운용을 넘어 외부발현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내 연습실은 깊은 지하에 위치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연습실은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15m의 정육면체 형태로 벽면이 뉴프라움을 가공해 만든 새하얀 빛의 완충소재로 덮혀 있었다.

여기서의 훈련은 전처럼 몸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크다고 할까.

털썩.
방의 중앙에 아까 받은 콜라캔을 세워 놓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후우.

호흡을 한 차례 가다듬은 뒤 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눈을 감았다.
다시금 체내의 에너지를 느껴 본다.
아랫배에 자리한 금빛 에너지를 서서히 의지대로 일으켜 앞으로 뻗은 손으로 모았다.

움찔.

손가락 끝이 악하게 떨렸다.
에너지가 손바닥을 지나 다섯 손가락으로 줄기줄기 퍼져나간다.
그리고 에너지가 손끝에 도달하자 지문 있는 곳이 점점 뜨거워진다.

“흐읏….”

작게 신음이 흘러 나왔다.

“크읍.”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집중을 시작했다.

‘앞으로. 저 앞으로.’

강렬히 염원하며 손을 쫘악 폈다.
그러자 다섯 손끝에서 가느다란 금사가 밝은 빛을 뿜어내며 나왔다.

“크…. 하.”

한순간 눈이 떠 지며 맥이 탁 풀려버릴 뻔 했으나 다시금 긴장을 부여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부터가 승부처였다.

여기까진 저번에도 성공했었다.
이번 연습의 관건은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이다.

내 의식을 따라 7m 정도 앞에 있는 콜라캔을 향해 금사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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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06 20:54 | 조회 : 1,086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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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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