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하윤이 진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깨 위로 담요를 끌어올리던 손은 당혹감으로 멈추어있었다.

"응? 뭐라고?"

"호텔 예약 안했다니까."

진혁의 재차 답변에 하윤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두 사람은 마지막 여행지인 스위스를 향해 달리는 기차에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기 바로 전날, 이런 말을 하면 어쩌란 것인가? 하윤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최근에 진혁은 아침마다 다음에 머물 호텔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하윤이 먼저 물었을 뿐인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어디서 자?"

"글쎄?"

진혁이 하윤의 기분을 몰라준 채 웃는다. 아니, 돈도 넘치는 애가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이냐.

"근처 공원 벤치에서 잘까?"

진혁은 장난을 건네는 듯 웃었다.

"장난이지?"

"글쎄?"

진혁이 또 다시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하윤의 눈이 동그래지며 따라 웃으려 하는데, 입꼬리가 억지로 올려지지는 않는다. 마음같아선 진혁의 멱살를 잡고 짤짤 흔들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캐묻고 싶었다.

"두고 보면 알아."

"우리 진짜 노숙해?"

"크큭.... 두고 보면 안다니깐."

***

그날 저녁, 진혁은 하윤과 택시에서 내렸다. 하윤은 걱정과 근심이 가득 담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진혁을 노려보았다. 그가 하윤, 자신을 험한 밖에서 재우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만, 그런 농담을 한 것 자체만으로 괘씸했다.

"그래서 어디 밖에서 잘 껀데?"

하윤이 묻자, 진혁이 웃기다는 듯 눈물까지 흘리며 빵빵 터진다. 배를 부여잡고 답지 않게 깔깔대는 그의 모습에 하윤은 뺨부터 귀까지 화르르 붉어졌다.

"저기서 잘거야."

조금 진정이 된 진혁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디?"

"저기."

".....저기?"

하윤은 진혁의 손가락 경로를 따라가다가 경악했다. 진혁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호수였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 아니, 얘가 호수 속에서 어쩌라는 건가. 하윤은 멍하게 진혁을 바라보았다. 무지한 눈이 끔벅거린다.

"기다려봐."

"뭘?"

진혁은 하윤을 호수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했다. 도대체 무얼 기다리란 것인지 알수 없었던 하윤은 진혁이 시키는 대로 호수를 감상했다. 잔잔하고 드넓은 호수는 밤하늘 같이 어두운 물결을 흘렸고, 간간히 건물들에서 나오는 빛이 호수에 부딪혀 아른거리는 빛을 내었다.

하윤은 눈을 깜박거렸다. 아까만 해도 호수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저기 멀리서 배가 한척 오고 있었다.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하윤이 급히 진혁을 쳐다보았다.

"원래 스위스에 있던 내 소유 배를 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수리기간이라잖아. 그래서 직접 하나 샀지."

"대체 언제? 아, 아니, 그게 가능해?"

"프랑스에 있었을때, 잠깐 어디 갔다오겠다고 했었잖아. 그때 해결 했었어."

하윤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동시에 머리에 열이 오르도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혁이 그 후로 또 뭐라 말한건 같긴 한데, 심하게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느라 듣지 못했다.

"아......"

배에 불이 켜지자, 하윤이 작은 탄성소리를 내었다. 순간 드넓은 호수를 둘러싼 그 모든 배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보였다.

***

배는 아주 크고 거대하진 않았지만, 넓은 방이 두세개 있고, 그 안에 킹사이즈 침대며 옷장이며 값비싼 것들이 그득그득했다.

"이렇게 돈 많이 써도 돼?"

"생각보다 많이 안 썼어. 거래처 회사라 나름 친하거든."

"아아..."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진혁이 빙긋이 웃으며 하윤의 양 뺨을 잡았다. 눈을 마주하는 모습이 조금 부담스러운 동시에 심장을 달리게 만들었다. 속으론 '심장아 나대지마!' 를 외치면서 하윤은 덤덤한척 말했다.

"싫은 건 아니고, 나쁘지 않, 아니 나름 좋았..."

덤덤한척 말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심장의 떨림이 그대로 전달되어 목소리도 떨려버린 것이다. 진혁은 그걸 바로 알아채고 하윤의 이마에 버드키스하며 원하는 대답을 재촉했다. 이마에 닿는 보드랍고 따뜻한 살결이 하윤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좋았으면서."

"솔직히 좀 감동이긴 했어. 그리고 뭐..... 조, 좋기도 했고."

"얼굴 빨게진 건 기뻐서 그래?"

"엉?"

"아니면 흥분한 건가?"

"아, 아니거든?"

하윤이 진혁의 가슴께를 퍽퍽 밀었다. 단단한 몸은 물러설 생각도 없었고 밀려나지도 않은 채 하윤를 와락 끌어안는다.

"먼저 씻고 나와."

진혁이 낮게 하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

낮은 목소리가 귓속 깊게 파고들며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소름이 돋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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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6 11:26 | 조회 : 3,46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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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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