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14

눈을 뜨자 밝은 조명에 미간을 찌푸리게 되었다. 눈을 깜빡이고 동공의 조리개가 수축하며 빛을 조절하자, 그제서야 앞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음..."

잠시간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좀 정신이 들자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한쪽에는 내 상태를 체크하는지 갖가지 기계 설비들이 있었고, 그 기계들에서 몇개의 전선이 내 신체의 각 위치로 뻗어있었다. 이마와 가슴 다리에도 같은 게 붙어있는 듯 했다. 내가 누워있는 병원 침대 옆에는 몇 개의 약물이 관을타고 주삿바늘을 통해 주입되고 있었다. 내 코와 입에도 산소마스크와 함께 플라스틱 관이 삽입되어 있었다. 의식이 없었다면 모를까, 깨어난 지금은 답답했기에 오른손을 뻗어 제거했다.

"파하."

시원하게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내가 왜 병원에 있는거지?
검사가 잘못됬걸까?
얼마나 지난거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난, 다시금 깨어나기 전에 느낀 황금빛 에너지에 생각이 닿았다. 지금도 내 몸 전체에서 고요히 울리는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 힘은 또 무슨 현상일까. 생각이 다시 이어지려 할 때, 병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을 돌리자, 병실문을 열며 들어오는 지한이 형이 보였다. 기분탓인가, 좀 야위어 보였다. NPP(New Praum Player) 를 보며 걷던 지한이 형이 문득 고개를 들어 나랑 눈이 마주쳤다. 윙크라도 해 줄까.
내가 장난을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나를 본 지한이 형의 눈이 커지더니 침대로 달려왔다. 그러더니 입만 벌리고는 제대로 말도 못한 채 서서 눈물이 뺨을타고 주륵 흘렀다. 손은 내게 다가오다 허공에 멈춘 상태로 날 건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무슨 톡 치면 바스라질 것도 아닌데 말이지.
살짝 고개를 든 불만은 눌러두고 왼손을 뻗어 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애도 아니고 다 큰 형이 왜이리 눈물이 많아."

내 말을 들은 지한이 형이 푸스스 웃으며 양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하... 그러게. 주책맞게 왜 눈물이 나냐."

그러고는 병원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내가 쓰러진 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학교는 병결처리 해 놓고 있다는 것, 산이와 별이, 봄이가 얼마 전 소풍을 갔다 왔다는 것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듣다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데체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길래 저렇게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거지?

"...형."
"응, 왜?"

한참 동안 이얘기 저얘기 하던 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내가...얼마나...입원해 있던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잠시간 침묵하던 형이 입을 열었다.

"...27일."
"..."

기껏해야 3일 정도 예상하고 있던 나는 생각 이상의 숫자에 말이 막혔다.
거의 한달동안 입원해 있었단 말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자, 다시 병실 문이 열리며 의료진들과 몇몇 연구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호흡기가 제거되며 그들에게 알림이 간 것 같았다.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안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역시 지한이 형처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의료진이 내 몸상태를 이리저리 검사하고 연구원들이 몇 가지 장비를 체크하는 동안, 나를 본 선생님은 얼굴이 울 듯이 일그러지며 연구원들을 헤치고 내게로 왔다.

"은하학생..."

저번에 본 당찬 모습에서 연상하기 힘들 정도로 안 선생님은 위태위태해 보였다. 의식이 없던 기간을 듣고 놀란 마음은 무너질 듯한 선생님의 표정에 가라앉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살짝 웃으며 장난스레 말을 걸자 안 선생님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후우... 몸은 좀 어떤가요?"
"뭐, 약간 나른한 것 빼고는 지금 당장 퇴원해도 될 것 같은데요?"

사실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몸 전체에 활기가 가득했다.

"오버하지 말고요. 일단은 여기서 추가검진이 있을거에요. 그리고 쉬었다가 내일 차원에너지 쪽으로 검사를 진행할게요."

앞으로의 스케줄을 말하며 걱정스런 표정이 서서히 풀리는 안 선생님이었다.

턱.
그런 안 선생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웃는 얼굴의 천호 박사님이 나타났다.

"...!"

안 선생님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곧이어 오른팔을 뒤로 휘둘러 풀스윙으로 그 팔꿈치를 천호 박사님의 늑골에 꽂아버렸다.
잠시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던 천호 박사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으... 안녕하세요, 은하학생. 기분이 어떠신가요?"
"음... 괜찮아요."
"그런가요. 쿨럭, 큽. 아 맞아...은하 학생이 쓰러져 있는 동안 안 선생님이 맘고생이 심했어요.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아주... 아야야야야."

주절주절 말하는 천호박사님의 귀를 안 선생님이 잡아당겼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듯한 안 선생님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그럼 오늘 검진 잘 하고 내일 봐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안 선생님과 천호 박사님, 연구원들이 우르르 나가자 병실에는 한쪽에서 이것저것 하고있는 의료진 몇몇과 지한이 형만 남아있었다.

"..그럼, 은하야. 나도 이제 가 볼께."
"잘가 형."

지한이 형도 나가자, 난 누워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잠들었다.



***



[incomprehensibilis - 은하] 는 어두운 공간에 있었다.
사방이 새카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자 창백한 손가락이 길게 뻗어있었다.

'이게... 내... 손...?'

약간의 혼란이 찾아온다.

'난...나는...누구..."

얼핏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적어도 그의 차원에서는.
그의 발아래 펼쳐진 드넓은 우주에서는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러 세력이 충돌할 때 마다 수많은 항성들이 폭발한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폭풍은 우주의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전쟁의 피해를 키웠다.
그는-

기억이 끊겼다.

'난...아니...아냐...이게...아...'

또다른 기억이 또다시 머리를 스친다.
그는 고아였다. 5 살때 고속도로에서 난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원에 재적되었다. 고아원에서는 친한 친구와 좋은 형을 만났다.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나는'

상이한 기억들로 머릿속이 혼잡해진다.

'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잊어갈 때 쯤 목소리가 들렸다.

"은하야!"



***



"끄응..."

이젠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지녔지만 아침에 일어나기는 심리적으로 괴로웠다.

"빨리 일어나!"

누군가 내 이불을 뺏어간다. 침대 위에서 몸을 굴려 엎드린 뒤 배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누군가는 내 배개마져 뺏어가려 했지만 내 악력을 이길 순 없었는지 잠시 후 포기했다. 대신,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야. 빨리 안일어나면 지각한다? 지금 벌써 여덟시야. 지한이 오빠가 태워준대."

순간 눈이 번쩍 띄었다.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환상.
지각했다고 학생주임에게 혼나는 기억은 그가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게 했다.
고개를 들고 벽에 있는 시계를 보자 시간은 8시 5분이었다.
지금부터 머리감고 옷갈아입고 하면 10분.
아니, 내 육체는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으니 5분, 빠르면 3분도 -머리를 안 말린다면- 가능하다. 그럼 등교시간인 8시 20분까지 12분. 가능하다. 아슬하지만 가능하다.

"풉. 놀랐어? 사실 오늘은..."

옆에서 하영이가 뭐라 말하지만 들을 시간은 없다. 교복을 옆구리에 낀 후, 최대한 빨리 씻기 위해 2층에 있는 내 방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내 방의 바로 밑은 욕실. 환풍기가 없어 빼꼼히 열어놓은 창문을 두드린다.

똑똑-

좋아. 아무도 없다.
재빠르게 창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가 창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10초.
아직 초봄이라 쌀쌀하지만 온수가 나오기까지는 30초, 기다릴 수 없다. 찬물을 틀고 순식간에 머리를 적신 후, 비누로 세수와 머리감기를 한번에 해결했다. 빠르게 손을 움직인 후 비누칠하는 동안 대야에 받아놓은 물로 빠르게 행궜다.
지금까지 약 2분 20초.
상, 하의를 거의 동시에 탈의한 뒤,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와이셔츠의 단추는 차에서 매면 될 것이다.
째깍째깍째깍.
욕실에 있는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린다.
약 2분 50초.
욕실 문을 열고 나가 거실로 달려가서 지한이 형을 찾았다.

"형! 형 어디...!"

순간 난 눈앞의 광경에 할말을 잃었다.
연한 체크무늬 파자마 차림에 보송보송한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지한이 형이 거실 의자에 앉아 NPP신문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것이다.
마치 세상에 자기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듯이.

"음? 은하야, 일찍 일어났네?"

일찍?
거실 벽에 결려있는 전자시계로 눈이 갔다.

'6시?'
"근데 교복은 왜 입고있니? 오늘은 토요일인데?"
"..."

토요일자의 NPP신문을 흔들며 말하는 형이었다.

등쪽에 있는 계단에서 살금살금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내 고개가 기름칠을 안해 녹이 슬어버린 기계처럼 부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간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하영. 베시시 웃는다.

활짝.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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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6 01:01 | 조회 : 1,097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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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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