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번째 날 밤

꿈을 꾸는 자는 자신이 꿈 속에 있는 지 모른다고 말했었죠.
바꿔말하면, 우리가 있는 이 세상 조차 꿈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됩니다.

인간은 진짜를 좋아하지 않죠.
뭐, 진짜 금, 진짜 보석 같은 건 좋아할 지 몰라요.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진짜를 싫어합니다.
시들고 죽어버리는 진짜 꽃이 싫어서 가짜 꽃을 만들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하지만 수가 부족한 고기와 야채가 싫어서 가공 식품을 만들고
이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가짜 세상을 만들어 가둬버립니다.

어쩌면 이 곳 역시 여러분이 세상을 싫어해 만든 가짜 세상, 꿈 그 자체.

하지만 알지 못하고 무한히 되풀이하겠죠.
영원히.


"......"
눈을 뜸과 동시에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 부슬부슬한 파도소리와 함께 하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갈매기들의 애꿎은 외침이 귓가에 맴돈다.
"후우."
부모님은 하루에 배가 딱 한 번만 운행하는 유유자적한 외딴섬에서 살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처럼 부모님을 한 번 뵐라하면 한밤중이 되서야 섬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은 고작 나 혼자 뿐이다. 아무래도 물질 문명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한 고립된 섬은 아무도 출입하려 하지 않는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
시선을 배로 고정시키고 잡생각을 하는 순간 긴 생머리의 여자아이가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타지 사람인듯 옷차림은 시골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찰랑찰랑한 생머리의 은은한 샴푸내음이 비릿한 바다냄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갸름한 턱선에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뭐하세요?"
"배를 기다리고 있지."
의심스러운 내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고 명랑하게 질문한다. 크고 빠져들것만 같은 눈에 시선이 고정된다.
"배는 왜 기다려요?"
"집에 가려고."
"아마 못갈걸요."
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꼬마아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배로 가져갔다. 아이가 옷을 들추자, 그곳에는 커다란 입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저 멀리 있는 선장은 이런 상황을 알리가 없는 듯 담배만 연거푸 빨아대고 있다.
카드득.
괴물의 얼굴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낸다.
순간 아이의 얼굴이 부풀어지며 터져버린 후 괴물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북등껍질처럼 단단할것만 같은 피부와 날카로운 이빨이 무수히 솟아있는 뱃거죽은 실로 징그러웠다.
"미친.."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배에 달라붙어있던 입이 믿을 수 없을만큼 커지며 그 안에서 촉수들이 나와 내게 달려들었다. 이질적인 고통이 온 몸으로 느껴지며 전율이 뇌리를 스쳤다.

"...."

눈을 뜸과 동시에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 부슬부슬한 파도소리와 함께 하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갈매기들의 애꿎은 외침이 귓가에 맴돈다.
"후우."
괴상망측한 꿈을 꿨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이상한 기억을 떨쳐내었다. 저 멀리서 낯익은 소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소녀의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배에서 담배를 뻑뻑 피며 조용히 소녀를 지켜보던 선장이 행동에 나섰다. 때 묻은 기다란 망토를 입고 천천히 다가오는 선장의 모습은 바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얘야."
"네?"
선장이 걸쭉한 목소리로 소녀를 불렀다. 소녀는 약간 움찔하며 선장을 물끄러미 봤다. 음탕한 눈초리로 소녀를 내려다보던 선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소녀의 몸에 손을 올렸다.
"잠깐 아저씨좀 따라올래?"
"뭐하실려고요?"
"글쎄, 좋은 게 있단다. 조용히 따라오련?"
"싫어요, 저는 이 아저씨랑 같이 있을래요."
소녀는 내 옷자락을 바싹 끌어안으며 나에게 엉겨붙었다.
뭐하는 짓이야? 이 미친놈은.
"뭐하는 거야, 미친새끼가?"
내 말에 약간 열받은 듯한 선장은 주머니에서 평범한 식칼을 꺼내서 소녀에게 들이댔다. 식칼을 들이대자 아무 저항도 못하는 소녀는 훌쩍이며 선장이 칼끝으로 소녀의 옷을 조금씩 잘라 벗기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넌 좀 있다 손봐주마, 이 새끼."
선장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한마디 쏘아붙이고는 소녀를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이런 변태같은 새끼.
"야이 개새끼야."
나는 흥분한 나머지 욕을 마구 내뱉기 시작했다. 선장은 의외로 놀란 모양인지 걷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노려봤다.
"뭐하는 거야, 변태같은 새끼야?"
"뭐? 말 다했어, 이 새끼야?"
"먹을거면 같이 먹어, 새꺄."
"?"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야."
멀뚱히 서서 훌쩍이던 소녀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몇 마디 내뱉었다. 그 순간 훌쩍이던 소녀의 얼굴이 부풀어지며 괴물의 형상이 나타났다.
"으아아아악!"
놀란 선장은 소녀를 뿌리치고 전력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녀의 가녀린 허리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촉수가 선장의 몸을 꿰뜷고 모래사장에 선혈을 흩뿌렸다.
"미친년, 니가 마조히스트냐?"
"놔둬. 재밌잖아."
"뭐, 난 내장만 주면 돼."
"그러던가."
"하여튼 변태같은 새끼, 그딴 방법으로 먹어야겠냐?"
"놔두라고. 재밌잖아."
소녀와 나는 앉은 자리에서 선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폭식하기 시작했다.
선장의 걸쭉한 피가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었다.
마침 아까 꾼 꿈이 생각났다.
"아, 맞다. 아까 꿈을 꿨는데."
"뭔 꿈?"
"글쎄, 내가 너한테 잡아먹히더라고. 내가 먹히고.."
"그래? 괴상한 꿈이네."
"그러게."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다시 선장의 갈비뼈를 파헤쳤다.
"오, 이거 맛있겠다."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

오늘은 배 타기에는 참 좋은 날씨입니다. 바람도 원만하게 불고, 구름에 먹도 그다지 끼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왠지 해변가를 거닐고 싶은 날입니다. 모래의 투박함 속에서 정겨움을 느끼거든요. 바슬바슬 거리는 모래알갱이들을 밟으며 해안의 비릿한 해풍을 제 얼굴로 맞부딪히게 되면 그 시원함은 이룰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이 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억을 잃고 일어난 곳이 이 해변입니다. 짭쪼름한 모래가 입 안에 가득할 때, 저는 섬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릅니다. 어떤 경위로 이 곳에 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10살 쯔음의 어린 여자아이로 각색되어진 저는 몇 일 전부터 이 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와 같이 건져올려진 가방속에서 제 사이즈에 딱 알맞는 옷과 상당량의 돈이 발견되어서, 지금은 그 돈과 옷으로 생활을 해내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후 제가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는 턱에, 저는 그 날 이후로 줄곧 이 모래사장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그런데, 저기 처음 보는 아저씨가 배 근처에 앉아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섬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거칠고 투박한 섬 사람들은 저렇게 세련된 옷을 입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섬 밖의 세상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면 기억을 되찾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갑자기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아저씨에게 걸어가서 얘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
배만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를 놀래켜주니 짐짓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뭐하세요?"
"배를 기다리고 있지."
아저씨가 저를 왠지 불편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덥썩.
갑자기 아저씨가 제 몸을 덥썩 끌어안았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왠지 빨리 피해야 할 것 같았어요.
"엄마!"
"조용히 해라, 꼬마 아가씨."
아저씨는 엄숙한 목소리로 제 귀에 대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 훌쩍이면서 그저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요. 아저씨는 살짝 팔을 풀어놓더니 얘기했습니다.
"빨리 떠나거라."
"네?"
"여기 있으면 위험해, 저기 보이는 선장이 너한테 위험한 짓을 할거야."
아저씨는 배 위에서 담배를 피며 뻑적지근하게 서있는 험악한 아저씨를 가리켰습니다. 그 아저씨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저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빨리 섬 안쪽으로 뛰어가거라. 전력으로."
"으읍."
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신호를 했습니다.
저는 곧장 섬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구요. 최대한 빨리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달렸습니다. 그 와중에 잠깐 뒤를 돌아봤는데, 선장과 아저씨가 몸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선장아저씨는 식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럼 이 섬에 요즘 출몰한다는 살인마가 선장아저씨 였나 봅니다.
저는 이 두려운 소식을 어서 빨리 전하기 위해 마을로 냅다 달렸습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지라, 지쳐서 잠시 쉬기 위해 커다란 나무에 기대앉아 있는데, 저 옆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푸욱. 푸욱.
저는 조용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최대한 숨을 참구요. 하지만 힘겨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다가간 순간 소복을 입고 있는 언니가 칼을 치켜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걸터앉아 있는 것은 새빨갛게 되어 있는 어떤 오빠였습니다.
언니는 이미 미동도 하지 않는 오빠를 쉬지 않고 칼로 내리찍었습니다. 웃으면서 오빠를 찌르는 언니는 참으로 즐거워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한 번 한 번 칼을 내리찍을때 마다 새빨간 선혈이 제 옷과 주변의 풀에 묻었습니다.
이윽고 언니는 오빠의 몸을 칼로 파헤친 후 아직 따뜻한 오빠의 심장을 꺼냈습니다. 심장은 참으로 맛나게 생겼습니다.
아아, 그래요. 저는 군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심장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습니다. 그 순간 사방으로 피가 튀었습니다. 물론 제 옷에두요.
"아."
저는 아까운 나머지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요.
언니의 새빨간 눈동자가 저를 주시했습니다. 마침내 제가 언니를 내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입니다. 저는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그저 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추악한 모습의 언니가 저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더니 제 배를 푸욱- 하고 칼을 깊숙히 찔러 넣었습니다. 그 순간 강렬하고 격심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렬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아, 그래요. 그것은 쾌감이었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상당히 좋았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던 언니는 제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여러 토막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런."
아쉬웠습니다. 맛 좋은 장기가 모두 뭉개졌을 것이 뻔합니다.
드디어 제가 누구인지 기억해냈습니다.
저는 미친 듯이 맛있는 언니를 탐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겉껍질부터, 그 다음 뇌, 그 다음 내장까지. 아아, 정말 좋았습니다. 맛있는 식사였어요.
"꺄아악!!"
비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이런. 폭식하는 중인 저를 아주머니가 발견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털썩 주저앉더니 곧장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귀찮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귀찮게 되었습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 먹을거니까요.
"다음 섬은 어떨까.."
벌써부터 다음 섬이 궁금해집니다.

"몸 조심하고 다녀오너라."
"예. 다녀올게요."
이른 아침의 낯익은 인사. 부모님께 익숙한 아침인사를 끝마치고 대문을 나선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당겨진 기상시간은 특히나 매주 월요일마다 나를 힘들게 한다.
"젠장..."
신발이 잘 신어지지 않아 또 투정을 부린다. 볼 때마다 달라지지 않는 구정물이 잔뜩 묻은, 헌 운동화. 외딴 섬에서 쭈욱 자라왔기 때문에 항상 부유한 삶을 바라왔지만 결코 부유함은 날 원하지 않은 듯 하다.
이러한 투덜거림도 부모님 앞에서 대놓고 할 수는 없기에, 할 수 없이 일단 집을 나와서 신발을 고쳐신는다.
"이게.. 왜 이래?"
왠지 오늘따라 기분이 더럽다. 그래서인지 신발이 잘 신겨지지가 않는다. 젠장할.
걔 때문인가? 정말 싫다. 걔 때문에 짜증나는게 한 두번이 아니야.
바스락.
낯선 소리에 흠칫 놀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앞에 서 있는 건 귀여운 꼬마아이였다. 긴 생머리에 은은한 샴푸향이 여기까지 날아온다. 외지 아이인듯, 옷차림이 영 이 섬과 어울리지 않는다.
은근히 이쁘장한 얼굴에 조금 호감이 갔지만,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다.
키득 키득.
꼬마가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뭐가 웃긴걸까? 참으로 의문이었다.
나는 요상한 꼬마때문에 학교에 늦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피식 웃음을 아이에게 선사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눈 앞에서 정체불명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이히!"
또 걔다. 젠장.
매일매일 나만 쫓아다니는 년. 뭐하자는 거야? 안 되겠어. 이번엔 경찰에 신고해야지..
"이히, 이히히.."
항상 해석불가능한 말을 주절거리면서 내게 다가온 그녀는 내게 호감이 있는듯 항상 실실 웃으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오늘로 몇 일 째일까.. 내가 힘이 약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위험해지는 것 같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짜증이 치솟고 언젠가 나를 성폭행이라도 하지 않을까 의문이 생겼다.
"오늘은.."
응?
"오늘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이럴수가. 사람 말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맨날 이히히, 히히덕 대는 미친여자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착각이었나보다.
나는 왠지 대화로 해결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확실한 어조로 물었다.
"뭐요?"
"오늘은..."
"네, 오늘은..?"
"오늘은.. 너.."
"네."
"오늘은.. 너를.."
오늘은 너를?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빨리 좀 말할 것이지.
나는 다급해졌다. 젠장, 이러다가 학교에 늦겠어!
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보다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당장에 제꺽 거절하고 꺼지라고 해야지.
자, 빨리 말해봐.
"뭐라고요?"
빨리!
"오늘은.. 너를..
오늘은 너를 잡아먹을거야."
뭐?
순간 그녀의 몸통이 괴기한 형상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나를 순식간에 덮쳤다.
약하지 않을거라 자부하던 나는 전혀 힘도 못쓰고 그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으으.'
지익. 지익.
질질 끌려가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서있는지, 누워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여 눈을 떴더니, 나를 끌고가는 이질적인 형상의 괴물이 보였다.
'크으..'
갓 정신이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복부와 양쪽팔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숨통을 끊을 것 같아 겨우겨우 눈물을 흘리며 참아냈다.
'살아야 한다.'
아니, 살고싶다.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에 난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생존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인간의 본능일까?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든, 상황이 이해가 안가든 일단 살아야 본전을 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데, 멀리서 아까 그 꼬마아이가 보였다. 꼬마아이의 표정은 심히 굳어있었다. 그도 그렇지. 괴물에 끌려가는 시체같은 내모습이 어찌 보일까?
그런데 이놈봐라. 내 모습을 본 꼬마아이가 곧장 달려오기 시작햇다.
어이, 어이. 그만둬. 그러다 너도 죽는다.
꼬마아이는 내 절실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왔다. 괴물은 아이의 의아한 행동을 눈치챈 듯 아이쪽을 뒤돌아보았으나, 귀여운 꼬마아이가 더 빨랐다.
짜악!
놀랍게도 아이의 손이 괴물의 뺨다귀를 후려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아무리 겁이 없다지만, 이건 말이 안되지. 죽을참이야?
그런데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더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새끼야, 나눠 먹기로 했잖아. 어디 가는거야?"
"..미..안.."
"빠진 새끼.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않고."
"..어..?"

『 당신은[는] 꼬마아이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나!"
꼬마의 짤막한 외침이 허공에 울려퍼졌다.
"또 디졌어."
"짜증나지?"
"어. 존나게 짜증나."
"그러게 뭐랬냐. 이거 장난까게 어렵다니까."
"무슨 루트가 이따위야? 어떻게 해야 살아서 섬을 나가는거야?"
"그러니까, 캐릭터가 아저씨, 꼬마, 남학생 있잖아? 이 중에 아저씨를 골라서 일단 섬쪽으로 도망친 다음에 살인마 누나한테 칼을 뺏어서 괴물을 죽여야 돼. 그 다음에.."
"아 씨발, 존나 못해먹겟어. 무슨 다 괴물이잖아."
"그치만 이 게임 전설이라구. 한번 깨봐야지 않겠어?"
"쩝. 그렇지. 내가 누군데. 내 근성을 시험해봐야지."
"그래. 이번에 다시 아저씨 골라봐."
"근데 왜 시작할때마다 에피소드 봐야돼? 스킵안되냐?"
"놔둬. 부모님만나러 왔대잖아."
"아, 이 아저씨도 졸라게 불쌍하네. 부모님 만나러 섬 왔다가 몇 번 디지냐."
"그러게. 키득키득."
아이들의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가 메아리 친다.

『......』
『눈을 뜸과 동시에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
부슬부슬한 파도소리와 함께 하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갈매기들의 애꿎은 외침이 귓가에 맴돈다.』
『후우..』
『부모님은 하루에 배가 딱 한번만 운행하는 유유자적한 외딴섬에서 살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처럼 부모님을 한번 뵐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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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03 22:01 | 조회 : 1,355 목록
작가의 말
Beta

왠지 점점 맺음말을 맺는 게 귀찮아 지는 건 기분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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