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오늘밤 우등조는 나야나!

" 오라버니. 오늘은 그 날이죠? "

" 아아. 몇 년 만에 직접 판도라를 보는 날이야. 아버님에게 제대로 연락 드렸어? "


뭇 여성들은 홀딱 빠져버릴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남성이 여성에게 말했고, 여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사람이 만일 여성을 본다면 분명 감탄했으리라. 저 아름다운 얼굴에 그 화사한 미소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으실 수 있나요? 하고 말이다.

하지만 쌍둥이 남매인만큼 남성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미 면역이 생긴지 오래였고, 그리고 저 오라비의 성격 상 안 웃는 건 이상했다.


" 물론이죠. 아버님도 상당히 기대하시고 있는 것 같아요. "

" 우리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얼마나 장성했을지? "


남성의 말에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인간 계집 아이 한 명 때문에 위대한 그들이 나선다는 걸 만일 지하의 누군가가 안다면 기함할 일이었지만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 자그마한 계집 아이에게 이 세계의 운명이 걸렸으니까.

뭐 그 전에 그들의 시련부터 통과해야지 제대로 쓸만 해질 테지만 말이다.

그 전에도 그녀는 충분히 절대자인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특별한 존재였다.


" 판도라를. 잘 부탁 드려요. "

" 별 말씀을. 차 잘 마셨다. "


찻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남성의 모습은 사라졌고, 여성은 상당히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 했다.

역시나 아무리 나이가 많이 먹어도 새로운 것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두번째 판도라. 그 아이가 자신들과 동등해질 그 날이 기대된다.


* * * *


" 오늘 3학년의 조 발표 수업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큰 감사말씀 드립니다. "


상당히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시나 진정되지 않았다. 그 때, 내 옆자리에 수연이가 왔고, 나는 수연이에게 물었다.


" 제대로 전해주셨나요? "

" 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에요? "

" 물론이죠. 그리고 아라님도 어엿한 우리 올림 명문 고등학교의 학생이 아닙니까. 아무런 문제 없으실 겁니다. "


수연이에게는 돌려말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걔 사실 엄청 골탕 먹일 계획이야. 였지만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천사 같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선 할 만한 생각이 아니니까.

사실 문제 엄청 많았다. 쿠후후. 일부로 처음 부분에는 실수 없이 완벽하게 했지만 뒷부분이 갈수록 어수룩한 부분도 실수한 부분도 많았다.

아주 높은 확률로 선생님들은 아라의 조가 시간이 없어서 뒷부분은 제대로 수정하지 못 했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이다. 보통은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선생님이 아라가 다른 조 발표를 훔쳐와서 발표하려 했는데 그 조의 조장이 미리 눈치채서 함정을 파놨구나.] 이러겠는가? 그런 선생이 있다면 난 당장 예의 차리지 않고 선생따위 때려 치우고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게 어떻겠느냐 권할 것이다.

선생님들은 절대로 아라네 조는 돈에 기대서 제대로 발표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연이가 우리 조의 발표를 가져다 줄 것만 기다리면서 띵가띵가 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테다.

크흐흐흐흐. 아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갔구나.

5조의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아라의 조가 발표를 할 때가 찾아왔다.


" 안녕하세요. 6조 발표자, 현아라라고 합니다. 저희 조가 발표할 내용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도라에대한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나는 꿈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우리 조의 조원들은 다들 놀란 듯 싶었다.

아라는 혼자서 침착한 나의 반응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바로 진정을 하면서 발표를 침착하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고등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할 만한 실력은 있다. 나 같으면 엄청 당황했을 텐데 침착하게 이어나가다니.

하지만. 이번 일은 아라에게서 따낸 승리였다.


* * * *


조 발표가 끝나고 나면 약 5분 가량의 쉬는 시간 겸 다음 조의 발표 준비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프레젠테이션이 담긴 USB와 발표 내용이 있는 종이를 챙기고선 무대위로 올라갔고, 그 곳엔 발표를 망칠 뿐만 아니라 대대적으로 망신을 당한 패닉 상태의 아라가 서있었다.

아아. 이러고 싶던 건 아닌데, 그래도 나도 상당히 짜증났다. 덕분에 일주일 동안 잔 시간은 고작 8시간이다! 그것도 공부도 하면서 학교의 쉬는 시간에 틈틈히 쪽잠을 자면서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고, 커피를 마시며 쏟아지는 잠을 참았다.

이번 승부에서 이길 만큼 난 노력한 것이다.


" 비아님! "

" 아라님. 어떻게 하시나요. 아주 중요한 수행평가에서 그리 실수하시다니. 이사장님께서도 훌륭한 우리 올림 고등학교의 학생이 그랬다니 믿기 힘드실 거에요. "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중요한 수행평가에서 망하다니 이사장님께 너 완전히 찍혔을 것이다.ㅋ' 이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아라도 무려 2년하고도 몇 개월동안 이 학교에서 지냈으니 그 정도는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불가능하다면 아라는 그냥 몇 년을 날려먹은 것이고.


" 어떻게 이러실 수가... "

" 시간이 많이 부족했나 보군요. 힘내세요. 아라님. "


천사표 웃음을 지으며 나는 아라를 겉으로만 토닥여 줬다. 뭐 이쯤 되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난 너가 더러운 뒷수작을 부린 사실을 알았고, 그것에 대응했다.


" 수연님이 알리신 건가요? "

" 무슨 말씀이시죠? 아라님. 그것보다는 복도는 의외로 소리가 잘 들린답니다. 앞으로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복도에서 다 봤단다. 를 이렇게 말하다니. 나 완전 존경한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완전히 핏기가 마른 얼굴로 아라가 날 바라봤다.

아마도 꿈에서의 나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테다. 세상이 망한 듯한 얼굴. 이 행사는 우리 학교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행사이니 학생들의 부모님도 참가한다.

즉, 이 나라를 움직이게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 인사들이 찾아온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자리에서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를 했으니 아라나 아라의 부모님의 명성이 꽤나 추락했겠지.

나는 살짝 비웃고선 곧바로 발표 준비를 재개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자 나는 발표를 위해 목을 풀었다.


" 안녕하세요. 7조 발표자, 이비아라고 합니다. 저희 조가 발표할 내용은 각국의 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입니다. "


일단 아라의 수작은 잘 넘겼으니 이제 중요한 일은 오로지 단 하나 내가 이 발표를 잘 마치는 것이었다.

조 발표에서 1등으로 뽑히는 조의 조장은 무려 이사장님과 독대를 할 특권이 부여된다. 고아원의 모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는 이 발표에서 우등생으로 뽑혀야만 한다.

첫 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소라 배웠기에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천사표 미소를 지었다.


" 잘 부탁드립니다. "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라도 아직도 잔꾀를 굴려야 했다.


* * * *


" 저 아이는? "

" 고아원 출신인데도 공부를 잘해 성적 톱 클래스인 아이입니다. 극히 드문 아이죠. 그만큼 재능이 있다고 선생님들도 높게 사고요. "


조 발표의 조장은 성적 톱 클래스들만 가능한 일이다. 전에 설명했다 시피 상당히 고학력의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 사이에서 고아원 출신의 특례 입학생들이 살아남을 길은 없었고, 조발표 기간이 되면 특례 입학생들은 응당 각 조의 심부름꾼 비슷한 신분, 즉 시다바리로 자동 분배된다.

하지만 이번 년도의 3학년에는 비아가 있었다. 비아가 몇 안 되는 특례 입학생들을 꾸려 조를 만들었고, 그랬기에 이번 3학년 조 발표는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낮았다.

귀한 집에서 자란 아가씨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마도 훨씬 전부터 특례 입학생들의 시다바리 짓은 꾸준히 있었을 테지만 선생님들은 꾸준히 그걸 무시해 왔다.

솔직히 부모 없는 천애 고아에게 신경쓸 관심을 부자 아가씨들에게 쏟는게 훨신 더 학교 일에 이로운 일이었으니까.


" 이름이? "

" 이비아라고 하더군요. 설마... 아니시죠? 7조가 우등조라던가. "

" 잘 아는 군. 이번 년도의 우등조는 7조이군. "


그 때 비아와 눈이 마주쳤고, 남성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학교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 하던 교장은 순간 몸을 멈췄다. 그렇게나 무뚝뚝하고 학생들에게 관심 하나 없는 저 이사장님이 한낱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 하나로 웃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었다. 알게 된지 무려 20년, 모시게 된지 19년 가까이가 흘렀지만, 단 한 번도 웃은 적 없는 얼음 이사장이라 선생들이 칭할 정도로 무뚝뚝한 이사장이었다.

고작 20년 만에 올림고등학교를 부자들만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명문 고등학교로 만든 세기의 수확가. 교장은 그렇게 이사장을 칭했다.


" 학부모들이 반발할 겁니다. "

" 상관 없어. "


저 아이와의 독대가 기대된다는 듯이 이사장이 웃었고, 그 순간 교장은 뭔가 잘못 됐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학교가 크게 술렁일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었다.


* * * *


" 이번 조 발표의 우등조는... "


교장 선생님께선 한참을 뜸을 들이셨다.

제발 7조라고 말해주세요! 네? 저 진짜 죽을둥 살둥 고생하면서 준비했단 말이에요!

발표 준비를 2개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제발!!!


" 7조입니다! "


나는 속으로는 쾌제를 부르며 감동한 듯 거짓 울음을 연기했다.

겉은 꽃같이 아름답지만, 속은 왠만한 고등학교는 못지 않게 험학한 고등학교에서 괜히 잘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 7조의 조장, 이비아는 곧바로 이사장실로 향하도록 하세요. "

" 비아님. 잘 부탁드려요. "


난 지금 특례 입학생 대표로 가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졸업하지만,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입학생들은 다르다.

고아원에서 특례 입학한 학생들의 권리를 조금만 인상시켜 달라는 건데 혹시 혼나지는 않겠지?

나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교장선생님을 따라갔고, 다다른 곳은 거대한 문이 있는 어느 방 앞이었다.

1년에 고작 한 번 오시는 이사장님이지만 그런 분을 위하여 우리 올림 고등학교는 한 층 자체를 비웠다.

빈 말이라도 이사장님은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20년에 갑자기 재단을 세운 분이셨고, 모두들 그 재단이 망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모두가 비웃은 재단이 엄청난 수확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재단은 더이상 무시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권력을 지니게 됐다. 그런 재단이 설립한 올림 고등학교에 수많은 부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하나의 작은 사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 사회의 신을 나는 지금 만나려는 것이다. 왠만한 일로는 두근거리지 않는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만큼 긴장된다는 것이다.


" 이비아라고 합니다. 이사장님. "

" 오랜만이야. 비아. "


네? 이게 뭔 상황이죠?

긴장따윈 씹어먹을 듯한 어이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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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16 21:36 | 조회 : 1,342 목록
작가의 말
유리아에덴

두번째 판도라는 화, 금에 연재되며 그 전에 올라오는 것들은 유료분입니다! 참고로 연재날이 되면 무료로 풀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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