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수 아미(2)

진수아미
3. 진수 아미(2)

“그러니까··········.”

초이는 목덜미가 써늘해지는 것 같았다. 이 여인이 자신이 계집이라는 걸 알 리가 없다. 그것은 초이도 알고 있었다. 한순간에 싸하게 식어버린 옥정의 눈빛에 제가 지레 찔리는 걸 수도 있었다.

얼음을 담가 놓은 듯 차갑던 옥정의 눈빛이 다시 아까 와 같이 돌아왔다. 옥정은 얼굴이 굳은 초이를 보며 입꼬리를 어여쁘게 올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부끄럽지만··········. 저는 방물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초이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렸다. 초이는 한번 침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여인들을 치장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초이의 말에 옥정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사내가 그런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기분 나쁘셨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아닙니다. 평소에도 자주 듣던 말입니다.”
“그럼 선비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사내의 입장에서 보시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예?”

초이가 되물었다. 자신이 보아왔던 수많은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가 자신의 외모가 어떠한지 초이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꿈틀거렸다. 이 여인의 얼굴을 치장해주고 싶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사실은, 제가 사모하는 사내가 있습니다. 사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여인의 마음인데··········.”

도통 제 것으로 만들기 어려운 사내라서요. 옥정이 슬프게 웃었다.

“수많은 여인들의 얼굴이 제 손을 거쳐갔지만,”

이리 어여쁜 용모는 처음입니다. 이미 태어날 적부터 곱게 분을 칠하여 내려온 분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초이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진심을 보여주면 언젠가 그 사내 분도 그대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사내가 있을 리 없다. 초이가 생각했다. 자신도 이리 태어났으면 어땠을지. 아니, 이리 어여쁘게는 태어나지는 않아도 보통의 여인들처럼 치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태어났으면 얼마나 행복했을지.

초이는 옥정이 하염없이 부러워졌다. 여인의 투기란 이래서 무섭구나. 초이는 살짝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쓴 후에, 옥정에게 꾸벅 인사했다.

“전 하월각에 가서 제일을 해야 해서 이만.”
“예, 살펴가세요.”

초이가 멀어져 갔다. 옥정은 그런 초이를 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초이가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무당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장옥정 앞으로 나왔다.

“무슨 생각하십니까요?”
“그냥. 감이 이상하구나.”

요새 무당과 좀 붙어있었다고 이러는 것인가. 옥정은 빨간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아이를 무당의 손에서 낚아챘다.

“이 아이는 내가 데리고 갈 것이다. 너는 따로 해 줄 일이 있다.”
“예?”
“저잣거리 밖으로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하월각이라는 기생집이 나올 것이다. 기생집에서 아까 마주친 선비를 찾아 은밀히 그를 미행하고 내게 상세하게 그를 보고하거라.”

옥정은 말을 마치고 쓰개치마를 머리에 다시 둘러썼다. 무당은 도도한 옥정의 품새를 보며 혀를 찼다. 무당에게 미행 질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리고 계집년에게 선비는 무슨.

옥정이 아무리 센다 한들 본능적인 정보와 직감 면에서는 아직 자신보다는 못할 것이다. 무당은 묘한 승리감에 취해 있다가, 자신에게 명령을 일러두고 길을 돌아 걷고 있는 옥정을 불러 세웠다.

“아기씨!”
“왜 그러느냐.”
“뭔갈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무얼··········. 말이냐? 옥정이 미심쩍은 듯 운을 떼었다. 기생은 한번 씩 웃었다. 기생의 얼굴이 기괴하게 올라가 웃는 꼴이 되었다.

“아까 마주친 선비님 말입니다.”
“그래.”
“사내가 아닙니다.”

계집입니다. 무당은 점점 일그러지는 옥정의 눈매를 끈질기고 집요하게 지켜보았다.

***

“오늘은 진귀한 손님이 오십니다. 특별히 치장에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리를 깔고 앉아 분과 치장 도구들을 한쪽 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놓는 초이를 보며 행수가 인사했다. 하월각의 행수 어른이 직접 누군가를 반기러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명심해두지요.”

초이가 인사했다. 초이의 뒤로 예닐곱명의 기생들이 쭈르륵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이가 후- 한숨을 내쉬었다. 보수가 두둑한 건 마음에 들지만, 수많은 기생들을 한 번에 치장해주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또 행수 어른이 직접 인사를 나오셨네.”
“행수 어른, 이조판서 어른이 나오실 때도 몸을 사리시는 분인데. 이상하게 저 선비님만 오시면 버선발로 뛰어나오신다는 말이야.”

저분이 오시고 하월각 장사가 눈에 띄게 잘 되었으니 그러겠지. 의심이 가득한 기생의 말에 다른 기생이 대충 말을 맞받아쳤다. 기생은 이미 초이의 손놀림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두.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있잖니?”
“직감은 무슨.”
“전에 행수 어르신이 저 선비님을 직접 모신다고 청했는데, 선비님이 거절했다는 소문도 있어.”

아무래도 행수 어르신, 저 선비를··········. 무언가를 더 이어 말하려는데, 초이가 쾅 하고 분통을 내려놓았다. 기생이 움찔 어깨를 떨다가 초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오십시오. 차례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예.”

초이의 말에 쭈뼛쭈뼛 기생이 초이 앞으로 나와 앉았다. 초이는 썼던 붓을 나무 통에 담긴 물에 헹군 뒤, 하얀 천에 몇 번 문질렀다.

“오늘 양반들의 눈에 들면 한결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그··········. 렇겠지요.”
“그렇다면 제가 어여쁘게 치장을 해드려야 할 테구요.”

예쁘게 치장을 받고 싶으시거든 먼저 조용히 해주시는 게 필요하지 싶습니다. 초이가 싱긋 웃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 기생의 턱을 살짝 붙들고 초이가 거침없이 분을 기생의 얼굴에 발라 나갔다.

초이의 손이 한 폭의 그림을 기생의 얼굴에 담았다. 기생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어여쁘게 해드리고 싶어도 제 손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기생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초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홍화 꽃을 빻은 가루를 접시에 담아 물을 섞었다.

“솜씨가 좋을 줄은 알았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군. 무당이 팔짱을 끼고 초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물이다. 장옥정이 왜 그리 오래 대화를 나누고자 했는지, 그리고 왜 미행을 붙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건 시간문젠가.”

그 여자의 작전에 합류하는 희생자가 늘었고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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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17 21:50 | 조회 : 1,116 목록
작가의 말
김조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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