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이 미친새끼를 봤나."


알렉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욕을 지껄였다. 그의 화난 음성에 움찔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내가 그렇게 앉아있다는 것과는 상관 없는 것인지 알렉스는 그 잘생긴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다.


"내가 쳐돌았냐? 꺼져."
"......"
"그렇게 맞먹고 싶으면 네 집으로나 돌아가던가, 씨발."


집. 리타드는 집에 못 돌아가는데. 그리고 그러면 영원히 리타드를 못만날지도 몰라. 나는 알렉스가 통화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얼마 못가 알렉스는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내게 다가왔다.


"저 새끼는 제대로 홀렸네?"
"......"
"이젠 별 같잖은 것들이... 건드릴걸 건드려야지."


알렉스는 내가 입고있던 저의 커다란 티셔츠를 억지로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알렉스는 날 발가벗기고는 침대 한가운대에 눕혔다.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무슨 일인지 그가 내 몸을 손으로 쓸어댈 때, 알렉스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지만 알렉스는 상관없다는 듯 계속 내 몸을 매만졌다. 그 끔찍함이 너무 싫었다.


"아, 알렉스..!"
"뭐야."
"저, 전화. 그거 울리는데.."
"닥쳐. 지금 그딴게 문제야?!"


알렉스가 소리를 지르자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바, 받으면.. 받으면 할래.."
"뭐?!"


알렉스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나는 그가 무서워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후 말했다.


"받으면 아무말도 안할게.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 나중에 딴소리 하지마."
"어, 응.."


왠일로 알렉스가 순순히 물러났다. 젠장,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화면을 본 알렉스는 곧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침실에서 나갔다. 나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옷, 입을까? 그치만 알렉스가 오면 어차피 벗어야하는데..

그래도 입는게 낫다고 판단한 나는 그의 옷을 입고 다시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스가 아까와 같은 심각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이것저것 자신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알렉스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잠시 나를 흘겨보더니 또 다시 나갔다 들어오면서 쇠사슬을 챙겨왔다. 알렉스가 내게 다가왔다. 설마, 설마 저걸로 날 묶어둘 샘인가?


"알렉스..."
"너 그냥 놔두면 도망칠거잖아. 한두번도 아니고."
"아, 아냐.. 도망 안쳐.."
"그걸 내가 믿게 생겼어?"


알렉스가 같잖다는 듯 웃으며 침대 다리에 사슬의 한쪽을 칭칭 감은 후 묶어둔 다음,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확인하고는 반대쪽을 들고 내게 다가와 내 한쪽 다리를 끌고갔다. 이러면 정말 도망칠 구석이 없어진다.


"아, 알렉스, 제발.!"
"시끄러."
"도망 안칠게. 정말이야. 제발.. 믿어줘.."


나는 절박하게 알렉스의 팔에 매달려 애원했다. 알렉스는 날 힐끗 보더니 발을 놓고 물러났다.


"도망치기만 해봐. 진짜 가만안둬."
"으, 응."


알렉스는 살벌하게 말하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묶일뻔한 사슬을 발로 걷어차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침실밖을 나갔다. 거실에는 아직 내 짐이 그대로였다. 뭐, 짐이라고 해 봤자 술 몇병에 알렉스가 사준 옷 몇벌 뿐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침실을 나오니 밖의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때마침 저녁시간이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나를 감쌌다. 그런데 안에는 딱히 먹을게 없었다. 나는 계란 두어개를 꺼내들어 후라이로 구운 다음 씹어삼켰다.

텔레비전도 없고, 휴대폰도 없어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나는 그저 거실의 소파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차피 지금 나가봤자 알렉스가 깔아놓은 그의 부하들에게 다시 잡혀 안으로 들어올테고, 그러면 알렉스는 내 다리에 사슬을 채워놓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려앉았고, 나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갑자기 집 밖에 찢어지는 듯 한 총소리가 들렸다. 알렉스 때문에 생긴 총에 대한 트라우마로 나는 벌벌 떨면서 침실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총소리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어 오들오들 떨면서 어서 이 지옥같은 소리가 끝나기를 빌었다. 그 소리는 한참이나 들렸던 것 같다. 어느새 총소리도, 싸우는 소리도 멈추었을 쯤, 갑자기 집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두드리기보다는 꼭 부셔버릴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부셔졌고, 누군가의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알렉스는 아니고, 대체 누구지? 무슨 생각으로 알렉스의 집에..


"유진! 거기 있어요?!"


리타드의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밖으로 나갔다. 리타드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맙소사, 유진!"
"리타드..!"


리타드가 내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나도 그를 있는 힘껏 안았다. 리타드는 내 이마와 볼에 한번씩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얼른 나가요."
"어? 그치만 밖엔.."
"괜찮아요. 이젠 없으니까."


리타드는 나를 끌고 집밖으로 나왔다.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피웅덩이였다. 내가 놀라자 리타드는 급하게 내 눈을 가려주었다.


"이런, 미안해요. 얼른 가요."
"응.."


나는 리타드의 손에 이끌려 함께 달렸다. 리타드는 나를 차에 태워주었고, 곧 차가 출발했다. 리타드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기분좋게 말했다.


"보고싶었어요."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말에 어두웠던 내 표정이 밝아졌다. 마음이 들뜨고,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 나도.!"


나는 그에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리타드는 차를 몰고가는 내내 그동안 날 빼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다느니, 결국 이런 저런 방법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집안의 힘을 빌렸다고 했다.


"그, 그러면.."
"괜찮아요. 지금은 당신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 넌 그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하하, 귀여워요."


리타드의 말에 얼굴이 시뻘게지자 리타드는 내 뺨을 만지며 말했다. 아직 늦은밤, 거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리타드는 얼른 자신의 집으로 날 데려갔다. 내가 나가기 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리타드는 날 꽉 안으며 속삭였다.


"당신이 없으니까 너무 슬펐어요."
"... 나도."
"정말? 진짜죠?"
"응."


나는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리타드는 내 이마, 눈, 코, 입에 순서대로 입을 맞추다가 목으로 내려왔다. 수없이 새겨진 문신들 사이로 알렉스가 남긴 흔적들이 보였다. 리타드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 울혈들 위에 입을 맞추었다. 알렉스의 흔적에 리타드가 새긴 키스마크가 생겼다. 리타드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날 안고 침대로 갔다.

리타드는 날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고는 내 옆에 자기도 앉았다. 그리고는 내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유진, 좋아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리타드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다시 나를 안았다. 나는 옅게 웃었다. 리타드는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웅얼거리듯 물었다.


"유진."
"응."
"나 궁금한거 있어요."
"뭔데?"
"... 근데 말하면 당신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망설여져."
"괜찮아."


나는 리타드를 한번 안아주며 말했다. 리타드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더니 내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저번에 유진이 그랬잖아요. 길츠만을 동경했다고. 근데 당신 얘길 들어보니까, 전혀 아니던데.."
"아..."
"...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아니야. 맞아, 나 그렇게 말했지... 무서웠던것도 사실인데.. 동경했던것도 사실이니까."


내 말이 리타드는 물음표를 띄운 얼굴로 나를 처다보았다.


"... 그 때 나한텐 아무것도 없었어. 심지어 세리나와 도망쳤는데도, 알렉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를 낼, 아니 어쩌면 죽일 수 도 있었겠다."
"유진.."
"아무튼 날 싫어할만도 한데, 그래도 날 혼자두지 않았어. 다른 놈들은 날 인간취급도 안해줬는데 유일하게 날 인간취급해줬지. 가까이서는 두려웠지만 멀리서 보면 충분히 동경할만한 사람이었어. 그 때의 나에게는 없는걸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부러워 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답했다. 리타드는 그렇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내 손을 잡았다. 마음이 좀 더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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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04 14:27 | 조회 : 2,433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진짜 얼마 안남았다.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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