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995년 06월 11일(12) 책에서나 봤던 일



소년은 책에서나 봤던 그들의 일터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의 내용을 떠올리자 소년은 여러 가지 일들이 이해되었다. 남자의 손에서 난 날것의 냄새라던가 남자의 존재를 기피하는 듯한 마을 주민들의 행색, 그리고 작업장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 말이다. 시체 처리장이는 평민이었지만 노예처럼 여겨졌다. 시체를 다루는 직업은 피 냄새 즉,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다고 해서 결코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고 그들이 바깥을 나설 경우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둘러야만 했다. 사람들은 피 냄새가 진동하는 그들에게 다가가길 꺼려했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길을 거닐 때는 그늘진 곳으로 다녔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골목길에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시장을 지나야 할 때면 한 여름이라도 겉옷을 두껍게 껴입었다. 그런 풍습 때문인지, 시체 처리장이들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 수 없었다. 마을 외곽에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갖은 천대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시체 처리장이를 계속 하는 이유는 고액의 보수 때문이었다. 그들은 헐값에 산 시체의 일부를 부적으로 만들어 파는 일을 주업으로 했는데 시체 한 구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장인의 한 달 수입을 훌쩍 뛰어넘었다.


소년은 이곳에서 일하면 어머니의 약값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있었다. 소년은 남자에게 무얼 하면 되냐고 물었다. 남자는 우선 시체들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다 꺼내라고 말했다. 망자의 내장은 마수를 부른다고 하여, 시체 처리장이들이 시체를 사온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체의 내장을 빼는 것이었다. 그렇게 빼낸 내장은 깊은 산속에 묻거나 살코기와 함께 가축의 먹이로 주었다. 소년은 조리대 위에 누인 시체 앞에 섰다. 온몸에 털이 제거된 시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을 바른 듯 새하얬다. 식칼을 시체의 복부에 갖다 대고 싶었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려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소년은 답답함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그것을 착각했는지 소년을 등진 채로 작업을 하는 남자는 시체에 방부처리가 돼 있어 피가 흐를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빼낸 내장은 양동이에 담아두라고 덧붙였다.


소년은 크게 심호흡한 뒤 눈을 질끈 감고 시체의 배를 단숨에 갈랐다. 슬쩍 눈을 뜬 소년은 그 즉시 옆에다 먹은 것을 다 쏟아냈다. 며칠 간 식사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보다는 위액이 더 많았다. 조리대를 잡고 간신히 토악질을 멈춘 소년은 도저히 시체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은 미쳐 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소년은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하기 위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소년이 구토하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남자는 전혀 신경 쓰는 모습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소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는 따뜻한 집도 아니거니와 가족의 품은 더더욱 아니다. 집은 불타 없어졌고, 남은 가족이라고는 어머니뿐이다. 홀로 가족을 지켰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못 이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밤마다 침대 속을 파고들어 책을 읽어주던 누나는 괴물들에게 사로잡힌 끝에 쓰레기와 함께 길바닥에 버려졌다. 이제 병든 어머니를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가족과 같은 따스함을 바라서는 안 된다. 이곳은 집의 바깥인 것이다. 소년은 하나뿐인 가족을 위해 냉철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은 어른만큼이나 사려 깊었고 어떤 일에 대해 뭐가 필요하고 뭐가 필요 없는지를 분간해 낼 줄 알았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감정들을 버려야 한다. 불안, 공포, 주저, 안식에 대한 미련도 모두……. 그리고 가져야 할 것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혈한의 마음이다.


소년은 다시금 시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식칼이 지난 살가죽의 사이로 창자가 내비쳤다. 소년은 자신이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얼른 그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빠끔 열린 그 속의 감촉은 마치 구렁이의 소굴처럼 서늘하고 축축했다. 손을 빼내면서 창자를 살가죽 바깥으로 드러내었다. 울룩불룩한 주름이 난 창자는 하나의 생명체인양 손 안에서 자꾸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소년의 머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 소년은 오히려 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항문과 연결된 부분을 잘라내어 큰창자와 함께 작은창자를 빼낸 뒤 식칼로 목을 잘라 식도를 끊어내고 위와 함께 창자를 양동이에 넣었다. 그리고 갈비뼈 안쪽까지 손을 집어넣어 간과 허파를 차례대로 꺼내었다. 마지막으로 몰캉몰캉한 심장을 양동이에 넣은 뒤에야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 참은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이 흘렀지만 소매로 슥 닦고는 몸을 일으켜 다음 시체로 향했다.


인체의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차갑게 식은 인간의 구조물을 만지면서 소년이 미치지 않았던 이유는 침대에 누워서 소년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어머니의 존재는 소년의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그러다가도 결국 넘쳐흐르는 감정의 파도는 인내심의 한계에 부닥쳤고, 어머니의 존재마저도 소용없게 되었을 때 소년은 사고하는 것을 그만 뒀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추상적 관념의 움직임을 중지시키고 먹이를 나르는 곤충처럼 무의식 안에서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작업장에 있는 모든 시체의 내장을 양동이에 담았을 때 소년의 두 팔과 옷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작업을 마친 소년에게 남자는 금화 2개를 건넸다. 그것을 받으면서도 소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네가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내일은 손가락의 끝마디를 잘라내는 작업을 할 거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을 몸에 지니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들이 수두룩하다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런 일을 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하고 웃었다. 그 뒤로 남자가 뭔가 더 말한 것 같지만 소년은 기억하지 못했다. 작업장을 나선 소년은 그곳에서 벗어난 것보다도 병든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 누구도 아닌 소년 자신의 힘으로 말이다. 이것으로서 소년이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작업장을 향할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지금은 창백한 달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적어도 15시간, 길면 17시간 동안 작업장에서 시체의 내장을 꺼냈다는 얘기였다. 순간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 지나가 소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년은 애써 좋은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어머니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 번은 경험한 이상 아무 것도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경험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올까? 남자의 일을 계속 돕다보면 온몸에 피 냄새가 덧씌워질 것이고, 그러면 소년도 남자와 같이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둘러야 할 것이다. 과연 자신이 사람들의 눈초리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 소년은 언젠가 자신이 감당치 못할 부담이 더는 재기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을 짓누르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소년은 다시금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생각하는 건 한참이나 나중의 일이었고, 지금 굳이 들춰내어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생산성이 없는 어디까지나 후퇴적인 사고방식.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이것뿐이다.


손에 든 금화 2개의 감촉을 확인하는 순간 소년은 문득 아버지에게 강한 경외심을 느꼈다. 어딜 가나 존경받는 위인으로 칭송되었을 때와는 다른 방면에서 아버지가 굉장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도서관 사서였던 사람이 3년 만에 천재 학자로 급부상 할 수 있었는가. 아버지의 길을 자세히 꿰고 있는 소년으로서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나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불우한 가정환경, 새로운 가정을 꾸렸어도 지속되는 가난, 줄타기를 하듯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생활…….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쌓여 아버지를 압박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고대서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어려운 결심을 했을 것이다. 소년도 학자를 꿈꿔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학자로서 남의 학설을 도용하는 것은 학계에선 가장 비겁한 행위로 치부되면서 또한 자신이 이를 데 없이 졸렬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거짓된 부와 명성을 얻게 된 뒤로, 가끔 쓸쓸한 빛을 내비치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족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을 자책하면서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위인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이제 아버지를 이해한다. 홀로 천대받는 직종에 종사하며 힘들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고역이며 부담이며 외로움인가를. 소년은 뇌리에 남은 아버지의 모습이 고개를 떨구고 있어, 그것이 더없이 안타깝고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다시금 손에 든 금화를 꼭 쥐며 소년은 잰걸음으로 어머니가 있는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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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2 20:49 | 조회 : 1,36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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