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21화

" ... "

"다 울었어? "

몇 분을 윤기의 품에서 울어대던 태형이 그제서야 진정이 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 울고나니 뒤늦게 이 덩치로 윤기의 품에서 엉엉 운 것이 창피해졌다. 요즘 말로는 이것을 현타: 현자타임이라고들 한다. 태형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을 못난 자신의 얼굴을 생각하자, 막상 고개를 들 수가 없어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게다가 윤기에게 모진 말이나 해놓고 자신이 이런 꼴이라니, 민망함과 죄책감은 배가 되어 태형이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윤기도 그런 태형을 아는지, 아무말없이 부드럽게 태형의 등만 쓸어주었다. 또다시 둘 사이에 정적이 찾아왔지만 아까와는 다른, 묘하게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

"자,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 ... 그래도"

"어쭈, 말 안 해? "

" ... 알았어"

잠시 망설이던 태형이 마음을 열고 알았다며 윤기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편의점 그날처럼 태형은 윤기에게 정국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털어놓았다. 태형이 말을 하는 동안 윤기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윤기의 입장에서 정국은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태형은 도대체 정국의 무엇을 보고 그리 좋아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윤기는 바보 같은 태형이 그저 가여울 뿐이었다.

"그래서, 넌 괜찮은 거냐? "

"나는 뭐... "

거짓말

하나도 괜찮아보이지 않았다. 상처투성이로 괜찮다 말하는 태형의 모습이 꽤나 위태로웠다. 자신의 감정을 웬만해선 잘 드러내보이지 않는 태형이지만, 지금 가장 힘든 것은 태형일 것이다. 소문에 전정국에 상처와 정신적 피해까지 생각하자니 이렇게 버티는 태형이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형은 꿋꿋하게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열심히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윤기는 생각했다.

너는 강한 아이구나

.

윤기는 부모님이 안 계셨다. 가정에서 자신의 곁에 남은 사람이라곤 젊은 20대의 이모 뿐이었다. 이모는 집 안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현재 아주 젊은 여자였다. 윤기는 정확히 초등학교 2학년, 한참 자라날 나이인 9살에 살던 아파트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그 상황에 자신은 어머니와 단 둘이 집에 있었고, 아버지는 일을 나간 상태였다. 윤기의 어머니는 윤기를 구하려다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리고 윤기는 혼자 살아남아, 자신의 아버지와 둘이서 살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은 그날 윤기는 장례식장에서 많이도 울었다. 울고 또 울고-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점점 미쳐갔다. 그렇게 술과 담배에 의지하다, 의미없는 삶에서 벗어나길 바라던 아버지는 스스로 목을 매어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날, 충분히 힘들 윤기의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윤기를 돌봐주러 온 자신의 이모가 학교를 간 윤기를 대신하여 그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날 윤기의 이모는 교복을 걸친 어여쁜 소녀였다.

한창 사랑받을 나이에 결국 윤기는 부모님을 모두 잃게 되었다. 친척과 다른 사촌들은 혼자 남겨진 윤기를 키워낼 자신이 없어, 받아주지 않았다. 윤기는 어린나이에 험난하고 또 험난한 부질없는 어른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님을 걱정하는 척 남은 재산들을 넘보는 추악한 쥐새끼들, 역겨울 뿐이었다. 이런 것들과 피가 섞여있다니 온몸의 핏줄을 자르고 싶었다. 언니를 잃은 늦둥이의 어린 이모와 부모님을 잃은 조그만 윤기. 지친 둘은 서로 뭉쳐 힘들게 생을 이어가기로 했다. 자신의 친누나와도 같은 존재인 이모는 교복을 입고 알바를 하던 때가 지나, 이젠 직장을 다니며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힘들고 외로웠던 윤기는 점점 엇나갔다. 학교를 멋대로 가지 않고,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술과 담배에 손을 댄다. 남들에겐 그저 비행청소년과 날라리 등으로 불리지만, 이들은 서로 나름대로의 고통을 가슴 깊이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매일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지각을 한 윤기는 뒤늦게 반에 들어와, 혼자 남겨져있는 태형을 보게 되었다. 지칠대로 지친 듯,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그 모습이 마치 9살의 자신의 모습과도 같아 묘했다. 그렇기에 묘한 이끌림으로 태형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윤기는 자신이 이때까지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관심과 도움, 사랑을 '9살의 나' 같은 태형에게 줌으로써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꼈다.

이 불행도 누군가와 나누니 버틸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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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17 06:34 | 조회 : 5,991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늦은만큼 분량을 더 늘렸습니다! 모두 즐감하셨다면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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