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14화

이비스 또한 크라운과 같이 빌에게서 근접전으로는 불가능했다.

원거리전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0.01%의 가능성이 더 있었다.

이비스는 바람을 일으켜 빌의 움직임을 막아야 했고 살 순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해왔다.

빌은 아까부터 자신의 움직임을 막아오는 강한 바람에 혀를 차며 이비스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비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지만 지금껏 살아온 시간과 크라운과 수없이 같이 지내온 그녀에게 판단력을 잃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강한 바람에 발이 땅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균형을 잡기 힘든 마당에 주변에서 정령들마저 공격해 오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상처를 입힐 만큼 강하게 덤벼온다면 재미라도 봤을 터이지만

이런 자잘한 공격은 짜증만 일으킬 뿐이었다.

빌은 짜증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정령들을 향해 그 크기에 따른 마법진을 생성했다.

이비스는 눈을 크게 뜨며 다급함에 정령들에게 돌아올 것을 명령했으나 그녀는 그제야 알아차린 것 자체만으로 한참이나 늦었다.

“ 안돼!! ... ”

마법진이 발동되자 정령들의 머리가 하나씩 터져나갔다.

정령들 특유의 푸른색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갈 곳을 잃은 이비스의 손이 허공에서 휘저어졌다.

자신의 앞에서 동료이자 친구, 가족인 정령들이 죽어나가자 이비스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이질감에 구토하기 시작했다.

“ 욱....커헉..헉..”

겨우 진정하고서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빌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나마 희망을 가졌던 그녀는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다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잃고 그리 시간을 벌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상실자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눈물이 볼을 타고서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태풍을 일으켜 그의 움직임을 막고 정령들을 소환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1번 잃은 것들을 또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빌은 자신의 볼에 꽤나 많이 묻은 푸른색 피를 닦아내며 피식 웃으며 이비스에게 조소를 날렸다.

이비스는 그 모습이 ‘정령들의 죽음’을 다시 1번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태풍으로 비를 내렸었기 때문에 남아있던 물이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얼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빌을 향해 날아갔다.

셀 수 없이 많고 작으며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한 얼음들이 빌의 살갗을 스쳐가고 있었다.

이비스는 이번엔 정령들을 소환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버티기로 결심했다.

이비스는 눈을 굴리며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크라운을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마나의 양을 볼 때 아주 조금만 더 버틴다면 될 것 같았다.

이비스가 다시 빌을 보았을 때 빌은 이비스를 차가운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비스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하는 빌의 시선에 몸을 움츠렸다.

그때 빌은 입 꼬리를 소름끼치게 올려 웃으며 크라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비스는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돌렸다.

저 표정은 분명 크라운을 먼저 죽이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무방비한 크라운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것만큼 쉽고 간단하리라

이비스는 아까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던 정령들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눈앞에 피투성이인

크라운이 보이는 듯 했다.

‘ 크라운을 지켜야만 ㅎ!..ㅐ.......’

이비스는 크라운을 향해 날아가려던 것을 강제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비스의 입에서 푸르지만 짙은 피가 울컥하고 쏟아져 내렸다.

이비스가 흐릿해진 시야로 자신의 배 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손도 아닌 타인의 손이 보였고 그 손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와 있었다.

이비스가 고개를 돌리며 뒤를 보자 빌이 웃으며 서 있었다.

이비스는 그제야 빌은 크라운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닌 크라운을 미끼로 써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빌이 손을 이비스의 배에서 빼자 이비스가 균형을 잃으며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졌다.

이비스의 몸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땅에 몸이 박혔다.

바닥을 축축하게 적셔가는 푸른색의 피가 바닥의 무늬에 따라 흘러갔다.

점점 색을 잃어가는 눈동자가 크라운에게로 향했다.

가늘게 떨리는 이비스의 눈동자에 가득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이비스? ”

준비가 끝났는지 크라운이 살기에 가까운 마나를 두르고서 눈을 떴다.

아래에 힘없이 쓰러진 이비스를 보며 크라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크라운이 이비스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이비스를 안아 들었다.

말을 할 힘도 없는 듯 이비스가 반쯤 감긴 눈으로 크라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떨리고 있는 입이 움직였다.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크라운을 부르고 있었다.

크라운의 눈동자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이비스를 안아들은 손도 떨고 있었다.

“ 이비스?? 이비스!!....이게 무슨...!!”

크라운이 이비스의 상처를 치료하려 손을 상처에 가져가려 하자 힘없이 차가운 손이 크라운의 손을 밀쳐냈다.

이비스가 아랫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저었다.

만일 지금 크라운이 이비스에 상처를 치료한다면 지금 모아두었던 마나를 다 써야할 것이었다.

그 힐을 받고 나서라도 이비스는 크라운의 힘이 되어줄 수 없을 터였다.

그녀 스스로도 크라운의 짐밖에 되질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정령도 소환할 수 없고 그렇다고 혼자 힘으로 빌을 이길 한 사람의 몫도 해낼 수 없었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크라운이 빌을 죽이고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킬 가능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 ..... ”

분명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가오는 죽음에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찢어질 듯 하는 고통과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라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비스가 크라운의 옷깃을 붙들었다.

안간힘을 내며 차마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려

입을 열었다.

“ 메....멜, ㄴ...나..나 말, 이야.. .......진짜...진짜.. 정말로...

......”

고통에 잠시 말을 멈추다가 눈물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 아껴...널 ..아끼니까....진짜....만일에..정말 컥..허억.......이게.. 네가 말했던... 사라가 말했다던 ..연극.. 같은 거라면.....이게 연극이라면!.......”

이비스의 몸이 점점 모래로 변해가 바람에 휩쓸려 점점 그 형태를 잃어갔다.

크라운은 그런 이비스를 보며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미련하고 안쓰러워 보일만큼 크라운이 날아가는 이비스의 조각들을 잡아보려 손을 허공에서

휘저었다.

그런 크라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비스는 자신의 몸이 날아가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다음엔.....이런 비참하고 나약한.. 역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여인.....그 역을 받고 싶어..”

이비스가 필사적인 모습으로 크라운의 옷깃을 강하게 쥐었다가 크라운의 얼굴을 보고서

미약한 미소를 지으며 옷깃에서 힘을 풀었다.

“ 이거야 말로...파란장미 같네..”

이비스는 그 말을 끝으로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기운도 모습도 사라졌다.

그녀가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는 크라운의 옷과 손, 바닥에 묻은 그녀의 피 뿐이었다.

크라운이 이비스를 안아들었던 손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크라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빌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빌은 여전히 크라운을 향해 웃고 있었다.

“ 마지막만큼은 지루해도 기다려줬는데 그 표정은 너무한 거 아냐?”

“ ...그래...”

빌은 자신의 발밑에 어느 순간 움직임을 봉쇄하는 마법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알아차리기 무섭게 크라운이 거대한 마법진을 펼쳤다.

마을에서 펼쳤던 메테오와는 마나의 농도부터 크게 차이가 났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빌은 눈을 크게 뜨며 크라운을 바라보았다.

크라운은 붉은색 안광을 빛내며 눈물을 흘리고는 말했다.

“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

- 파란장미의 꽃말 : 이룰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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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02 00:33 | 조회 : 1,961 목록
작가의 말

다음편이 완결이 될 것 같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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