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의 거리 - 1

*사제X악마 / 쿠도 신이치X쿠로바 카이토

*유혈이 존재하므로,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며 봐주시길 바랍니다.

*해당 종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상태로 작성한 글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따스한 햇살이 성당의 바닥을 비춘다. 그 덕분에 미처 청소를 하지 못한 바닥의 먼지가 생생하게 보였지만,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가 찌푸려지던 표정을 펴게 만들었다. 허리를 숙여 한참이나 바닥을 쓸던 중, 문득 창밖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에 고개를 들자 푸른 하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근래 들어서 내내 비가 온 탓에 먹구름이 자욱하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광경을 보여주자 순간적으로 웃음을 흘려버렸다. 이렇게나 빠르게 모습을 바꿔버리다니, 이것은 마치─.

"하루 만에 이렇게나 맑아지다니, 역시 신기하다. 그렇지?"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면 분명···. 짧은 생각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쓸던 빗자루를 벽면에 세워두었다. 등을 돌리니 보이는 얼굴은 늘 그랬듯이 능청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항상 곁에 있었던 것처럼, 처음 눈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읊어대던 녀석. 마치 친구처럼 대해주기를 바라는 듯이 구는 놈이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녀석은 악마였으니까. 사제의 신분으로서는 거리를 두다 못해, 해치워야 할 존재였다.

"왜 또 눈앞에 나타난 거지? 더는 안 봐준다고 했을 텐데."

"아, 매정하기도 해라. 나는 늘 너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모진 말로 맞이해주면 나 섭섭해~?"

섭섭하기는. 어투와 능글맞게 실실대는 표정에서부터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있는데. 빤히 놈을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옮겨 미처 쓸지 못한 바닥을 훑어본다. 아직 조금 더 쓸어야 마무리가 될 텐데. 저녁에 있을 미사를 위해서는 얼른 청소를 마무리하고 예배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망할 저 녀석이 또 방해를···.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자, 제 얼굴을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다. 자신을 따라서 바닥을 응시하다, 한 발을 내밀어 거리를 좁히는 행동이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매번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모습을 드러내고는 장난스러운 말과 행동을 반복했으니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는 건지, 반쯤 포기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악마치고는 마을 사람들과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 신부님을 포함한 그 외의 사람들을 해친다거나 괴롭히지는 않으니 가만히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제와 악마는 각각 다른 존재이고, 신을 따르느냐 배신했냐의 차이를 두고 있는 상반되는 존재였으니까. 지금도 신에게는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라는 걸 저놈은 알고 있을까. 물론 악마 녀석이니까 알지는 못하겠지만. 아니, 애초에 알았으면 매번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겠냐고. 한참 생각에 빠진 사이,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로 바짝 다가온 녀석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소에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은데, 도와줄까?"

"뭐? 네가 왜?"

순순히 도와주겠다니. 무슨 속셈으로? 들려오는 말에 의문을 가지며 녀석을 쳐다봤다. 저도 모르게 삐죽이는 표정이 드러나기라도 한 듯, 피~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저를 쳐다보는 놈이다.

"말동무를 바라는 입장으로서는 이 정도쯤이야, 어렵지는 않지."

"말동무는 무슨···. 애초에 너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너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현실을 파악하라는 듯이 말을 하자 늘상 생글거리던 놈의 표정이 일순간 구겨진다. 하, 짧은 숨을 내쉬고는 가까웠던 거리를 물리며 벽에 등을 기대는 모습은 왠지 실망스럽다는 감정을 담은 느낌이다. 가볍게 펄럭이던 날개가 벽에 눌리며 녀석의 심정을 대신하는 듯했으나, 이따금씩 살랑대는 꼬리를 봐서는 영 나쁜 감정까지는 치우치지 않았나 보다.

"왜, 사는 세계가 다르면 얼굴조차 못 봐야 하는 거야?"

"서로 얼굴을 마주해봐야 좋은 게 없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왜? 그런 건 누가 정했는데?"

"성경 책을 봐도 악마에 대한 구절은 상세하게 적혀있어. 늘 너희를 경계하라 이르지. 무엇보다 악마에 대한 일화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것들이고. 이것만 봐도 조심하는 게 좋다는 걸 알 수 있잖아?"

구깃, 말을 이어갈수록 녀석의 흰 미간이 찌푸려진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 어느 순간, 기척도 없이─ 아까의 거리를 이루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과는 반대되는, 핏빛의 붉은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오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제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악마가 사람들을 해쳤다면 그건 그놈들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난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어.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라고. 기록? 그래, 너희 인간들은 늘 글에 드러난 일화들만 믿어. 억울함에 호소해 봐야 들어주지도 않지. 보이는 그대로, 믿고 싶은 대로만 믿잖아? 안 그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너희 인간은 선한 줄 알아? 어림도 없지. 너희가 믿는 신이 정말 선하다고 생각해?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한 부분을 믿고 나머지를 판단하지 말라고. 일반화 따위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침착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열되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맞닿은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감정. 이건, 억울함과 분노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 녀석이? 언제나, 어떤 말을 하든 '억측이야, 그런 적 없어. 사실과 달라. 마음대로 생각해.' 같은 말만 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쉽게 흥분한 모습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제 턱을 잡은 손에 힘이 실려온다. 미간을 찌푸리며 놈을 응시하고는, 손목을 붙들었다.

"잠시만, 너 왜 이렇게 흥분해서는─."

제 한 마디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짧은 탄식을 이으며 손을 놓는 녀석이다. 힘이 실린 탓에 붉어진 피부를 응시하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미워했다고 해도 한두 번 보고 지낸 게 아니었으니까.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 미안해."

시무룩해진 목소리에 무슨 일이냐 물으려던 순간, 문밖에서부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 목소리는 신부님인가. 익숙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문으로 향했던 시선이, 일순간 녀석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져서는 밝은 빛만이 바닥을 비출 뿐이다. 사라졌나···. 아까의 반응에 대해서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신부님께서 제게 허락을 받을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째 매번 장난치십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사제님이 아닌가요.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연 5년이 넘었기도 하고요. 정이 안 드는 게 이상하죠."

"그거 저 보실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이라는 거 아시죠?"

"모를 리 있겠습니까."

12살의 나이. 그때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강도떼의 습격으로 마을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고, 늘 친절하시던 부모님과 이웃들이 참변을 당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목숨. 결국 혼자 도망치다 다다른 곳이 이곳이었다. 희생으로 연명된 목숨이 역겹게 느껴져 식사를 끊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날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신 분도 신부님이셨으니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언제나처럼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몇 마디를 던지시던 신부님의 표정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순간 사뭇 진지해졌음을 느꼈다.

"저번에도 얼핏 느꼈던 것이지만, 혹시 악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그런 존재들을 눈으로 구별하고 알아챌 만한 실력은 아닌걸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악마를 만난다면 이걸 사용하도록 해요. 악한 영에게 휘둘리는 건 영혼을 물들이는 행위거든요. 사제든 일반인이든, 사람이라면 침식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 애써 웃음을 흘리며 태연히 대답을 잇는다. 그러자 잘못 보았나,라며 중얼거리시던 신부님이 주머니에서부터 병을 꺼내어 내밀었다. 투명하면서도 푸른빛이 담겨 일렁이는 물, 그건 바로 성수였다. 신부님이 떠난 후, 저녁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방문을 열자 어서 오라는 듯 맞이해주는 액자에는 어릴 적의 자신과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찍지도, 가져오지도 못했던 탓에 신부님이 별도로 부탁해 그려주신 그림이었지만 따뜻하기는 매한가지다. 그 당시,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결국 또 애틋해진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액자를 어루만졌다. 그래도 기뻐하시겠지.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기를 바라던 삶에서,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적어도 살려주신 그 목숨을 연명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볼 수 있었던 바닥. 분명히 절반은 남은 청소였는데 깨끗했었지. 사라지기 전, 그 녀석이 나머지 청소를 마무리해줬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너무 냉랭하게 몰아붙였나. 확실히 그동안 들어왔던 악마들과는 다른 녀석이었는데. 일반화하지 말라던 말,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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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4-22 03:58 | 조회 : 874 목록
작가의 말
백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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