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몇만 명의 피가 섞인 썩은 피 냄새가 얼굴을 구길 만큼 코를 찔러왔다.

사람들로 만들어진 산은 참혹하다 못해 끔찍했다.

피로 뒤덮인 인간산 사이에 우뚝 홀로 서 있는 여인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이 끔찍한 전쟁의 승리자인 것 같았다.

그녀는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기없는 눈동자는 가만히 땅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쥐고 있는 검 끝으로 향해 내려오는 피가

이 살육현장의 범인이 그녀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클로나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최악의 ‘살인귀’라고 불리는 여인이었다.

클로나는 자신의 시야가 뿌옇지는 것을 느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심한 독 중독으로 인한 몸의 마비와 망가진 장기들이

클로나의 의식을 흐렸다.

클로나는 ‘승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조금 늦게 죽은 ‘패배자’였다.

그녀는 여태껏 손에서 잘 놓지 않았던 검을 떨구었다.

무거운 적막이 흐르던 공간에서 차가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이 정말 그녀의 검을 떨군 소리인지 그녀의 고통에 젖은 소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곧 클로나도 검을 따라 몸이 기울어져 쓰러졌다.

차가운 땅과 얼굴을 마주하자 클로나는 자신의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 내 발버둥도.... 이로써 끝인가...”

클로나는 목구멍에서 막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겹게 내며 자신의 최후를 알렸다.

그리고 클로나는 이미 모두가 죽어있는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이상했다.

다시는 떠지지 않았어야 할 눈이 떠졌다.

다시는 보이지 않았어야 할 햇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었고

다시는 움직여지지 않았어야 하는 팔, 다리가 움직였다.

클로나는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혼란이 왔다.

자신은 분명 죽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자신은 죽었다고 한들

그녀는 살아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이지”

그녀는 멍하니 낯선 천장만 바라보다 몸을 세웠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너머로 흘러내린 낯선 금색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살인을 위해 걸리적거렸던 긴 머리를 짧게 잘라버린 것은 오래였고 항상 피에 섞여 결국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기분 나쁘도록 엉킨 머리카락 대신 어떻게 이 정도로 많이 긴 것인지 모를 긴 머리와 부드럽다 못해 힘없어 보이는 금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보였다.

클로나 또한 몹시 놀라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이상한 것이 그것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던 고급스러운 방과 정말 구름 위에 눕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던 크고 폭신한 침대에 앉아있었고 방 안 곳곳을 채운 고급스러운 물건들이

눈에 보였다.

그녀는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쪽으로 향했다.

거울의 비친 그녀의 모습은 절대 클로나가 아니었다.

수많은 싸움으로 인해 얼굴을 뒤덮었던 끔찍한 흉터들이 없었고

지쳐있던 두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28살이던 클로나와 달리 거울 속에 비추어진 사람은 많게 봐야 16살인 소녀였다.

또한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와 녹아 내릴듯한 금발이 그녀는 보통의 미녀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 이게 나라고?”

클로나는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았다.

클로나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랐다.

지금 얼굴을 매만지고 있는 손마저 다르니 말이다.

그나마 같은 것을 찾으라고 한다면 여자라는 점이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클로나가 허가하지 않았음에도 그냥 들어오는 인물은 시녀였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 있는 클로나를 보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도 숙이지 않은 체

말했다.

“ 스텔라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 스텔라?..”

아무래도 지금 거울의 비친 소녀의 이름으로 보였다.

클로나는 조용히 시녀를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녀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말을 이었다.

“ 일어나셨으니 가주님께 가보시지요”

약간은 건방지게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클로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녀의 말대로 클로나는 가주라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시녀의 안내에 따라서 가자 시녀가 문을 두 번 노크했다.

그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명령문이 들려왔고, 아까 자신에게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몸을 숙여 문을 여는 시녀를 클로나는 비웃었다.

아까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른 것을 보면 스텔라가 저 시녀보다 신분이 높은 것은 확실한데

그녀는 존칭만 쓸 뿐 허리를 숙이기는커녕 당당히 눈을 마주쳐왔다.

자신이 모르는 스텔라라는 소녀가 그것을 허락한 것인지 아니면 싸우자고 시비를 거는 것인지

스텔라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클로나는 자동으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했다.

마치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든 ‘인형’ 같았다.

“ 고개를 들어라”

낮고 위엄있어 보이는 클로나의 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라는데 들어야지’

클로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클로나 본인으로선 명령을 받는 것을 안 좋아했지만

눈치는 있었다.

분명 저 가주라는 사람은 스텔라의 아버지 일테고 스텔라라는 자신은

딸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때 가주라는 아버지가 클로나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클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 옷이 그게 무엇이냐”

그의 말에 클로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스텔라의 잠옷인지, 아무래도 지금 가주라는 아버지 앞에서 입을 만한 옷처럼은 안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딸을 저 정도로 찌푸려 보다니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커왔지만

그래도 저것은 무언가가 잘 못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시선이 거슬렸다.

그때 자신의 옆에 있는 시녀가 미소를 그을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클로나는 조용히 시녀를 응시했다.

눈동자만을 굴려 그녀를 보자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클로나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니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클로나는 아버지 앞이라는 사실에 아차 싶어 아버지를 보았을 때

의아함이 묻어나왔다.

그가 놀라 있는 것은 맞았지만 그 속에는 긍정적인 면도 보였다.

그 속을 알기도 전에 아버지라는 자가 말을 꺼냈다.

“ 허약해서 며칠 동안 앓아눕더니 좀 정신 차린 것이냐?”

이해하지 못하겠는 말에 클로나는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짜증나 있는 클로나의 얼굴도 좋다는 듯이 웃는 아버지라는 자가 굉장히 거슬렸다.

어찌하여 겨우 대화를 마친 클로나는 자신을 안내하고 비웃었던 시녀를 향해 물었다.

“ 너 ”

“ ㄴ..네?”

아까 살기 있는 눈으로 봐서인지 전보다 훨씬 예의 차려 말했다.

“ 니가 아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게 말해주지 않겠니”

“ 제가 아는거요?”

“ 그래, 이 집에 대한 것부터 나에 대한 모든 것”

“ 아가씨에 대한것도요?”

“ 그래, 모두다”

시녀는 의문이 들었지만 옛날과는 다른 스텔라의 위화감 때문에 군말없이 모두 말했다.

시녀가 나가고 클로나는 생각했다.

시녀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아켈리온 백작가이며 대대적으로 ‘살인’을 일삼는

곳이라고 했다.

‘살인’은 법적으로 죄가 되기 때문에 비밀로 하고 있으며 돈을 가득히 벌기 위해서 살인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텔라는 그 집 안에 딸이고 15살로 4째로서 막내라고 했다.

스텔라 즉 이 몸의 주인은 몸이 어릴 때부터 약했고 피 한 방울도

보지 못하는 여리디 여린 아가씨라고 했다.

벌레 하나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스텔라는 아켈리온 백작가에 쓸모없는 물건이었고

가족을 포함한 시녀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중이라고 했다.

몸이 허약한 스텔라는 감기에 걸려 약 5일 동안 앓아 누었고 오늘 깨어난 것이라고 했다.

시녀의 말을 잘 들어보면 거의 죽을 위기였다고 했다.

근데, 갑자기 죽었던 자신이 스텔라에게 들어왔다는 것은..

“ 아마도 스텔라는 죽은 건가”

즉 진짜 스텔라는 클로나의 몸에서 죽고 클로나는 스텔라에 몸에서 산 것이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그것이 가장 근접해 보였다.

클로나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정말 여리게 생겼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창백한 피부 빛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 백작가가 ‘살인’을 일삼는다. 듣지도 못한 이야기인데”

클라나 아니 스텔라가 조용히 웅얼거렸다.

스텔라는 입꼬리를 올려 매력적이게 웃었다.

살인이라는 것이 죽어서도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이 웃겼다.

스텔라의 푸른 눈동자가 살인귀 클라나의 눈처럼 고고하게 빛났다.

스텔라는 아까 아버지를 포함한 시녀들, 가족들을 떠올렸다.

스텔라는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부터 차례로

가녀린 소녀로서 사뿐히 밟아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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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17 16:57 | 조회 : 2,666 목록
작가의 말

재미로 쓰는 소설입니다.^^* 재미가 없을 수 있다만...음.. 너그럽게 넘어가셔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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