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얼마나 푹 잔것인지 잠에서 깨니 해가 중천에 있었다. 옆구리가 허전해 옆으로 돌아 누웠더니 리타드가 보이지 않았다.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니 리타드가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갈까, 하다가 리타드가 전화를 끊고 내게 다가오길래 가만히 있었다.


"유진, 일어났어요?"
"응.. 무슨 일.. 있어?"


리타드가 내게 다가오더니 두꺼운 겉옷을 입혀주고는 큰 가방을 꺼내 옷들을 집어넣었다.


"리타드, 무슨 일인데-"
"길츠만이.. 그놈이 우릴 찾아요."
"... 어..?"
".... 길가다가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으면.. 총으로 쏜다고 해요. 여기 근처까지 온 것같아요."
"어, 어떻게? 죽은, 죽은 사람은? 아, 아, 아무도 안, 아, 안죽.."


또, 사람이 죽는다. 나 때문에, 내가, 내가 알렉스에게서 도망쳐셔..


"유진!!"
"...!"
"전에도 말했죠? 당신 때문이 아니야! 전부 길츠만이 나쁜거라고요."
"......"
"일단 얼른 도망쳐요. 이거, 신발 얼른 신고.."


나는 리타드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을 나왔다. 추운 한기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리타드는 저번에 타고 온 차가 아닌 다른 차에 탔다.


"차가.."
"똑같은 차면은 들킬지도 모르니까. 유진, 걱정말아요."


리타드는 차 뒷쪽에서 총을 하나 꺼내들어 한 손에 쥐고는 운전을 했다. 몇번이나 속도위반과 신호위반으로 경찰들이 쫓아왔지만, 리타드는 전부 따돌리고 악셀을 더 세게 밟았다. 나는 리타드가 챙긴 가방을 꼭 끌어앉고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한참을 달렸다. 도심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달리기도 했다. 리타드는 운전을 하면서 간간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알렉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알렉스가 우릴 쫓아오는 것 같았다.


<도망치기만 해봐. 진짜 가만안둬.>


"허억.."
"? 유진, 왜그래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어떻게.. 어떻게 곁에 있지도 않은데, 이렇게 내 숨통을 죄는지. 나는 가방에 얼굴을 파묻었다.


".. 미안해요, 유진. 지금 달래주고 싶은데.."
"... 네가 뭐가 미안해.."


나는 힘없이 말했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까지 해 주는 리타드를 볼 낯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차는 한참을 달린 것 같았다. 어느 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한번 내린 비는 멈출 줄을 모르고 오히려 더 거세게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어놓은 것 처럼, 비는 도저히 차가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내렸다.

결국 리타드는 운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의 여관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손님을 받아주었다. 리타드는 나를 방에 데려다놓고 먼저 씻으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따뜻한 물이 나와 나는 몸을 빨리 씻고 나갔다.

마침 리타드가 먹을 것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오늘 한참 도망친다고 음식하나 먹지 못해 나랑 리타드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 민망해 웃었다. 그 덕에 긴장이 조금 풀린 듯 했다. 음식을 전부 해치운 후 우리는 같이 침대에 앉았다. 리타드는 날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이 비에는 그놈도 오기 힘들거야. 그러니까 날이 개면 얼른 떠나면 되요."
"응.. 그래도 도망치는 와중이 이렇게 편하게 지낼 줄은 몰랐어."
"음, 그러게요. 일단 유진, 얼른 자요."
"... 너는.."
"전 잠이 별로 없어서, 그리고 비가 조금 그치면 얼른 떠나야죠. 둘다 자다가 길츠만이 들이닥치면 어떡해."


내가 리타드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하자 리타드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도 피식 웃고는 리타드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유진.."
"고마워."


이번에는 리타드가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애처롭게 이어지던 입맞춤이 끊어졌다. 나는 조심스레 리타드를 바라보았다. 리타드는 날 바라보다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얼른 자요."
".. 응. 이렇게 자야지."


나는 다시 돌아서 리타드의 품에 안겼다. 리타드는 내 머리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하루종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긴장이 풀린 지금 잠이 솔솔 몰려왔다.

한참을 자던 중, 갑자기 눈이 떠졌다.


"왜요, 벌써 잠이 깬거야?"
"응.. 목말라.."
"아, 그럼 여기 있어요. 제가 내려가서 달라고.."


리타드가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문고리를 몇번이나 돌렸다.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리타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몇번 쿵쿵 부딪혔다.


"젠장..!"
"리, 리, 리타드..."
"유진, 진정, 진정해요."
"응... 흑.. 우리, 우리 잡힌.. 거야?"
"아, 아니에요. 울지 말아요. 문이 고장난 거 일수도 있잖아요.?"


리타드는 안심시키려는 듯 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문을 두들겼다. 그리고는 문이 잠겼다고 소리쳐서 말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우리.. 잡힌거지..?"
"아, 아니... 젠장! 총을 두고 왔는데..!"
"리타드으..."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리타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안겼다. 리타드는 나를 꼭 안아주며 우는 나를 달랬다. 나는 바들바들 떨며 그의 품에서 울었다.


"알렉스가.. 흑, 알렉스가 오면, 어떻게., 흐윽.."
"유진.. 괜찮아요. 유진은 안 죽을거니까, 제가 어떻게든 살려줄게요.."
".. 아니야아.. 흐으.."


네가 죽을까봐 그게 걱정이 되. 날 위해주는 네가, 날 사랑해주는 네가, 내가 사랑하는 네가 알렉스의 손에, 나때문에 죽으면 난 어떻게 해야해? 너한테, 너한테 미안해서... 다시는 널 못봐서, 그래서...


"괜찮아요, 유진. 떨지마요. 내가, 내가 지켜줄테니까."
"흑... 흐윽..."


리타드는 우는 나를 어찌할 줄 몰라하며 달랬다. 한참 그의 품에서 울다가 밖에서 들리는 노크소리에 놀라 울음을 멈췄다. 누구야. 누구지? 설마..


"이제야 찾았네."


알렉스의 목소리였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리타드는 그런 나를 더 세게 안았다.


"고생 좀 했어. 설마 사람을 그렇게 깔아둘 줄은 몰랐지. 집 나왔다더니, 거짓말인가봐."
"... 왜 온거야."
"다 알면서 뭘 물어. 설마 영화찍자는 건가? 그런 흔해빠진 말이나 해 대면서?"


화가 실린 그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이대로ㅜ리타드가 떠나갈 것만 같아 나는 리타드를 꼭 안았다. 리타드도 그런 나를 놓지 않았다.


"... 어차피 지금 너희들이 나올 생각이 없어보이니까,"
"...?"
"그러니까 마지막 기회를 줄게."


알렉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살면서 가장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순간이었다.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곧 문이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유진을 내놔. 아니, 유진."
"......"
"네가 스스로 나와. 문 열고."
"... 유진..."
".... 리타드..."


나는 리타드의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그러면 리타드는 죽을텐데...


"... 유진, 날 믿어요?"
"어..?"
"... 사랑해요, 유진. 내가 말했죠?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 응..."


나는 문과 리타드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리타드의 품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안가."
"..뭐..?"


알렉스에게도 들릴 정도의 크기로 말했다. 알렉스의 말에 조금 움찔했지만, 리타드가 곁에 있었다.


"... 유진."
"...?"
"넌 항상 네 생각만 해. 그래서 늘 그런 선택을 하지."
"......"
"네가 그렇게 네 마음대로 한다면,"
"......"
"나도 내 마음대로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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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1-30 14:55 | 조회 : 2,387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죄송합니다. 추격씬 적는건 처음이라.. 또 추격씬가지고 질질 끄는걸 싫어하는건 변명이고 사실 잘 못적어요... 죄송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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