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날 오후

이 세상에는 완벽하게 좋은 것도, 완벽하게 나쁜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건 좋은 것 같다'라고 느끼는 것에도 치명적인 단점, 혹은 부정적인 면이 있으며,
'이건 나쁜 것 같다'라고 느끼는 것 또한 장점, 혹은 긍정적인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이건 나쁘다' '이건 좋다'라고 끊임 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채로 서서 한 쪽 면만 바라본 채, 자리를 옮겨 다른 면을 바라볼 생각을 거의 않고 있기에 우리는 끊임 없이 다른 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우리 사이의 가로 막은 물체의 면들로 인해 우리는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영원히 반대편을 보지 못하겠죠.

하지만 과거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요괴에는 항상 이로운 면과 해로운 면이 공존하죠.
그 예시로 노선이라는 고대 중국의 한 신선은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하는 신선이지만 동시에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요괴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산신의 이야기 역시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사냥꾼이었는데, 옛날에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체험한 실화야.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시골로 놀러가면 언제나 사냥 가실 때 나도 데리고 가주셨어. 그날도 엽총을 등에 지시고 나랑 산길을 걸어다니며 "오늘은 맛있는 멧돼지고기 전골을 먹여주마" 라고 말씀하셨어. (실제로 방금 죽인 멧돼지는 먹지 않았지만)
그 때 즈음, 동물 같은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어. [부스럭 부스럭] 같은 느낌이었지. 나는 '위험하니까 할애비 뒤에 숨어라' 라는 말을 들어서 바로 할아버지 뒤에 숨어서 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조금도 쏠 기미가 없어 보였어.

언제나처럼 나를 두고 가버릴 정도의 기세로 '게 섯거라-!!'라며 쫓아갔을 텐데, 엽총을 반 쯤 올린 채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며 굳어 있었어.
난 그 시절에는 아직 키가 작아서 수풀 속에 어떤 동물이 있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어. 난 궁금해져서 "뭔데? 멧돼지? 너구리?" 라며 물어봤지.
그래도, 할아버지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수풀 너머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어.

"저건..." 할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연 순간, 갑자기 수풀이 부스럭거리며 소리를 냈어.
"그만 두거라!!!" 라고 할아버지가 윽박지르며 수풀 속으로 엽총을 겨눈 후 한 발 발포했어.
그리고 나를 안은 채 엄청난 스피드로 도망가기 시작했어.

난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그저 무서워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
할아버지가 쏜 '그것'은 뭐였을까?

그게 신경쓰인 나머지, 뒤를 돌아보고 말았어.

'그것'은 멀리서부터 이쪽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어.
털이 나지 않은 새빨간 원숭이 같은 동물...

할아버지는 나를 안은 채 달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엽총 안에 총알들을 집어넣고 있었어.
총알들을 전부 집어 넣었을 때는 엽총을 뒤로 향하게 한 다음 몇 발이나 발포했어.
내 바로 귓전에서 발포했기 때문에 귀가 찌잉- 해져서 여러가지 소리들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느낌으로 되버렸어.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달리면서 다시금 총알들을 엽총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어.

난 너무나 무서워져서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
뒤에서부터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라는 그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고, 할아버지는 조그만 목소리로 "살려주시게... 살려주시게... 제발 이 아이만은..." 라며 중얼거리는 것 같았어.

산에서 다 내려와도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았어. 나를 놓지 않은 채, 그저 집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어.
집에 도착하자 마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요우코우다!!!!!" 라며 소리질렀어.
그걸 들은 할머니는 새파란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가 소금과 술을 가져와서 나와 할아버지에게 마치 씨름꾼이 모래를 뿌릴 때처럼 소금을 뿌리더니, 우승한 골프 선수에게 샴페인을 뿌리듯 술을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도록 위에서 뿌렸어.

그 후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의식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시간이 지나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그 때 할머니가 나에게 '요우코우'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어.
"00짱(내 이름)이 봤었던 건 말이지, 그건 말하자면 산의 신령 같은 거란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신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네 대신으로 죽은 거야. 너만큼은 부탁하건데 행복하게 살려무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도 뒤를 따르듯 곧 돌아가셨어.

난 지금 2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고, 엄청 건강해.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차원이 존재합니다.
시공간의 개념으로는 4차원이, 공간의 개념으로는 3차원이,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시각인 2차원과 1차원까지.
다양한 차원이 결합되어 살아가는 곳이지만 절대로 융합되지 않는 곳.

인간의 눈은 영원히 3차원을 바라보겠지만 사고는 영원히 2차원을 바라볼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2차원이기에 더욱 발전할 곳이 있다는 것.

이제 당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일어나, 조금만 움직여보시길.

무엇이 보이시나요?

0
이번 화 신고 2015-12-18 17:55 | 조회 : 1,350 목록
작가의 말
Beta

그나저나, 요즘 시험기간인 듯 한데 시험은 다들 잘 보셨는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