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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전학가. 아천고등학교로.”

“뭐, 뭐라고? 아천고? 가온에 있는 거기? 언제!”

“이사는 토요일에 마쳤고 내일부터 아마 학교 안 올거야.”

“그걸 왜 지금말해!!”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을 옆집에 누가 산다더라, 라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동화를 놀란 얼굴로 보며 소리친 친구는 금세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체 표정이 풍부하지 않은 동화를 잘 알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는 얼굴에 드리워진 작은 그늘을 보며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너는,,, 진작말해주지 그쪽 고등학교에 아는 애 있는데 거기 ‘미친개’였나 뭔가 하는 애가 있나보더라.”

“미친개?”


동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며 말하는 친구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미친개라던가 마녀라던가 무서운 선생님들에게 쓰이는 별명쯤이라고 생각했던 동화는 ‘애’라는 표현에 호기심을 보였다. 뭐 그래도 무표정인 건 마찬가지지만.


“막 다른 학교 애들하고 싸우러 다니고 학교도 자주 빠지고... 어쨋든 위험한 애라니까 가서 조심해. 넌 좀... 밉보일까봐 무섭단 말이야.”

“내가 왜?”


자신이 왜 밉보인단 말인가? 동화는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자신을 보는 친구의 얼굴을 빤히 보며 반문했다.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솔직히 짜증는데 너 누누이 말하지만 예쁜데 개철벽이잖아.”

“내가?”


자신은 전혀 소문에 대해 무관심한 성격이라 모르고 있지만 현재 다니고 있는 태문고등학교에서 꽤 유명인사다. 공개적으로 받은 수십번의 고백을 거절한 ‘철벽녀’로 심지어는 여자한테까지 고백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지만 본인은 아무 말도 안하니 사실유무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철벽에도 정도가 있지 남녀 안 가리는 철벽...이 언니는 그래서 언제 친구 많이 사귈까 걱정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구에게 동화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가 있는데 뭐.”

“으으... 그런 건 나중에 남자친구한테나 하란 말이야!”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힐끗 시계를 보던 동화는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났다.


“그럴까? 아, 나 이만 가봐야겠다. 전철타고 가야할 것 같아서.”

“너 꼭 놀러와, 안 그러면 내가 갈 거야! 아니다 역까지 내가 데려다줄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려는 동화의 팔짱을 끼며 자신이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역까지 간 후 조심하라며 단단히 당부한 친구는 울먹이는 얼굴로‘그, 그 송,,,뭐였지’라며 기억나지 않는 미친개의 이름 생각해내려 애쓰며 동화를 배웅했다. 손을 흔들며 친구와 헤어진 동화는 쓸쓸한 마음으로 타이밍 좋게 온 전철에 올라탔다.


-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 꽤 많은 학생들의 담배골목이 되어버린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활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명과 대치하듯 맞은편에 서있는 산발머리가 된 네 명.


“와하하! 코피난데요!”

“코피!! 너 이 미친년이 진짜!”

“뻥인데~”


코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는 여자를 보며 할퀸 자국이 있는 화끈 거리는 얼굴을 한번 쓱 문지른 라온은 양손의 중지를 올려 보이며 씨익 웃었다. 산발머리의 여자는 자신의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자신보다 더 가관이 된 얼굴의 친구들을 의식하며 섣불리 덤비지 않고 다시 한 번 욕을 해댔고 그는 약을 올리듯 혀를 쏙 내밀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고 난리세여~ 무서워서 살겠나! ”


오랜만에 온 동네에 추억에 잠겨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버스비가 없으니 돈 좀 빌려달라는 그녀들을 좋게 웃으며 보내려했지만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라는 진부한 대사를 치는 그녀들에게 선빵을 날려 결국 일이 크게 되어버렸지만 어찌되었거나 이긴 라온은 당당하게 웃었다.


“너 어느 학교야!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하핫! 삼류 악당 같은 대사는 집어 치우시지!”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짤랑거리는 동전 두 개를 꺼내며 그녀들에게 던졌다.


“이건 깽값, 200원으로 사탕이나 사먹어라! 난 이만!”


후다닥 뛰어 가버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억울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역으로 뛰어온 라온은 잠깐 숨이라도 돌릴 차에 걸으려했지만 전철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에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이별이라도 한 듯 훌쩍거리는 여자애를 뒤로하고 교통카드를 찍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간 라온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전철에 올라탔다.


“후아- 진짜 타이밍 죽였다. ”


숨을 고르며 남은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다 자리 하나가 운 좋게 있자 빙긋 웃으며 그쪽으로 가 앉았다. 크게 숨을 내쉬며 등을 기댄 라온은 쓰라린 얼굴을 다시 매만지자 피가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 가볍게 혀를 차며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망할 것들 하필 얼굴을 긁어놔서...’

“저기.”


전혀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을 톡톡 건드리며 걸어오는 말에 라온은 습관적으로 웃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놀란 눈으로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연하늘색 손수건을 보았다.

“피나네요. 이거 쓰세요.”

“예? 아,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받아들며 이걸 써야할지 잠시 머뭇거리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니까 쓰세요. 손으로 만지면 별로 안 좋아요,”


고저없는 무덤덤한 목소리였지만 왠지 호의와 걱정을 담은 그 목소리를 듣고 피를 닦아내며 자신에게 손수건을 준 사람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예쁜 얼굴이지만 올라간 눈매와 야무진 입매를 가진 꽤 차가운 인상.


‘고양이 닮았다.’

라고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거의 내려야할 역에 다가 오자 그때서야 라온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의례적인 말.


“어, 저 손수건 감사합니다. 이거 돌려 드려야하는데... ”

“괜찮아요.”


도도한 얼굴에 옅게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여자를 보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은근한 승부욕이 오른 라온은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저는 송라온이고 가온쪽 사는데 혹시 그쪽 사시나요?”

“아, 네.”

“저 죄송한데 그럼 번호 좀... 아 수작부리는 거 아니고 손수건 돌려드리려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는 그 모습을 보던 동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돌려주시지 않으셔도 되요.”


뭐라 설명하기 힘들게 묘하게 차인 듯 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빙긋 웃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천고에 다니니까 혹시 만나면 그때 보답할게요.”


동화는 티 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만화 같은 만남에 꽤 놀란 얼굴로 빤히 라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학교... ’


[이번 역은 가온, 가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징-하고 계속 진동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으며 라온이 일어났다. 그리고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동화에게 환하게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는 약속이 있어서 손수건 감사했어요!”


빠르게 뛰어간 라온과 다르게 느릿하게 일어나 내린 동화는 역을 나와 깜깜해지는 하늘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가는 낯선 학교가 조금은 기대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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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08 22:22 | 조회 : 1,737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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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서 첫화부터 너무 긴게 아닌가 싶네요...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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