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가슴 부근이 뻥 뚤린 듯 시원했다. 아니, 이미 뚤리기도 했지만.


놈들은, 날 그 꼬맹이으로 완전히 착각했다. 내가, 착각하게 만들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내 힘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래도 죽는 순간까지 모습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진 가능하니,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진 숨이 붙어있어야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빌어먹을... 지금도 아파서 기절할 것 같다.


처형식이라기에 깔끔하게 머리가 바로 날라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반쯤 탈출하다 심장이 꿰뚫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 그럼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커헉... 큽..."



최대한 숨을 깊게 들여마시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한 번 숨이 결리기 시작하자 기침과 함께 피가 튀었다.


덕분에 내 앞에 굳어 있는 녀석은 그대로 내 피를 뒤집어쓴다.



"페... 페일...!"



이 멍청이... 내 이름을 불러버리면 내가 한 행동이 전부 헛수고가 되어 버리잖아. 그래도 놀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외치진 않았다.



"내... 이름, 그거 말고..."



심장이 뚤린 뻥 와중에도 이렇게까지 말하니 녀석도 내 수고를 헛되게 만들어선 안된다 생각했는지 더듬거리며 이름을 바꿔 말했다.



"에, 에이스..."


"그래... "



뭔가 잘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피가 차는 바람에 목소리가 나오는 대신 핏물 섞인 기침을 몇 번 더 했을 뿐이다.


아... 생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여기있었지?


티치가 잡아가기 전 에이스의 몸을 숨기고 내가 나섰다. 근처에 있었기에 에이스의 상처와 내 상처는 비등비등했다.


놈들은 에이스의 능력도 쓰지 않는 나에게 감쪽같이 속았다.


하지만 흰수염의 시체도 지나쳤다. 분명 자신의 아들은 살아있을텐데도 제 아들을 대신해 죽는다는 날 구하기 위해 왔다.


미련하긴. 이러면 희생을 줄이기 위해 내가 죽는 의미가 하나도 없잖아. 살아남을 제 아들이나 제대로 챙기지.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보고도 이곳에 온 아들들은 제대로 도망을 갈까?


아님 그저 무사히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걸까?


에이스... 그러길래 티치를 잡기위한 단독행동은 하지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녀석은 완고해졌다. 어쩌면 리엔의 말이라면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능력을 얻고나서 더욱 완고해졌으니 리엔의 말도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니 저러니 티치는 빠져나가고 희생만 늘은 꼴이다.


그래도 이번 일로 에이스의 완고함이 좀 덜해졌을까?
녀석은 이제 흰수염의 배를 지휘해야 할텐데, 죄책감에 빠져 포기하는 건 아닐까?


이제와서 걱정을 받아야할 사람은 녀석보단 나지만... 그래도 내 노력은 망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제 정체를 드러내는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좀 이상하긴 하다. 그 완고한 놈이 이제와 성격이 바뀌었을까?



"페... 에이스... 에이스...!"



이 녀석의 정신은 또 어떡해야할까.


난 올라가지 않는 손을 억지로 올려 녀석의 머리 위에 턱 얹었다. 쓰다듬는 건 역시 힘들다.



"루피..."


"... 에이스!"


"울지마. 도망... 어서......"


"나, 나 때문에...!"


"아니... 네 잘못, 아냐. 처음부터, 난..."



말이 나오질 않는다. 말해야되는데...


이 녀석이 이 정도면 거의 20년 간 함께였던 리엔은... 이 녀석과 함께한 리엔도 여기 와 있을텐데, 못 볼 꼴을 보여줘버렸다.


리엔에겐 미안한 마음 뿐이다. 20년간 같이 했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한 번도 언급하질 않았다.


가장 행복했던 풍차 마을도 떠오른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장 평화로웠던 동시에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


아니, 어쩌면 평화롭진 않았었나.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는 복잡하고 잔인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틈에 껴서 어울리다보면 행복했다.


자꾸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달콤한 꿈을 꾸는 것처럼, 기분이 붕 뜬다. 고통의 감각이 사라져간다.


나쁘지 않다. 고통을 잊으며 죽는 순간까지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하지만... 내가 숨이 멈춰도 둔갑이 풀리지 말아야할 텐데. 내가 이때까지 받았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에이스...!"



귀도 슬슬 먹먹해진다. 시야는 흐릿해진지 오래. 흐릿해진 시야로 우는 루피를 바라보자, 어렴풋이 어렸을 적 우는 모습과 겹쳐보여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다.


자꾸 몸이 말을 안듣고 붕뜨는 느낌이 든다. 마치 반쯤 잠에 든 느낌. 온 몸의 감각이 둔해지는 감각. 이대로 잠들듯이 의식을 놓으면 편해지겠지.


에이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겨내겠지.


루피, 역시 불안해도 이겨낼거다.


사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얼굴을 마지막까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리엔, 20년간 곁을 지켜준 친구이자 내 죽음을 가장 슬퍼해줄 아이. 그렇게 같이한 녀석인데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서 미안함이 크다.


주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던 루피는 동료들에게 이끌려 사라졌다.


내가 죽은 줄 알았겠지만, 그저 죽은 듯 가만히 있었을 뿐, 아직 의식은 있다. 이제 곧 사라질 의식이지만.


미안, 리엔.

안녕, 리엔.


붙잡고 있던 한 줄기 의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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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9 15:23 | 조회 : 2,29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원피스를 보지 않는 분들도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쓸 생각입니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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