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를 두번 죽이는 일이에요!

"으으윽."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그리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 쳐가며 제 몸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을 누가 알고 싶겠는가?

진희는 번쩍 눈이 뜨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찌나 크던지 가만히 있던 사람이 보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눈알이 똘망똘망했다.

'어떻게 된거지?'

진희는 황급히 몸을 추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바람에 허리에서는 뚜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예고없는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야야."

흡사 마리오네트처럼 그녀는 온몸에 있는 관절이란 관절이 뻑적지근 하고 이질적인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흙길에 누워있었고 어딘지는 몰라도 그녀가 발라덩 누워있는 흙길 옆에 시골스러운 분위기의 숲이 위치해 있었다. 그 두가지 자연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허어?!"

그녀는 그제서야 조각난 기억의 퍼즐을 끼워맞추며 모든 상황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내 1점!! 내 금메달!!!"

진희는 벌떡 일어난 뒤 세상 제일 억울한 표정으로 절규했다. 그리고는 불현듯 다시 바지주머니를 바라보고 미친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그 부적.,.!!!"

그녀가 곱게 접어놓은 부적을 거칠게 잡아뺀 뒤 우악스럽게 펼쳤다. 공포심이 어우러진 황당함에 부적을 든 그녀의 두손은 파들파들 떨렸다.

"분명 행운의 부적이라는데?!"

불과 며칠 전.

인생 마지막 시합을 위해 온갖 부적에 관한 자료를 닥닥 긁어놓은 뒤 빡빡한 훈련일정까지 쪼개가며 정성스레 새겨놓은 행운의 부적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붉은색으로 그려놓은 무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아아!!!!"

나름 초자연적인 현상은 일반인보다 많이 겪어봤으나 이렇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적은 처음인 진희는 바퀴벌레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황급히 부적을 꾸깃꾸깃 다시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놓고 시선를 숲 너머로 돌려보았다.

"그나저나, 여긴 병원도 아니고 어디지?"

상식적으로 감전사 당한 사람들은 구급차에 실려가지, 온전히 옷을 그대로 입을 채로 길가에 팽개치진 않는다.

그녀의 사고 당시에 입었던 새카맣게 타버린 경기복은 그대로였지만 낯선 풍경과 말짱해진 몸은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몸보신이나 하라고 시골에 내려다 준건 아닐테고..."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진희는 최대한 이 상황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이 훍길에 있는 생명체는 오직 자신 뿐, 바람이 스산하게 잎사귀를 부딪치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코치님..? 엄마..?"

진희는 순간 겁이 덜컥 나버렸다.

'정말 여기가 도쿄 맞아?'

점점 하늘을 높이 비추던 노을은 꼴까닥 떨어지면서 어두워지고 있었고 여기서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답없는 상황이 풀리진 않을 것이다.

진희는 흙길에서 일어나서 먼지를 툭툭 털었다. 일단 뭐라도 해야 갈피가 잡힐 것 같아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단 이런 길이 있다는 건 사람이 지나가는 길이나까 있는겠지.'

마침 해가 지고 있어서 방향을 잡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북쪽보다는 남쪽에 사람이 모여살 것 같은 느낌에 남쪽과 가까운 길로 터벅터벅 걸었다.

"하아...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일이 이렇게 된거지."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관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흙길을 걸은지 어언 30분째.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가 도쿄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하.....이런 쟛같은 상황은 또 처음이네."

진희는 걷고 또 걸었다. 방금 감정사고 당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계속, 미친듯이 걸었다.

해는 어느덧 완전히 서쪽으로 꼴까닥 져버리고 가로등 하나 없는 흙길은 완전히 칠흙같이 어두워졌다.

'어...어떡하지?'

밤에 혼자 자는 것조차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자는 진희는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게 되자 패닉에 빠졌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언제고 계속 걷기만 할 수 없어.'

진희는 구조요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호흡을 깊숙히 폐부까지 끌어올린 뒤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 콘서트장이라고 생각하며 큰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요!!!!누구 있어요?!!!"

있어요 - 어요 - 요- 오-

애타게 원하던 대답은 들이지 않았고 안타까운 메아리만 허공에서 들려왔다.

진희는 발을 동동 굴리며 다시 몇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숲에서 인기척이 부스럭-하고 들렸다.

진희는 그런 인기척이 반가워 숲 쪽으로 몸을 틀었다.

"-받으면 되는거지?"

"아아! 5:5! 반으로 나눠야지."

사내로 추정되는 두 남자가 숲에서 대화를 나누며 진희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대화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킬킬. 그냥 주기엔 아깝고 한바탕하고 팔아버리지."

"요새 계집 볼 일이 없었는데 잘됐구먼."

진희는 아무 죄책감 없이 나누는 사내들의 대화를 듣고 심장이 가슴으로 쿵 떨어졌다.

'저...저건 분명 인신매매...!'

그녀는 아직 옆구리에 칼이 붙어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쓰윽 뽑으려고 라는데,

'아차! 이거 진검이 아니잖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칼은 바로 시합용 특수제작된 칼.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그저 돈지랄용 전기막대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뿐만 아니라 검신 자체도 바늘처럼 얇고 유연해서 몽둥이처럼 휘두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막상 티비에서나 보던 범죄현장을 자신이 직접 겪게 되니 오금이 저리고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일단 튀자!'

일단 그녀는 조상님들도 인정한 유서깊은 병법인 36계 줄행랑을 시도했다.

'어차피 가봐야 흙길밖에 없을 것 같지만 언젠가 가다보면 승부가 나겠지.'

"어어?! 저년 도망치는데?"

"빨리 잡아!"

남정네들이 진희가 도망치는 장면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진희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렸지만 거리의 격차는 점점 좁혀져 왔다.

'일단 숲으로!'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보다 나무가 있어 몸을 숨기기 좋은 숲으로 몸을 꺾었다.

타탓! 타닥!

진희는 자신의 꼬일대로 꼬인 운명을 탄식하며 숲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앞은 막다른 절벽이었다.

그녀가 허망하게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순간 귀 바로 뒤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잡았다, 요년."

"헉!"

"낄낄. 니년이 아무리 빨라봤자 계집이지."

사내가 진희를 토쏠리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어...어떡하지?'

죽느냐, 강간을 당하느냐.

그녀는 두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찰싹!

"이...이 계집이!"

나무의 그림자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내의 볼따구는 팅팅 부어올랐다는 것을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내가 당황을 있는 사이.

휘이이잉!

진희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절벽에서 가냘픈 몸을 던졌다. 달빛이 비추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에서 한 떨기의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으나 눈물이 절로 글썽일 정도로 애처로웠다.

진희는 허공에서 찬바람을 맞으면서 울먹였다.

'나는 그저 금메달을 따고 싶었을 뿐인데......'

진희는 바닥에 떨어지기 전 눈을 감아버렸다.

'날 두 번 죽이는 일이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그치고 바로 지축을 흔드는 진동음이 들렸다.

쿠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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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29 17:13 | 조회 : 533 목록
작가의 말
nic99695759

시작하자마자 두번 죽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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