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처음 봤을 때, 너는 웃고 있었다. 찬란히 부서지는 햇빛아래 바람이 머릿결을 쓸어주는 너의 그 웃음이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걸 한번 더 보고싶었다. 내 눈과 마주치자마자 넌 도망쳤다. 아마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남자의 웃는 모습이 한번 더 보고 싶다니.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여자'와 사귀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여자 - 이젠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 와 사귀었다. 그래도 너를 보고싶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왜소한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는 가정형편조차 불우했다. 분명 애정결핍증 같은게 있겠지. 그래서인지 너를 유혹하는건 쉬웠다. 말 몇마디에 금방 속내를 비추고 내게 기대고 내가 하자는 것에 불응하지도 않았다.

약을 먹였다. 웃는 모습에 보였다. 입을 맞추어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매달려온다. 느껴지는 묘한 우월감에 나는 잔뜩 취해있었다. 하지만 너의 시선의 끝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여자도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 여자한테 너와 나의 관계를 보여주기로.

간단하다. 내가 약에취해, 네가 약에 취해 우리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정열적인 입맞춤을 하고 있을 때, 그 여자를 부르면 된다. 그리고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 여자는 너를 데리고 달아났다. 몇날며칠을 함께 지냈을 것이다. 이렇게 초조한적이 없었다. 만약에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보지못한다면? 그런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게 너를 찾았다. 그 여자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를 무서워하는게 보여서 더 싫었던 것 같았다.

그게 미웠다. 그 이후에 여자는 다른곳으로 가버렸고, 너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지만, 예전같지는 않았다. 나는 네가 미웠으니까, 그래서 너를 괴롭혔다. 하지만 괴로워 하는 네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지더라. 너는 날 잘 따랐고, 그게 좋아서, 너를 학교에서 퇴학시켜버리고 집에 가두어버렸지.

사실 처음에 널 범한 날에, 나는 믿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예전처럼, 니가 나한테서 달아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란걸. 너에게 약을 먹이면, 넌 그 때처럼 내게 매달려오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너는 날 무서워 하고, 내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싫어'


그 단어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다시는 듣고싶지 않았다. 니가 날 거부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머리를 나의 것으로 물들이고, 내 몸에 새긴 문신을 똑같이 새겨 니가 나의 것이라는걸 상기시키고 싶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너는 네 어머니에게로 가버렸다. 이상하게 그 여자와 달아날 때 만큼은 초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를 한명 붙여두고 행적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내게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할 수 없는 니가 돌아갈 곳은 나뿐이었으니까. 그 뒤로 일주일을 널 범했다. 아니, 사실은 너한테 상기시키고 세뇌시키고 싶었던거지. 넌 나뿐이니까, 그러니까 나밖에 없으니까, 어디 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그 뒤로 너는 몇번이나 다른 여자에게로 갔다. 처음에는 널 불쌍히 여기는 여자들이 너와 함께 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넌 다시 내게 돌아왔지. 네가 돌아왔을 때, 분명 네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걸 아는데 조금씩 초조했다. 그러다가 그 초조함이 가실 때 쯤이면 네가 미웠다. 그래서 널 괴롭혔지.

넌 어느순간부터 나를 거부하지 않더라. 네가 도망쳤던 여자들을 죽여 일부를 뜯어가 보여주고, 네게 말걸었던 남자들을 총살해 버리니 너는 모든걸 포기한 눈빛이더라.

그래, 그렇게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바보같이 또 다른 남자를 끌어들였다.

리타드 준. 저놈은 함부로 죽이지 못해 살려두었다. 일단 널 치료해 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면 될까. 그래도 네가 그놈을 만나지 못한다는건 내가 잘 안다. 너는 그놈이 죽는게 싫으니까 만나지 않을거야 - 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너는 내게서 도망치고, 그놈을 찾아가 그가 살아있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오히려 그놈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넌 그놈의 집으로 가 며칠을 보냈었지? 난 그 동안 그놈의 집 앞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간간히 네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내 앞에서는 두려움에 덜덜 떨기만 하던 니가 그렇게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그놈의 두개골에 총을 쏴버리고 널 집에 가둬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네가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냥 그래서.

널 집에 대려오고는 초조함이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놈에게 가버리면 어쩌지 - 라는 불안감. 그놈이 준 옷을 입고있는 네가 마음에 안들었고, 찢어진 옷가지를 어떻게든 모아버려고 하는 네가 싫었다.

네게 넌 내거라고 상기시키고, 넌 내거여야만 하고, 어차피 나 말고는 갈데가 없다고, 그렇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니가 '싫다' 라고 말한 것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싶지 않았다. 둘이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었다. 그놈이 없는 곳으로 떠나면 이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질 것 같아서.

그러다가 그놈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장 와보라는 것이었다. 널 놓고 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널 붙잡아 두어야 했다. 하지만 넌 처음으로 내게 '부탁' 이란걸 해 보았다. 너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나는 널 이길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놈이 널 데려가버렸다는 것.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널 찾기 시작했다. 쥐새끼마냥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네 놈을 잡는 건 시간문제다. 그 놈이 사람을 심어두어봤자, 집안에서 제대로 된 사람을 줄 리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갈 무렵, 난 너와 그놈을 찾았다.

네가 스스로 내게 오기를 기다렸지만, 넌 또다시 날 거부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널 안고있는 그놈과 두려움에 날 바라보며 그놈에게 매달린 너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다음부터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너는 내게 와서 빌었고, 그놈은 내게 소리쳤고, 화가 난 나는 그놈에게 총을 쐈다.

이상했다. 분명 그놈에게 총을 쐈는데 왜 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을까. 머리가 새하얘지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 그놈에게 소리쳤다. 니놈 때문에 저렇게 되었다고. 근데 그놈은 아니더라.

내 탓이라고 화를 낼만도 한데 그놈은 너만이 눈에 보이는 것 처럼 행동하더라.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네가 쓰러졌는데, 내가 쏜 총을 맞고 쓰러졌는데도 나는 널 걱정하기 보다는..

넌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고, 나는 그 동안 네 얼굴을 볼 생각도 못했다. 네가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고, 모든 결과는 같았다.

내가 너를 떠나야만이 너는 웃을 수 있었다.

사실 난 네가 나를 싫어한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에게 거부당하는건 싫었다. 아니, 늘 거부당하고 내게 돌아오는 널 볼때마다 나는 무서워했다. 네가 날 거부하면 어떡하지.

네가 깨어났을 때, 넌 날 만나길 거부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근데 왜 병신같이 눈물이 나오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렇지만 무서워서 꺼내지 못한 말이 있었다. 너에게 거부당하는게 두려워서, 혼자 남겨진 내 모습이 보기가 싫어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있었다.

이걸,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으면, 그랬다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나는 네가 없는 이곳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내본다.


"사랑해."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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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26 23:27 | 조회 : 2,278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이제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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