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하윤은 침대위로 올라와 몸을 웅크렸다. 방금까지 바닥을 디뎠던 발이 지금은 쉴새 없이 떨리고 있다.

'노팅했었어.'

'......미안해.'

진혁의 말이 틈도 주지 않고 머릿속 이곳 저곳을 맴돌았다.

'오메가는 쓰레기야. 다.....'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따라 들려온다. 꼼꼼히 닫은 방 안에는 하윤을 제외한 아무도 없었지만 반복되는 목소리들이 자꾸만 하윤의 귓등을 찔러댄다. 하윤은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땀을 닦는 척하며 베게로 두 귀를 가렸다. 머리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안하는 헛소리들을 모두 날려내고 싶었다. 하윤은 모든 것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떨리는 몸은, 웅크리고 스스로를 보호할 뿐 아무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으......으윽....흑."

눈물이 새어나오며 어두운 머릿속의 그림자를 덮는다. 하윤은 애써 눈을 감았다.

하윤이 깬 것은 일상처럼 들리던 TV 소리가 꺼진 후 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기며 하윤은 목을 축이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아, 하윤아, 깼니?"

이모의 손이 스위치 가까이의 허공에 머무른 것을 보니 거실 불을 끄고 막 자려던 참인 것 같았다.

"잠시 물만 마시러....."

"아..... 그래."

하윤은 이모가 마저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가기를 바랬지만, 이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컵에 물을 따르는 하윤을 지켜보았다. 체할 것 같은 시선에 하윤이 이모를 쳐다보자, 드디어 입을 연다.

"어차피 여름방학도 좀 남았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놀러갈 건데...... 따라오지 않을래?"

하윤은 이모의 말을 속으로 여러 번 곱씹었다. '같이 가자.' 도 '같이 갈거지?' 도 아닌 '따라오지 않을래?' 였다. 가족여행의 '가족'에 하윤의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닿아왔다.

"괜찮아요. 집에 남을게요."

어차피 하윤도 어색한 이모부와 은근히 텃세를 부리는 민채, 그리고 늘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건네는 이모와 즐거운 휴가를 보내리란 상상도 못했다.

"아..... 그래? 그럼 이모가 나흘간 생활비는 카드로 남기고 갈게."

"네."

"저........ 괜찮겠니?"

하윤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모는 급히 시선을 돌리며 거실 불을 끈다. 이모에게 최대한 정중히 인사하고 하윤은 방으로 갔다. 입에 물을 데지 않았지만, 더 이상 목은 마르지 않았다.

하윤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킨다. '이진혁' 이라고 쓰인 전화번호를 찾고, 떨리는 손으로 하나하나 화면 속 키보드를 누른다.

1 오후 9:56 (지울거야}

1 오후 9:57 (임신했다고 해도 나 안 낳을 거야}

5분도 지나지 않아, 톡 앞에 상대방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알려주는 숫자 1이 사라졌다. 하지만 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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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기사는 기름칠을 해 쓸어넘긴 머리를 긁적이며 재차 질문했다.

"저기...... 도련님?"

그제서야 기사 옆에 주저앉아 있던 매서운 눈매의 알파가 고개를 든다. 얼핏 보면 푸른 눈을 가진 듯한 모습, 진혁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퇴근 준비를 하던 저를 불러 세워놓고선 운전을 시켰다. 꼬깃꼬깃하게 건넨 종이에는 생각보다 정갈하게 쓰인 주소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볼일을 끝내고 나온 얼굴은 착잡해 보이기 그지 없었다.

도련님의 성격상, 불편한 기분 그대로 자취집에 보내면 알아서 저녁을 챙겨먹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도 늦었겠다며 거를 것이었다. 결국 기사는 진혁을 근처의 고급 한식점까지 운전해서 밥을 먹였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신경질이 난 것 같은 표정은 풀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진혁이 밥그릇을 거의 다 비웠을 때 쯤, 짧게 울리는 진혁의 휴대폰을 확인한 후에는 더욱 표정이 일그러졌다.

쾅ㅡ

곧이어 식탁을 주먹진 손으로 거세게 내려친 진혁을 겨우 말리고 나서야 기사는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기분이 나아지라고 건넨 담배를 질겅질겅 씹는 진혁을 보며 기사는 여유를 기대한 자신을 탓했다.

"도련님, 라이터 드릴까요?"

불도 안붙인 필터의 끝을 작게 씹기만 한다.

"저...... 라이터가 필요하실 것..."

"됐어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신경을 건들이는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기사는 생각했다. 그때 들려온 건 진혁의 자그마한 중얼거림 이었다.

"제 자신이 이렇게 싫은 건 처음이네요.."

기사는 무언가 위로의 말을 꺼내려 했으나 입만 뻐끔거렸다. 진혁은 모양만 망가진 필터를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을 몇번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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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03 16:45 | 조회 : 5,348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고구마 좋아하시나요?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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