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날 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 자신이야.'
모두들 입 모아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공은 특별하죠.
절대로 지지 않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일어서고, 투쟁하고, 잃고, 얻고를 반복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내 쟁취합니다.
모두들 주인공을 좋아하고, 주인공은 끝내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죠.
그 차갑고 냉정한 행운의 여신마저도 주인공에게 미소지어줍니다.

이제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봅시다.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입니다.

정말 당신이 당신의 인생의 주인공입니까?


일단 이름부터 말해 줄래?

"아..도희. 서도희요.
그런데 이거, 녹음되고 있는 거에요?"

응. 처음에도 말했듯이,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댓가야.

"네..."

녹음기는 신경쓰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해 보렴.

"그러니까...그저, 처음에는 장난일 뿐이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애가 제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만나자고 한 친구가 저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로 제게 그 이야길 했던 날, 전 제가 친구에게 어떤말을 했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친구에게 소리치거나 못된 말을 하기라도 한 거니?

"네? 아, 아뇨.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분명 얼굴은 웃고 있었고 잘됐다는 말을 했다는것 같아요... 그저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에요..."

그렇니? 말 끊어서 미안하구나. 계속 이야기해줘.

"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제 방에서 울었던 것 같아요.
전 그 남자애를 정말 좋아했지만, 그런 일로 친구를 싫어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거든요...
한참을 울다가 결국 빈혈로 쓰러졌었던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라구요. 엄마가 너 갑자기 왜 이러냐고 울던 기억도 나고... 결국 잠깐 입원하게 됐었는데..."

...됐었는데?

"병원 입원실 아시죠? 왜 침대 하나당 탁자 겸 사물함이 하나씩 있잖아요? 제 물건을 넣으려 별 생각없이 제 옆의 사물함 서랍을 열었는데.... 그게 있었어요...."

뭐가 있었어?

검은... 검은 책. 제목도 없고 겉표지도 가죽이라 처음엔 책이 아니고 노트인줄 알았는데... 책이더라구요... 아마 전에 입원했던 사람이 두고 간 거구나.. 싶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뒀어요.
그리고 어느날, 제 친구와 남자친구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기분전환이나 할까 싶어서 책을 읽었는데....."

(한동안의 침묵)

읽었는데, 그래서?

"읽었는데.... 내용이 참 신기했어요.... 다른 사람이 가져간 내 것을 돌려받는 주술도 있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주술도 있었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주술도 있었고... 또....또..."

또?

"...연인, 연인을 헤어지게 하는 주술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주술을 따라했구나?

", 그렇잖아요!! 만약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다면, 전 제 친구를 미워할 필요도 없을 거고 그 남자애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해 볼 수도 있을 거였다구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거면 되는데!!!!!"

자, 자. 진정하고. 난 널 비난하고 싶은게 아냐. 그저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지. 그게 우리의 계약이었잖아? 계속해.

"후.... 전 그 주술을 그대로 했고, 다음날 친구가 울며 제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왔을땐, 주술이 효과가 있었단걸 알고... 그래. 정말 기뻤어요. 얼굴의 미소가 그려지는걸 숨기는게 힘들 만큼.
그런데...그런데.....흐흑...."

(한동안 울음소리가 들린다.)

"치,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남자..애..가... 사고로 죽어...버렸다는 거에요...주, 주술이....제가....!"

결국 친구와 남자애는 헤어진게 되었구나. 물론 네가 바랬던 방향은 아니지만.

"전 그 말을 듣고.. 다시 기절해 버렸던것 같아요... 일어나 보니까 친구는 없었고...
그리고 얼마 후, 다른 친구가 전화를 해서 제 친구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전....전 다시 책을 뒤졌어요... 하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주술은 없었겠지. 안 그래?

"..네, 맞아요...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그런 주술은 없었어요... 대, 대신...
보기 싫은 현실을 보지 않는 주술...이 있었어요..."

그래서, 또 주술을 해버렸구나.

"네.. 제 잘못으로 만들어진 모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또 주술이 이상하게 이루어져서 만일 제가 죽어버려도 상관 없었어요.
그래서 주술을 하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까...눈이.... 제 눈이.....!!!!"

자, 알겠어. 거기까지만 말해도 좋아.
그럼. 선글라스를 좀 벗어주겠니?

(달깍, 하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그 주술이 널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래요!!!! 제가 분명 괴로운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던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

전 제 눈이 뽑히는걸 바라지는 않았단 말이에요!!!!!!"


삶은 항상 제멋대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삶이야 말로, 이 세계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다시 말했죠.
우리야 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라고.

이 세계가 정말로 아름다운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주인공이 맞는 지는 의심이 갑니다.

항상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불운하고, 불행하고, 결국 급기야 자살이라는 포기를 선택하는 당신들과 나.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과 주위의 인물을 다시 한 번 돌아봐 보세요.

아직도 당신이 당신의 삶의 주인공인가요?

누가 주인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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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13 23:02 | 조회 : 1,649 목록
작가의 말
Beta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 항상 잘못된 길을 택하고, 행운의 여신은 냉소할 뿐이죠. 뭐든지 당신 뜻대로 돌아가는 세상은 절대로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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