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하루에 수억개씩 쏟아져 나오는 고철덩어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 곳에 모아두어 차근차근 정리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함에 도시 하나를 이룰만큼의 고철덩어리와 그 밖의 것들을 모아두는 곳이 일명 버려진 곳, G1구역이었다. 또한, 필과 메리가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필과 메리의 하루는 떨걱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안드로이드를 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필! 저쪽에서 안드로이드가 오던걸. 처리해야할 것들을 분류하러 오는 모양이야. 손에 바코드기를 들고 있어."

그렇게 필에게 외치는 메리의 지저분히 이리저리 꼬이고 떡진 머리가 한데 묶여 목 뒤를 어슬렁거린다. 그런 메리의 외침에 필은 재빨리 메리에게로 달려와 몸에 전자파가 통하지 않는 차단기들과 온도를 알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철물들을 둘러준다. 메리는 "으, 이거 무거운데." 하며 불평하기에 바쁘다. 그런 메리가 익숙하다는 듯 필은 자연스레 손에 든 스위치를 누른다.

"조용히해. 저 놈들한테 붙잡히고 싶어? 메리 넌 불평많은 성격을 좀 고쳐야해."

"하지만 무거운 걸 어째? 그리고 저 안드로이드들은 고물이나 다름없다구. 고작 저 작은 바코드기로 저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찍어대고 있다니까."

"고물이라고 해도 안드로이드야. 우리를 인지하는 순간, 처리반의 안드로이드들이 잡으러올지도 몰라."

입술을 툴툴터는 메리에 필은 작게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까 불평하지 말고 따라와. 오늘은 여기야." 그렇게 말한 필이 향한 곳은 어젯밤들어온 새로운 고철들의 커다란 무덤꼭대기였다. 필은 메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선 다른 한쪽손에 쥔 다 떨어져가는 운동화를 고철들 사이로 밀어넣은 채 흙을 파듯 밑의 고철들을 들어낸다.

몇개의 고철들을 들어내자, 커다란 공간이 보여왔다. 삐죽삐죽, 사방에는 위험한 철가시들이 만연했지만 이런 것들에 하나하나 신경을 쓸 여유는 필과 메리에겐 없었다. 메리는 마치 꿈에서만 그려왔던 궁전 속에 들어가는 듯 작은 발을 구덩이 속으로 조심조심 밀어넣었다.

"멋있는 걸. 토끼굴 같아."

메리의 키보다 한 5센치가 더 큰 공간에서 메리는 크게 팔을 벌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필은 그런 메리를 보며 경직된 웃음소리를 내보였다.

"메리,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넌 좀 이상해. 알고 있지?"

"그럼. 잘 알고 있지. 이 이상함에 너가 내게 끌리는 거잖아?"

"부정은 못하겠네."

"당연하지! 부정했다면 난 눈물샘을 안달내고 말걸."

메리는 코끝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은 누구보다도 추하고, 더러울테지만. 필에게 메리란 누구보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여졌다. 메리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정확하고 고리타분한 도시에서 나사와 버튼을 만지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아무거나."

컴컴한 바닥을 손으로 문지르고 더듬으며, 최대한 부드럽고 걸리적거리지 않는 곳을 찾아낸 메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옆에, 엉덩이를 내린 필을 보며 메리가 물었다. 그런 메리에 필은 적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메리가 해줄 이야기의 내용은 그저께의 이야기와도, 어젯밤의 이야기와도 다를바가 없을 터였다.

"그럼 내가 생겨났을 적의 이야기를 해줄게."

"응."

필은 몸을 뉘어 머리를 메리의 허벅지 위로 놓았다. 그런 필의 머리를 부비적대며 메리가 그 특유의 정갈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생겨났을 적에는, 꿈의 소리란 것이 존재했어."

이야기가 시작되자 필은 눈을 감았다. 메리가 해줄 이야기들은, 비로소 진정한 여유와 안정이 찾아와서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바다를 본적이있니? 해변가에 발을 딛어본적은? 없다면 내가 설명해줄게. 해변가에 발을 딛기위해서는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 필요해. 그래야만 그 부슬함을 온전히 느낄수있거든. 바다는 조금의 텀을 두고서, 계속 계속 하얀 거품을 일어···"

메리 또한 눈을 감았다. 그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머리 속을 차지한 빛무리들과 잔잔한 파도소리들이 귓가에 맴돈다. 이 소리들을 필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고장난 장치들은 고칠 수도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음에, 메리는 쉬이 그것을 포기했다.

"소라는 본적이있겠지. 그건 근처 해산물시장에 가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니까. 소라를 귀에 대고 눈을 감으면, 파도소리들이 전전히 들려와. 왜 그런지 알아? 소라가 꿈을 꾸는거야, 바다에서의 꿈을. 꿈을 꿀때에는 그에 맞는 소리가 나지. 그 소리가 생각한 것들과 전혀 다를수도, 너무 같을 수도 있지만···."

필은 귓 속에 흘려드는 메리의 이야깃소리들에 소라에게서 나는 소리들은 공명이라는 것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높이 들뜬 메리의 소리들은 통통 튀듯 제 귓 속에 박히기 시작했기에. 메리는 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한가지로 묶일 수 있잖아. 꿈은 묶여 있는거야. 소리들에. 우리들은 항상 귀를 기울여야해. 주위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옆에 살금다가가 귀를 기울여봐. 메뚜기도 좋고, 나비도 좋고, 사나운 맹수들도 좋아. 귀를 기울여, 그 꿈의 소리를 듣기위해서."

메리는 머리 속을 스쳐가는 장면들에 실쭉 웃으며 "그럼 이제 설명은 끝.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에 필은 두근대는 가슴고동을 느끼며 달뜬 숨을 내밭었다. 들숨, 날숨. 궁전같은 토끼굴 안에서, 그렇게 필은 잠에 들었다. 그런 필에 메리는 조심스레 필이 내뱉는 숨의 리듬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트로칼리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여덟배기 아기의 모습을 띈 안드로이드가 있었어."

메리와 필은 각자 머리 속에, 꿈 속에, 이야기들을 그려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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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31 20:53 | 조회 : 92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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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2307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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