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인의 얼굴을 수 놓는 사내

진수 아미
1. 여인의 얼굴을 수 놓는 사내


“여기가 그 방물 점*이랍니까?”

화려하게 가채를 올린 기생들 사이에, 기생 일을 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법한 기녀 월이 고개를 내밀었다. 월의 눈이 방물 점안 깊숙한 골방을 향해 고정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흔한 방물 점이 뭔데 소란이냐, 월아?”
“흔한 방물 점이라니요. 이래봬도 요즘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사내가 금강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여인의 얼굴을 아름답게 수 놓아 준다구요. 동경이 담뿍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소문을 늘어놓는 월을 보며 기녀들이 한참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몇 명은 순수한 눈빛을 띤 월이 귀여워 웃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생들은 아직 꾸미는 법을 몰라 촌티를 벗지 못하는 월이를 곁눈질 하며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옷을 수놓는다면 모를까, 얼굴을 수놓아 준단 말이냐?”

웃고 있는 그녀들 중 한명이 월이에게 재차 다시 물어왔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소문 좀 검증해 볼까.”

우리 월이도 한번 변신시켜 볼 겸 말이다. 기녀 몇 명이 장난스럽게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리둥절 땅만 바라보고 있던 월의 팔을 한 짝 씩 들어 올린 기녀들이 방물 점으로 월을 끌고 들어갔다.

기생들은 혹여나 치맛자락이 더러워질까, 치마를 높이 치켜들고 짧은 비명소리를 내질러대며 방물 점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낡아빠진 골방 쪽문 안에서 곱게 가루를 빻아대는 절구 소리가 들리고, 한 차례 좌르르 물을 쏟아 붓는 소리가 들렸다.

한 기녀가 용기를 내어 쪽문을 살짝 열었다. 다 헤진 옷을 입고 커다란 나무 대야를 나르는, 다소 병약해 보이는 소년이 열리는 쪽문 사이로 들어오는 기녀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기녀들이 월을 앞 쪽으로 떠밀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그러니깐··········.”

무어라 말을 해야 좋을까. 월이 고민했다. 소문처럼 저도 아름다워 지고 싶습니다. 아니,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을 꺼내 놓자니 뒤에서 팔짱을 끼고 모여 재미있는 구경 난 듯 자신을 바라보는 기녀들이 적잖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치장을 해주는 이가 여인네가 아니라 사내인 것도 신경이 쓰였다. 속눈썹이 길고 얼굴이 흰 것이, 상투를 쓰지만 않았다면 이 사내를 여인으로 착각했을 것만 같았다. 여인인 자신보다 더 고운 것 같기도 했다.

“얼굴에 멋을 내러 오신 것입니까?”
“··········.”
“그렇소!”

월이 아무 말 못하자 기녀 중에 한 명이 대신 대답했다. 제아무리 우리 월이가 막내 기녀라지만 여인네라면 한 번쯤은 다들 아름다움을 꿈꾸는 것 아니겠습니까? 묘한 말투로 월이를 자극하는 기녀의 말에 초이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무 대야를 내려두고 나무 장판 위에 올라가 행주에 물 뭍은 손을 닦았다.

“이리 와서 앉아주시오.”

초이의 부드러운 말에 월이 용기를 내어 장판 위에 올라가 앉았다. 월은 나무 책상 위에 두꺼운 한지를 깔고 주머니에서 천으로 돌돌 말린 도구들을 꺼내 하나하나 올려 두었다.

“성함이 월이 되십니까?”
“그··········. 그렇습니다.”

초이는 더는 월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흰 손가락을 들어 올려 월의 피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월의 턱은 어느 순간 초이의 손에 꾹 붙잡혀 있었다.

“월이 분께서는 피부가 희나 여린 편이나 얼굴 전체에 붉고 작은 좁쌀 같은 것이
돕니다. 흰색 향토를 많이 넣어 분을 만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황색 황토는 조금만 넣어주셔야 합니다. 초이가 뒤편에 있는 서랍에서 향토가루를 꺼내 부지런히 섞기 시작했다. 향토를 섞는 붓의 분모가 빠르게 움직였다.

한지 위에 어느 순간 월의 피부색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가루가 모였다. 초이는 가루를 작은 나무함에 담고 집게손가락으로 다시 월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썹 모양은 아미*에 딱 맞으십니다. 색만 조금 더 짙어지실 수 있게 너도밤나무 숯으로 만든 미묵*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월이 분은 아직 어리시니, 요염하게 치장하는 염장*보다는 담백하게 멋을 내는 쪽이 훨씬 어울리실 겁니다. 사내인 제 말을 믿어보십시오. 초이의 말에 월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눈을 감아 주시겠습니까?”

월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뒤편에 서 있는 기녀들이 경악할만한 요술이 초이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까 만들었던 분가루가 월의 얼굴에 곱게 칠해졌다. 월의 눈썹이 적당히 진해졌을 무렵, 월은 붓을 내려놓고 홍화 잎으로 만든 입술연지를 연하게 월에게 칠해주었다. 조선 최고 기녀들도 감히 따라가지 못할 치장 솜씨였고, 손재주였다.

“다 되었습니다.”

초이가 거울을 월 쪽으로 돌려주었다. 월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거울 안에서 마주했다.

“어떠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초이가 월을 향해 살짝 웃어준 다음, 나무함에 미묵과 분 따위를 챙겨 주었다. 그리고 기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워 지고 싶으시거든 언제든지 방물 점을 다시 찾아주시오.”

단돈 1전이면 됩니다. 초이의 눈이 아까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빛났다. 월을 치장시켜 줄 때의 진지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영락없는 장사치 모습을 한 초이를 보며 기생들은 넋이 나갔지만 한 번쯤은 다들 홀린 듯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방물점: 조선시대에 여인들의 악세서리를 팔던 가게
아미: 가는 초승달 모양의 눈썹을 뜻한다
미묵: 눈썹 먹 (눈썹을 그리는 데 사용)
염장: 요염하게 꾸민 짙은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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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13 00:06 | 조회 : 993 목록
작가의 말
김조콩

잘 부탁드립니다. 이 소설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와는 많은 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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