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회춘이란다

꿈에 그리던 회춘이란다(4)




롤란드 제국군은 역시 평화에 찌든 헤레이스 제국군보다 좋은 군사들이었다. 내 적이라서 문제였지. 나는 내 생각보다 전쟁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느낀 전쟁은 집단적 광기였다. 단체로 벌어지는 살육이다. 검 한 번 휘두름에 무너지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감을 흐렸다. 참상이 계속되어 초반의 거부감이 줄어들수록 내가 점점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구역질이 너무 심해서 힘들었는데, 하루 전장에 나가지 않으니 어제까지만 해도 내 옆에 서던 사람의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려서. 점점 필사적으로 전장에 나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진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마다 꾸던 악몽이 줄어들고, 컨디션이 그나마 나아지며 혼자 있을때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 지독하게 적을 추격하고, 작전을 짜고, 사람을 죽인다.

참상을 보는 것이 영화 보는 것 마냥 아무렇지 않아진다. 그렇게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어차피 적은 얼마 남지 않았고, 할 일은 정해져 있으며 변수가 끼어들 일도 거의 없다. 작전을 짜려 머리를 굴릴 일 없이 그냥 나가서 전쟁을 한다. 실력도 체력도 너무 좋아 다른 병사들처럼 자유 시간에 치료에만 전념 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할 게 없다니.

나는 이런 무기력증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머리 한구석에서 생각은 하는데.. 겉으로는 그냥 무표정하게 시간이나 때우고 있다. 그냥 거기에 머물고만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타계책을 생각했다. 전쟁이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전쟁이랑 정 반대의 것. 평화로운 것. 할 일이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령 전쟁 후에 할 일이라던지. 그러나 관심 가는 일이 없었다.


"살인귀다!! 검은 살인귀야!!! 사령부에 알려라!!!"

"또 이러는군."


적들이 도망가고, 나는 끝까지 쫓아가 도륙한다. 저들은 나를 검은 살인귀라고 불렀다. 확실히 내가 정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살인귀라니. 나랑 마주치고 살아남은 작자가 없어서 그런가. 여기서 이상한 것은 검은 살인귀라는 짜증나는 별칭이 익숙하다는 것이다.

나는 무기력함 속에서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 이 호칭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내가 이런 호칭에 집중할 일이 있었나? 이런 비슷한 호칭이라도 들어본 적 있나? 적어도 현생에서는 없다고 답할 수있다. 그럼 어디에서 들었을까. 평화로웠던 전생이지만 분명 전생에서 들었던 것들이다.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니 곧 다른 것들도 연달아 떠올랐다. 내가 스승님들의 질문에 답할 때, 전쟁에 처음 나섰을 때, 그리고 지금의 별칭까지. 모두 처음부터 익숙했다. 그리고 전부 전생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전생에 이런 말을 익힐 만한 것은 미디어밖에 없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내가 열심해 보았던 것이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는군."

"예?"

"아니다. 어서 들어가지."

"예! 전군 열을 갖추어라! 황성으로 돌아간다!!!"


귀 따갑게 울리는 함성을 무시하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전생에 나는 미디어 는 인터넷 소설만을 보았던 것 같았다. 기억나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보았던 소설도 비슷한 판타지였는데.


"황태자 전하 만세!!!!"

"제국군 만세!!!"


겉으로는 시민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계속했다. 죽지 전에 읽었던 마지막 인소 내용이 뭐였더라. 여자주인공이 귀여웠나. 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기억났다.


"..그랬군."


내 현재에서 약간의 미래를 가리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놀랍게도 소설의 남자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남자주인공으로 환생했던 것이었다.

소설에서 여주가 나올 시점에는 전쟁은 끝난 뒤이다. 그리고 해피엔딩이었으니 앞으로 전쟁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이게 맞다면 이지만. 거기에 나는 심적으로 너무 지치고 메말라서 여자주인공이 와도 별로 사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황태자이고 후계를 생산하여야 하니 결혼은 하겠지만.


"일단은 복구부터인가."


전쟁에는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군인들의 식량과 군마들, 무기들, 관리비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리고 그 자금은 세금에서 나온다. 전쟁이 한 달 이었더라도 세금은 평소의 두배로 뛸 것인데, 2년이나 되었으니 왕국 수준이었던 헤레이스 제국은 상당히 가난해졌다.

롤란드 제국을 멸망시키지 못하고 왕국으로 축소시키기만 한 것도 더는 전쟁할 자금이 없어서였다. 일단 배상금은 엄청 뜯어왔다. 전쟁 포로는 성인 남성은 내가 많이들 죽여 거의 없고, 다른 이들은 노동력이 약한 이들이기에 필요 없어 대려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을 먹일 자원이 헤레이스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만큼 배상금을 더 뜯었으니 상관없기도 하다.

헤레이스 제국은 이제 막대한 배상금을 바탕으로 복구되고 발전할 것이다. 거기에 부정적인 미래는 없다. 지금 전쟁영웅인 내가 승승장구하는 이상 국제전에서 헤레이스의 입지도 올라갔고, 더욱이 자국 내에서는 반박할 자가 없으니. 나는 이제 복구에만 전념하면 될 것이다. 안되어도 되도록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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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13 23:22 | 조회 : 68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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