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번째 날 낮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죠.
모두들 다른 누군가와,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혹은 자신의 직장에서, 혹은 집에서 좋든 싫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시간이란 것이 참 절대적이죠.
어느 신화에서든 그 위대한 신조차 거스를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시간입니다.
그리고 항상 일정하게 하지만 제멋대로 멈추지 않고 태곳적부터 흐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위대한 시간.

또한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덮어버리죠.
시간이 흐를 수록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단순한 어릴 적 기억 뿐만이 아닌, 과거에 있었던 사건까지도.

여러분들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삼풍 백화점 사건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건, 아니, 하다 못해 최소한 세월호 사건만이라도 기억하십니까?
이제서야 '아, 그 때 그런 사건이 있었지.' 하며 기억나신 분들이 얼마나 되십니까?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새해에는 다시 되풀이하지 마시길.


"5"
"4"
"3"
마지막 안전벨트까지 모두 채워지고 탑승하지 못한사람들은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거나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미친듯이 탑승한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2"
"1"
"Good bye"
"끄아아악!!!!"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수백,아니 수천명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어렸다. 그것은 그냥 보통의 두려움이라던가 하는 감정이아니었다.
말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살아남았다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또한 언제죽을지 모르는 이 절박한 상황속에서 정상적인 생각따윈 할래야 할 수가없었다.

놀이공원에 수십대씩 설치된 붉은빛이 도는 스피커에서 도저히 인간의 목소리라 생각할수 없는 기괴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축..하...드립...니..다...치지직"
"이 미친놈아!!당장 우릴 풀어줘!!"
"개같은놈..사람들이 죽었는데 축하한다고?!!"
"야이XX놈아!!"
여기저기서 욕이섞인 고함소리가 터지고 이내 자신들도 죽을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울부짖기시작했다.
"하..하..하..죽은..사람들..처럼..되기..싫으시면..묵묵히..따르십시오......마지막..10명의..사람이..남을...때..까지... 당신..들이..자유이용권으로..알고있는..그 팔찌..는..일종의..폭발..물이죠..그럼..시작..해볼..까..요?"
서서히 자이로드롭ㅡ아니,매우 거대한 탑승기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ㅡ 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후 그것은 순식간에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그순간 안전벨트가 일제히 풀리고 사람들은 관성에의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으아아악!!!!!!"
"사람살려!!!!"
'제길..이건 어찌됐든 죽으라는얘기잖아!!'
이런생각을 하는 찰나에 놀이공원입구에서 나눠준 낙하산이 생각났다.
"그걸 이때 써먹으라는거였군..."
이내 낙하산이 펼쳐지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다른 몇백명의 사람들도 같은행동을 취했다.
'사람의 두뇌는 매우 절박한 상황앞에서 굉장한 판단력을 보여주는군..'
지상에 안전하게 착지한 사람들은 기뻐하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있었다.
"치지지직..하하..용케..살아...남으셨..군요...하지만..이제껏..한것은...맛보기..였습..니..다..."
스피커에서 다시 괴음이 들려오고 살아남은사람들은 몇가닥 남은 희망의 줄기마저 놓아버린듯했다.

'제한시간내에 탑승하지 못한 자는 죽는다'
이 놀이공원의 절대법칙이다.
"GAME START."

"이때까지가 맛보기였다고?!!"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제발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생존자들의 절망적인 아우성이 들렸다.
스피커에선 다시 기분나쁜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크흐흐흐....다음...장소는....고스트...하우스......제한시간은...3분입..니다...."
그 기분나쁜 목소리가 멈추자마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기 시작했다.
"머뭇거릴 시간이없어!! 빨리빨리 가자고!!"
"어차피 가봐야 죽을 텐데 뭐하러 가!"
"어디야!! 고스트하우스가 어디냐고!!!"

'제기랄..처음부터 이곳에 오지만 않으면 되는거였는데..그때로 돌아갈수만있다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이 떠올랐다.

"오빠!!오빠~~ 이것 좀 봐!! Hell land 개장기념으로 오늘 하루 선착순 3000명에게 공짜로 자유이용권 준대!"
"으응..? 어디 보자.. 어! 진짜네?"
"오빠..오늘 우리 100일이잖아.. 여기가서 추억하나쯤 만들고 오는것도 괜찮지 않아?"
"그래..내가 평소에 너 하고싶은것도 잘 못해주고..몇 시부터야?"
"오후 12시."
"지금이..10시반이니까 지금 빨리 가면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놀이공원에 공짜로 갈 생각에 들떠서 가서는 안될 여행을 시작했었고 그곳의 위치는 괴이하게도 깊은 산 속이었다.
"야..우리 잘못온거아냐? 정말 여기맞아?"
"응..맞아..그런데 놀이공원이 산속이라니..좀 꺼림칙하다."
"뭐 어때~ 공짠데! 그치?"
매우 거대한 놀이공원은 이제껏 보지못한 괴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깊은 산 속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었고 우리는 탐탁치 않으면서도 공짜놀이공원에 솔깃해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흐흑..흐흐흑..나 너무 무서워.."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여자친구 수미도 나와 함께 살아남았던 것이다. 나는 재빨리 수미의 손목을 붙잡고 고스트하우스를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일단 뛰긴 했지만 이 놀이공원은 너무나도 커서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를정도였다

"오빠..저기 고스트하우스라고 써있는 거 같은데?"
다행히 수미가 이정표를 찾았고 우리는 화살표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왕년에 학교 육상부였던 나는 달리기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수미는 벌써 지친듯했다.
"5"
"4"
"수미야!!빨리!!"
"3"
"2"
"1"
"살았다!!!!"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나와 수미는 고스트하우스로 입장할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시련이 있기에 방심할수만은 없었다.
"Good bye"
"콰콰콰쾅!!!!!!!!!!!!!"
"으아아악!!!!!!!!!"
미처 고스트하우스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ㅡ자유이용권인줄로만 알았던ㅡ가 폭팔했다.
첫번째 관문인 자이로드롭에서 살아남았던 수백 사람들중에서 벌써 반 이상이 죽은듯 했다. 놀이공원은 사람들의 시체로 초토화되었고 스피커에서 다시 기분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이지직...치이이..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벌써 절망과 공포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였다.
"크흐흐흑..."
"흑흑.."

"치지지..고스..트..하우스..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앞으..로......5..관문...이..기다리고..있습니..다.........최..후의생존자....10명만이..살아돌...아...갈...수..있습니다...중간에..이 놀이공..원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자에겐..죽음이..기다리고있습니다......그럼..시작..하겠습니다.."
"쾅!!"
입구문이 닫혔다.
사람들은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위기가 닥칠지 모르기때문이었다.
그 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푸슉!"
"크아아악!"
선두에 서 가던 일행네명 중 세명이 떨어지는 식칼에 정수리를 맞아 즉사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온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수미가 내 뒤에 숨어 내 옷소매를 부여잡고 흐느꼈다.
"오빠..나 어떡해...무서워..돌아버릴꺼같아..흐흑.."
"괜찮아..오빠가 끝까지 널 지켜줄게."
일단 안심시키긴 했지만 나로써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아는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먼저 걸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퓩!"
"윽!"
"푸슉!"
"크아악!!"
이어서 식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화살을 맞은 새처럼 픽픽쓰러졌다.
'섣불리 걸어가선 안 돼.. 뭔가 규칙이 있을거야..'
그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선두로 가던 일행 네명 모두가 죽지않고 한명은 살아남았잖아..? 뭔가 있어..'
나는 통화권 이탈인 휴대폰을 켜서 발밑을 비추었다. 바닥은 커다랗고 네모난 타일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살아남은 한사람이 딛고서 있는 바닥의 타일은 붉은색이었고, 죽은사람들이 딛고서있던 바닥의 타일은 검은색이었던 것이다.
"수미야..이제 됐어..여기서도 살아나갈 수 있는 거야..."
나는 수미에게 방금 발견한 사실을 귀띔해주고 시험삼아 담배하나를 꺼내 검은타일에 던졌다.
"푸슉!"
아니나 다를까 담배엔 서슬퍼런 식칼이 세로로 꽂혔고 우리는 차근 차근 붉은타일만 밟아 무사히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지못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이토록 이기적이었다니..무섭군.... 하지만 생존자가 10명밖에 남지 않을때까지는 여기 있는 모든사람이 경쟁자야..'
두려움에 떨면서 입구쪽에 서서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열린틈을 타 입구쪽으로 나오려고 시도했으나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팔찌가 폭발해 처참히 죽고말았다.

'자이로드롭과 고스트하우스에서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4관문...과연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치지지직........치이이...크..흐흐..생존자....는...총....135명.....이군요..."
"도대체 니 정체가 뭐야!!"
"살아서 나가면 네놈부터 죽여주마!!"
이제 생존자들의 얼굴에선 대부분 공포와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
"치지직..치이...크흐..흐..다음..장소는...탬버린...제한시간..은...3..분..입니.다..."
탬버린에 탑승가능한 인원은 총 100명. 나머지 35명은 죽는다.
하지만 탑승한 100명도 모두 살아남을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탈진한 몇몇의 여자와 아이들은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렸다.
그때 내 옆에 서있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자신의 친구에게 말했다.
"탬버린... 내가 들어 올때 본 거 같아!"
그리고는 친구와 함께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수미의 손목을 붙잡고 그 고등학생 아이를 따라서 뛰었다. 먼저 뛰어간 우리를 본 사람들이 우리를 뒤쫓아 뛰어오기 시작했다.
"뒤쳐져서는 안 돼! 빨리 뛰어!"
체력이 약한 사람들과 둔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맨 끝에 뒤쳐져서 죽을 힘을 다해 뛰어오고있었다.
'그나마 내가 달리기를 잘 하는편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때 나를 따라 뛰어오던 수미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미야!!"
"오빠..나 힘..들어...더..이상.. 못 뛰겠어.."
수미는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하지못했다.
"수미야! 어서 일어나! 나한테 업혀!"
"오빠..먼..저..가..나때문에..오빠까지..죽을..수..없어.."
"내가 널 죽이고 혼자 살면 행복할것 같아?! 빨리!! 시간이 없어, 어서 업혀."
"흑..미안해..정말 미안해.."
수미는 울면서 내 등에 업혔다.

나도 체력적으로 너무나 버티기 힘들었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우리를 앞지르고 우리는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후..이제....죽는건가?...인생 한번 더럽게 허무하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만치 앞에서 굉음이 들렸다.
"쿠콰콰콰쾅!!!"
"크억!!!!"
"끼아아악!!"
뒤이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놀이공원을 가득메웠다.
폭탄이 터진 듯 했다.
선두로 뛰어가던 사람들은 모두 신체의 일부가 날아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 처참히 죽어있었다.
'이건뭐지?!설마 잘못 찾아온건가..?'
나는 당황해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그 때, 붉은 빛의 스피커에서 또 다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치이익..크흐흐.....흐흐...공..평하게..기회를..제공..한..것..뿐입니다...앞으로..남은시간은..30초..."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릴 수는 없었다.
'뭐야?!...'
'하마터면 나도 죽을 뻔 했어..'
'체력면에서 뒤떨어지는 사람들도 공평하게 하기 위함인가?'
뛰면서도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었다.
저 앞에 탬버린이 보였다. 아까 죽은 사람들로 인해 탑승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운트 다운 안에만 들어간다면...
"5"
'드디어 공포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군..'
"4"
'조금만 더..조금만......헉!'
무언가 이상했다.
"3"
시야에 잡히는 저것은..
'저..저건대체뭐야!!'
"2"
탬버린이..보통의 모습과는 달라?!
"..1"
'탑승!!!!!!'
"Good bye"
"크악!"
저 멀리서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체력이 고갈된 사람들이 동시에 죽었다.
나와 수미는 이제 사람들이 죽는모습에 넌덜머리가 난 상태였다.

스피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흐흐..많이들...놀라..셨겠군요...저의..깜짝...선..물..입니다.."
탬버린 내벽의 수많은 구멍에서 드릴같이 생긴 가시들이 튀어나와있었다.
"이게 뭐야!! 보통 탬버린에 의자가 있어야 할 내벽에...가시가 박혀있잖아?!"
"오..주여.."
"차라리 폭탄에 맞거나 팔찌가 터져 죽는 게 덜 고통스러웠을거야.."
게다가 탬버린의 바닥은 미끌미끌하고 유리같기도 한 처음 접하는 소재로 되어있었다.
"치직...크..흐흐..저의..선물이..맘에드셨나..보군요...그렇게 감동할 것..까지는..없습니다..아차...이것은...덤입니다..."
"투-욱"
"투욱"
무언가가 하늘로부터 쏟아져내렸다.
"으악! 피해!"
"조심해!"
"이건..망치!?"
이제 한 사람 앞에 하나씩의 망치가 주어졌다. 이건 뭘까,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걸까..
"이걸로 스스로 머리를 깨뜨려 죽으라는건가?"
"포기하고 자살하라는거군.."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스피커에서는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치이..치지직..준비되...셨습니까?...그럼..즐...거운...시..간..되십시..오..."
"위이이잉-"
천천히..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탬버린..
사람들은 절망에 젖은 눈으로 탬버린 벽에 돋아난 가시들을 공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탬버린 양 옆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는 보통의 놀이공원에서 나오던 즐겁고 신나는 음악이 아닌, 여자의 비명소리가 섞인 공포스러운 멜로디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위이이이-"
탬버린은 조금씩,조금씩 빨라졌다..
서서 균형을 잡으려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을 바닥에 고정하는 사람도있었다.
하지만 유리같은 소재로 된 탬버린 바닥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위이이이이이-"
탬버린은 조금 더 빨라졌다..
그리고 조금씩 튕기기 시작했다.
들썩..들썩..
"꺄아악!!!살려줘요!!!!!!"
엎드려서 바닥에 꼭 붙어있던 여고생 한명이 점점 가시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녀는 손톱으로 바닥을 그으며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끼이이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듯한 소음에 사람들의 공포가 한층 더해졌다.
그녀의 손톱이 하나씩 빠지고, 젖혀지고, 부서졌다.
"꺄아악!!!!!"
조금씩 빨라지는 탬버린에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져 벽에 붙은 가시에 처박히고 말았다.
원뿔형으로 생긴 가시의 끝이 그녀의 등을 관통해 복부쪽으로 튀어 나왔다.
그녀의 온몸에서는 피가 줄줄줄 흘렀다.
공포에 질려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것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미끄러져 가시에 처박혔고, 서있던 사람들은 탬버린이 들썩일때 튕겨져 그대로 가시에 쳐박혔다.
스스로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고, 심장마비로 경련을 일으키며 죽은 사람도 있었다.
이제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운동선수를 비롯한 조정력과 순발력등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내 운동화의 바닥이 생고무로 되어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벌써 저승행이었을것이다. 수미는 내 다리를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점점 힘이빠져 눈앞이 아득했다.
그러나 계속 망치가 마음에 걸렸다.
'망치..망치.. 도대체 망치로 무얼하라고 준걸까..망치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나오지 않자 너무나 화가나서 들고있던 망치로 바닥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콰앙-!!"
그러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닥이 갈라져 틈새가 생겼다.
나는 눈앞이 번쩍했다.
"아! 이거구나!"
나는 망치를 더욱 더 내리쳤다.
"쾅-! 콰앙-!"
틈새가 조금 더 벌어지고 수미도 날 따라 틈새를 만들었다.
그러나 유리같은 파편들이 튀고 틈새가 날카로워서 틈새에 끼운 손가락에선 쉴새없이 피가 줄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어느새 반 이상의 사람들이 죽고 탬버린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다시 듣기싫은 녀석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와 귓속을 파고들었다.
"치지지직.....살아남..으신..분들....축..하드립니다...그러..나..앞으로...3관..문이..더..있습니다..."
"이XX놈아!!우릴 보내줘!!"
"그깟 3관문 다 통과해서 살아나가면 니놈의 목숨을 끊어놓을테다!"
소리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력이 다해 갈라질대로 갈라졌다.
"치지지직...다음...관문은..이....놀이....공원의...하이라이트...후룸..라이..드...입니다...제한시간은...3분..입니다..건투를..빕니다..."
나와 수미는 손에 박힌 파편들을 대충 뽑아낸뒤 피가 줄줄줄 흐르는손을 감싸쥐고 무작정 달렸다.
'살고 싶다..살고 싶다..'
나는 뛰면서도 오로지 살고싶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후룸라이드는 규모가 굉장히 커서 멀리서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살아 남은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후룸라이드를 향해 미친듯이 내달렸다.
나와 수미도 물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사람들이 뛰어가는 방향을 따라 함께 뛰었다.
"!!"
한창 후룸라이드를 향해 뛰고 있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저..저건..!!'
후룸라이드로 가는 길엔 이 저주받은 놀이공원의 '입구'가 있었다.
'저..저곳으로 탈출을 할 수 있다면..'
'하...아니야...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알 수 없어.'
불과 몇 초 사이에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본 입구는 굉장히 컸으며, 아름다운 황금빛을 내뿜고 있었다.
'다르다....'
'분명 들어올때 저 곳을 지나쳤을 텐데...처음 보는 것 같아.....'
'뭐지..? 마치 저 곳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후룸라이드를 향해 한창 뛰고 있을 때, 그 찬란한 입구와 점점 가까워졌다.
'그냥 저곳으로 탈출해버릴까?'
그러나 탈출시도를 생각 한 것도 잠시,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가까이서 본 입구 앞에는 탈출을 시도하다 죽은것으로 추측되는 수백 구의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아!..맞아.. 고스트하우스에 들어갔을 때, 탈출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기다리고있다고 했었어.. '
그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탈출시도는 커녕 입구쪽으로 가까이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와 여지껏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수미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입을 꾹 다물고 후룸라이드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돌려 뛰고있었다.

그 때, 입구의 반대편으로 희미한 두 물체가 흐릿하게 내 눈에 잡혔다.
'저게 뭐지? 사람같은데...입구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것은..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는것..'
"아! 지금 그런것에 신경쓸때가 아니지.."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후룸라이드를 향해 힘껏 뛰었다.
그리고...

'모두들 보통이 아니군..이제껏 살아남은 데 이유가 있어..'
그도 그럴것이 미처 카운트 다운을 세기도 전에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후룸라이드의 입구로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본 후룸라이드는 굉장히 크고 아름다웠다..불투명한 유리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고 주위에 있는 바닷빛 조형물들로 인해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거대한 수족관 같았다..
"치지지지지지직...이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이자 자..랑거리..인 '후룸..라이..드'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적응이 된 것일까, 이젠 녀석의 목소리가 더이상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두..말 할 필요는 없..는 것..같군..요....그..럼 시작..해볼..까..요?"
2인당 작은 배 하나와...노 4개가 주어졌다.
"어라..? 노가 왜필요하지..? 보통 놀이공원에서는 배가 자동으로 가는데..?"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나와 한 배에 탄 수미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여기가 보통 놀이공원이야? 자 여기."
수미가 나에게 노 2개를 건네주었다.
가뜩이나 없는 체력에 노까지 저으려니 현기증이 나고 팔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살아야한다'는 집념이 나의 이성을 붙들고 놓아주지않았다.
'배는 총 15척..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와 수미까지 포함해서 총 30명이라는 얘기가 되는군..'
'후룸라이드를 무사히 통과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2관문이 더 있어..'
'총 3관문동안 20명이 죽어나간다는 얘기로군.. 1/3 확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살아남은 다른 28명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닐 텐데..'
기나긴 배의 행렬에서 나와 수미는 앞에서 5번째 배였다.
여유가 좀 생기자 우리 배를 따라오는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성인 남성...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아주머니 한분과 할머니 한분을 태운 배..
'할머니...할머니....?!..'
'젊은이들도 살아남기 힘든 이 죽음의 게임에서 늙은, 그것도 여자가 살아남았다니!'
'도대체 저들은 어떤 분들일까?'
한창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맨 앞 배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악!!!!!!! 사람살려!!"
용감히 첫 배를 타겠다고 나선 젊은 두명의 남자가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 섬뜩한 비명소리에 앞으로 나아가던 모든 배들이 멈춘 것 같았다.
"끄악!!!!!!!!!!"
"아아악!!!!!!!!!!!!!!!"
'?!'
뒤이어 들려오는 비명소리..
대체 뭐야! 설마 절벽으로 떨어지기라도 한건가?
그러나 내 추측은 빗나갔고, 첫 배부터 두번째 , 세번째..
배에 탄 사람들이 차례차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그리고 네번째..
'그 다음은....우리잖아?!'
"꺄악!!!"
무얼 본 걸까, 수미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나는 수미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수미야!! 왜 그래?!"
그러나 나는 내가 질문을 한지 1초도 지나지 않아 수미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ㅡ마치 거대한 '수족관' 같았다ㅡ
'수족관.......수족관........'

"저..저건!!!!!!!!"

미친듯이 펄떡 펄떡 뛰어오르는 피라니아들.
배고픈 피라니아들은 마치 자신이 상어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의 팔뚝을 세차게 물어뜯었다.
"아악!!!!!!!!!!!"
피라니아 2마리가 수미의 팔을 기습공격했다.
"수미야!!!!!!"
나는 순간 정신이 나간 ㅡ일명 '돌았다'고 하는ㅡ 사람처럼 미친듯이 피라니아들을 떼내기 시작했다.
피라니아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수미의 팔은 물어뜯겨져 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였다.
자신의 팔을 본 수미의 눈은 거의 까만자위가 보이지 않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 했다.
'크으..알 수 없군.. 피라니아들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극히 드문데...'
나는 미친듯이 달려드는 피라니아들을 들고있던 노 두 개중 하나를 집어들어 마구 두들겨팼다.
수미의 팔을 물어뜯던 피라니아들은 기절해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피라니아들은 다시 펄떡펄떡 뛰며 수면위로 뛰어올라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그 때, 나는 피라니아의 피부에 무언가 장착된것을 발견했다.
'저, 저건...'
피라니아들의 피부엔 전류가 흐르는 칩이 장착되어 있었고, 피라니아들은 인간들이 자신을 공격한 것인 줄 알고 미친듯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나는 들고있던 노로 그 장치들을 가격하여 하나 하나 부숴뜨렸고, 장치가 부숴진 피라니아들은 하나 하나 물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혼자서 수많은 피라니아들을 감당하기 버거워 사람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피라니아의 등지느러미 근처에 이상한 장치가 부착되어있습니다!! 그걸 노로 부수면 피라니아들은 더 이상 사람을 공격하지않습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모두 노 하나를 양손으로 들어 이상한 장치들을 하나하나 부수었다.
'이 순간만큼은 적이라고 생각하지말자. 나 혼자 싸운다고 살아나갈 수 있는 게 아니야.'
'아차! 아까 그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나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님! 걱정마세요! 꼭 살아서 나갈 수 있을거에요!!"
"에미야, 난 괜찮다. 난 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한 없다. 하지만 넌.."
그 때, 두 명의 젊은이가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배에 옮겨 탔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여보!"
다행히 할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두명의 남자가 피라니아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고있었다.
"다행이야..."
그 외에 다른 몇 명의 사람들도 모두 피라니아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았다.
노가 나무로 되어있어서 망정이지, 도체로 되어있었다면 사람들까지 감전될 뻔한 터였다.
맨 앞쪽의 청년 두명은 이미 피라니아들의 밥이 되어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고, 그 외에도 죽은 몇 사람들의 배는 외로이 수면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제 이곳도 끝난것인가?.. 아차! 수미!'
수미는 기절한 듯 했다.
'제길..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데.. 이 곳에서 살아나간다 하더라도 병원까지 후송되려면..'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이 곳은 응급처치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한 곳이었다.
"제기랄!!!!!!!!!!!!"
그 순간, 저 멀리로부터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수면 위에 드러난 저것은................지,지느러미..?!'
"뭐야! 끝난거 아니었어?!"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 귓가에 맴도는 익숙한 음악.............
영화 '죠스'에 나오던, 긴장감 넘치는 그 음악이 내 귓전을 맴돌고있다.
지느러미는 매우빠른속도로 다가왔다.
'어,어떻게 해야하지?'
"쿠콰콰콰콰!!!!!!!!!!!!!!!!!!!!!!!!!!!!"
그때 엄청난 크기의 물체가 수면위로 솟아올랐다.

"제길, 내 예상이 맞았군."
실제로 본 상어는 가히 바다의 갱이라고 불릴만큼 무시무시했다.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은 것일까, 상어는 쓰러진 수미에게 돌진했다.

"안돼!!!!!!!!!!!!!!!!!!!!!!!!!!!!!!!!!!!"

상어는, 저주 받을 상어는 나의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씨X!!!!용서할 수 없어!!!!!!!!!!!!!!"

나는 드디어 이성을 잃었고 상어에게 돌진해 노의 손잡이 끝 부분으로 상어의 눈을 쑤셨다.
거대한 상어는 펄떡펄떡 뛰며 꼬리지느러미를 미친듯이 휘둘러댔다. 덕분에 주위에 있던 시체들과 시체를 태운 배들이 산산조각났다.
나는 탬버린에서 챙겨온 망치로 상어의 뇌가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부위를 힘껏 내리쳤다.
"잘가라."
상어는..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아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가까스로 그 염병할 후룸라이드인지 뭔지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나는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을 잃었고, 이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뚱아리와 군데군데찢어진 옷만 덩그러니남았다.
"흐흑.....수미야....너의 죽음을...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게..."

"치지지..지직........축하.......드립......니다..........이제........2관문......자비로운......제가.......여러분들을......위해.......휴식...을........1분......드리도록..하겠습니다........"
"미친 개XX..여지껏 우리를 농락하고 자비로운거 좋아하고있네."
나는 던지듯이 말을 툭 내뱉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대강 스무명남짓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할머니, 아주머니...울고있어..?
그리고 젊은이..............한 명?!
나머지 한 명은.....?!
울고있는 그들을 보니 짐작이갔다.
죽었구나..

괘씸한 놈.
몇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서할수 없는 놈.
이 돼먹지 못한 게임을 즐기고 있을 저주받을 놈.
'내가 니 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도...살아남겠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스피커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치지지지직.....치직....1분이 지났...군요.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요? 다음...관문..은....청룡...열차....크크...제한시간..은 없습니다."
"제한시간이없다니?!"
"치지직...여러..분들....이...카운...트다운...안에..못..들어갈...인재들이...아닌건...당신들이..더..잘알고있..을텐데요..?크크..."
'자꾸 기분나쁘게 웃잖아..? 뭔가 수상해..'
"치지지직...그럼...다들...몸조..심..하십..시오..크크..크"
'거슬려..저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거슬린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몇 초 후, 나는 다시 눈을떴다.
"아, 아니 이건!?"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나는 하늘 한가운데에 서있었고, 내 발 아래로부터 땅까지는 아파트10층 높이를 방불케했다.
"여..여긴...레일 위?!"
ㅡ몸조..심..하십..시오..크크..크ㅡ
그 놈의 웃음섞인 목소리가 다시금 생각났다.
"그놈의 비웃음섞인 '몸조심'하라는말은 마지막인사 였었던것인가?..
아니야..이 곳도 살아나갈 방법이 하나쯤은 있을거야!"
피라니아와 상어로부터 죽어간 나의 사랑하는 여자친구 수미가 떠오르자 나는 발악하듯이 소리질렀다.
"내가...내가 최후의 생존자 10명중 한 사람이 될거라고!!!!!!!!!!!"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멀리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을...
점점, 가까워져온다.

20m..

15m..

10m..

5m...

"포기할수없어..나는..끝까지 살아남을거야!!!!!!!!!!"

3m......

코앞으로 다가온.. 사람 하나 타지 않은 청룡열차...

"난!!!!!!살아남을거라고!!!!!!!!!!!!!!!!!!!!!!!!!!!!!!!!!"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내 고함소리와 청룡열차의 소음이 한데 섞여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이제.. 끝났구나... 모두...끝이..났어.....
비록 화려하진 못했지만....나름 행복했던 내 삶도...
목숨보다 소중한 여자친구와의 사랑도....
아직 어머니 아버지께 제대로 해드리지도 못한 효도도...
내 인생이....이렇게...끝이.....................

이제껏 제대로 누려보진 못했지만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던 나의 인생이 눈앞에 영화 필름처럼 펼쳐진다.

잘 있어라, 세상아. 나는 떠난다......

"!?"

나는 눈을 떴다.

없다.
날 뭉개고 지나갔을 청룡열차가..없어..
없다고..
청룡열차는..?
레일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분명 난 몇 초 전에 죽었을 텐데....
내가 딛고 서 있는 곳은 다름아닌 땅 바닥.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저주받을 놀이공원..
오만가지 잡생각이 내 머릿속을 넘나들었을 때, 스피커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기다리던 그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치지지직...하하.........하...이건.....일종의 정신력...테스트....였습니다.... 마지막 관문을...경험할...자격이되는지...테스트..한것..이죠......"
'뭐야..? 그럼 이 테스트에서 죽은 사람은 없단 말이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 그놈이 이런 내 생각이 부질 없다는 것임을 알게 해주게끔 쐐기를 박는다.
"치지직..지직.....아, 물..론...겁..에질려..레일에서..뛰..어내린 사람은....모두...저승..으로..갔습니다.."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젊은이도 없다.
그렇다면.. 모두 뛰어내렸단 말인가?

"치지지직........총.....열네.....명남았..군요...마지막...관문에서...최종 생존..자....10명이..결정..되는겁..니다.."
"마지막 관문은 뭐야!! 어서 말해!"
나는 '최종생존자'라는 말에 다급해져서 소리쳤다.
"치지직...치직...마지막 관문은.....'여러..분의..현명한...판단..'입니다......제한시간은...없습니..다...크크...그럼.. 이때..까지...즐거웠..습니다..안녕..히..."
이것을 끝으로 스피커에선 더이상의 잡음 하나 들리지않았다.
'현명한..판단?!..도대체...'

그리고.....
다시 흐릿해지는 머릿속.......

"...빠!"
"오빠!"

여긴..
놀이공원의 입구..?!
시간은.......
아침 11시 56분?!
놀이공원이 문을 열기 4분전이야..
그럼... 이 모든일들이 1분만에 일어났다는거야..?...말도..말도 안 돼..
이게..어떻게 된 일이지?!
대체!!
옆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오빠..왜 그래?"

부드럽게 내 손을 잡는 이 여자는.......
수미?!

"수,수미야!!?"
수미의 피라니아에게 물어뜯겼던 팔은 멀쩡했고, 예전의 수미얼굴 그대로 아름다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오빠? 뭐야..왜 그래..?"
"..말도 안 돼.."
작게 중얼거리는 날 보고 수미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오빠..갑자기 왜 그래....이상하게....."
"말도..말도 안 돼....!!"

상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환상..?
도대체 뭐야!!

"환영합니다!"

놀이공원의 문이 열리고...

'아! 그 때, 후룸라이드를 향해 가던 내가 입구 너머 본 그 두 물체는.....우리였어..'

문득 떠오른 생각.

"수미야, 여기 들어가면 안 돼. 집에가자."
난 수미의 손목을 낚아채 강제로 질질 끌고왔다.
"오빠!! 왜그래!! 오늘 우리 100일이라고 놀이공원 오기로 했잖아...그것도 공짠데.."
"공짜...공짜라서 안돼!.."
"뭐?! 그런게 어딨어!!"
나는 수미를 강제로 차에 태웠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멀어져가는 놀이공원이 백미러에 잡힌다..

'Hell land'
'아..! Hell이라는 영어단어는... 지옥을 의미한다........'

조수석에 앉은 수미는 입이 반쯤 나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집 근처의 유원지로 데리고 가서 데이트를 했다.
하루종일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자초지종을 말해봤자 미친놈 취급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너무 피곤했다.

그녀를 차로 집까지 바래다 주고, 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시간은 벌써 9시...
심란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평소 습관처럼 티비와 컴퓨터를 동시에 켰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포털사이트를 접속해서 재미있는 글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거 정말 웃기네......."
억지로 웃는 내가 바보스러워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일 찰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의 최OO 아나운서입니다. 요즘 날씨가 더욱 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면서
첫번째 소식입니다. 서울에 새로 개장한 H놀이공원에 화재가 났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놀이공원에 있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몇백 명의 사람들이 입구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부상자는 4명으로 현재 OO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며, 유족들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
.
.
.
.
.
.
.
.
.
.
.

ㅡ마지막 관문은.....'여러..분의..현명한...판단..'입니다......ㅡ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쁜 기억을 몰아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잊지 마시길.

0
이번 화 신고 2015-12-31 14:16 | 조회 : 1,204 목록
작가의 말
Beta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