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째 밤

어젯 밤 평소에 잘 꾸지 않던 꿈을 꾸었네요.
나름 재미있는 꿈이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은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꿈이 현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면 예지몽 같은 것 말이죠.
글쎄, 저는 일단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꿈, 현실은 현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자각몽의 규칙 중 하나에는 '절대 자신이 죽는 걸 상상하지 말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자각몽에서 내가 죽는 상상을 하면 현실의 나도 죽기 때문일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있다면 이미 인터넷 일부에 '어 나 자각몽에서 죽는 상상 했는데 안 죽음ㅋ' 같은 글이 있어야 할 텐데, 없으니까요.

이번 괴담도 모처럼 꿈에 관한 걸 하나 풀어볼까요?
아마 조금 유명한 괴담이라 여러분들이 아실 수도 있어요.


저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꿈을 꿀 때면 가끔 씩 자신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자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그랬습니다. 왜인지 저는 어두침침한 무인역에 홀로 있었습니다. 꽤나 음침한 꿈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역에 생기없는 남성의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방송은 “곧 열차가 도착합니다. 그 열차에 타면 당신은 무서운 일을 겪게 될 거에요~”라는 의미불명의 방송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열차라고 하기보단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 열차 같은 것으로, 안색이 좋지 않은 여러명의 남녀가 한 줄로 앉아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꿈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공포심을 줄 수 있을까 시험해보고 싶어진 저는 그 열차에 타보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무서워서 참을 수 없을 정도라면 잠에서 깨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할 때라면 자유롭게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요.

저는 열차의 뒤에서부터 세번째 자리에 앉았습니다. 주위에는 미지근한 공기가 가득하여, 정말로 꿈이 맞긴 한 건가 의심하게 될 정도로 리얼한 현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출발합니다~”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뭐가 일어나는 걸까, 제 가슴은 불안과 기대로 부풀어올랐습니다. 열차는 역을 나서자마자 바로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보랏빛 조명이 터널 안을 괴이쩍게 비춰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터널의 풍경은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탔던 스릴러카의 풍경이다. 이 열차도 원숭이 열차고 결국 내 과거 기억 속에 있는 영상을 가져왔을 뿐 조금도 무서울 게 없네.’
그 순간, 다시 한 번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번 역은 산 채로 회뜨기~ 산 채로 회뜨기입니다.”
산 채로 회뜨기? 생선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뒤에서 소란스러운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열차의 맨 뒤에 앉아있던 남자의 근처에 누더기를 걸친 네 명의 난쟁이들이 몰려들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날붙이로 몸을 찢겨져 정말로 산 채로 회를 뜬 물고기 같은 모습이 되어있었습니다.
강렬한 냄새가 주변을 감싸고, 남자는 귀가 아파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몸으로부터 내장이 하나하나 뽑혀나와 피투성이의 장기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제 바로 뒤에는 장발을 한 나쁜 안색의 여성이 앉아있었습니다만, 그녀는 바로 뒤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아무 말 없이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에 놀라 정말 이게 꿈인건가 싶어져 겁을 먹고,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잠에서 깨어나자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맨 뒷자리의 남자는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검붉은, 피와 살점들은 남아있었습니다.
뒷자리의 여성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음 역은 도려내기~ 도려내기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두 명의 난쟁이가 나타나 그레이프 후르츠 스푼(그레이프 후르츠 먹을 때 쓰는 특이한 숟가락.)처럼 생긴 물건으로 그 여성의 눈을 도려내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져, 제 바로 뒤에서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비명을 올렸습니다. 눈에서 안구가 뽑혀나와 있습니다. 피와 땀 냄새가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공포에 떨며 앞쪽으로 엎드렸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상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순서를 따져보면 다음은 뒤에서 세 번째에 앉아있는 제 차례입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나려 했습니다만, 저에겐 대체 어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걸까 싶어져 그것만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다음 역은 다진 고기~ 다진 고기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최악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 꿈에서 깨어나려 했습니다.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 언제나라면 이렇게 강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성곡합니다.
갑자기 ‘위이잉’하는 기계음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엔 난쟁이가 제 무릎 위에 올라 이상한 기계 같은 것을 천천히 들이밀어왔습니다.
아마 날 산산조각 내기 위한 도구일 거라 생각하니 무서워져,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하고 눈을 꽉 감고 죽을 힘을 다해 생각했습니다. ‘위이잉’하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 얼굴에 풍압을 느끼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어떻게든 악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전신은 땀에 흠뻑젖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침실을 나서 부엌에서 대량의 물을 마시고 난 뒤에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리얼하긴 했지만 결국은 꿈이었으니까 하고 자신을 달랬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재밌어할뿐이었습니다. 결국은 꿈에 불과하니까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났습니다. 대학생이 된 저는 그 일에 대해선 몽땅 잊고 알바 따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갑자기 시작된 겁니다.
“다음 역은 도려내기~ 도려내기입니다.” 그 장면부터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아, 그 꿈이다,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전과 똑같이 두 명의 난쟁이가 그 여성의 안구를 도려내고 있습니다.
위험하다 싶어 곧바로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꿈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
“다음 역은 다진 고기~ 다진 고기입니다~”
슬슬 위험한 상황이 되어갔습니다. ‘위이잉’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옵니다.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 제발 깨어나줘.’

문득 모든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도망쳐나왔다고 생각하고 눈을 뜨려한 그 순간,
“또 도망치는 건가요~ 다음에 왔을 땐 끝이에요~” 그 안내방송 속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눈을 뜨니 역시 그 꿈에서는 완전히 깨어나, 그곳은 제 방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들은 그 안내방송은 절대로 꿈이 아니었단 뜻입니다.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 들려왔습니다. 제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그 이후로, 아직까지 그 꿈을 꾼 적은 없습니다만, 다음 그 꿈을 꾸게 되었을 땐 분명 심장마비나 뭔가로 죽고 말 거라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선 심장마비라도, 그 세계에선 다진 고기가 됩니다만……


써 놓고 보니 정말로 유명한 괴담이네요.

그나저나 저 남자, 정말로 저 세계에서 다진 고기가 될 때 현실에서 심장 마비 같은 걸까요?
만약 진짜로 꿈이 현실에 큰 영향을 준다면, 아마 제 생각에는 강도가 들어와 자는 그를 난도질 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죠.

생각해 보면 꿈은 동서를 불문하고 역사와 인류에도 큰 영향을 끼쳤죠.
우리 나라만 해도 태몽이라는 문화가 있고, 유럽 쪽의 역사도 들춰보면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 나를 도우셨다' 라는 기록이 다소 보인답니다.
하다못해 동양 쪽에는 꿈 풀이라는 일종의 문화도 있죠.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꿈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워낙 꿈이란 게 잊혀지기가 쉬울 뿐더러, 현실에는 숙제, 프로젝트, 회사, 학교 등 다른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더불어 꿈 풀이나 해몽 같은 문화는 이제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잊혀지고 미신이 되어가는 추세죠.
솔직히, 여러분은 꿈 풀이를 믿으시나요?
믿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닌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여러분은 정말 꿈이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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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7 23:25 | 조회 : 1,099 목록
작가의 말
Beta

가끔씩 꿈은 우리 자신이 만든 우리가 사는 세계보다 한 차원 낮은 세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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